몸을대는건투혼이아니다

입력 2009-01-12 17:5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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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롯데에서 뛰었던 공필성은 몸 쪽으로 들어오는 공을 맞아서라도 1루에 살아 나가려던 자세로 항상 투혼의 선수, 살신성인의 플레이어라는 호칭을 받았다. 골프, 하키, 볼링(?) 등 더 단단한 공을 사용하는 종목도 있지만 시속 150km도 넘게 날아오는 그 딱딱한 공을 곧바로 몸에 얻어맞는다는 것은 실로 무시무시한 일이었기 때문에 타자에게는 위로의 의미로, 투수에게는 징벌의 의미로 볼넷와 똑같은 판결을 내리기 시작한 것이 바로 몸에 맞는 공(Hit by pitch; HBP)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프로야구는 어떤가? 선수들의 몸값은 올라가고 평소 몸 관리를 얼마나 잘 하는가, 부상전력이 있는가에 따라 연봉고과가 매겨지는 현 시스템에서는 선수 자신이 큰 부상을 감수해야만 하는 몸쪽 공은 최대한 맞지 않도록 피해야 하는 게 상책. 그러나 몸에 맞는 공의 수는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왜 일까? 연봉을 많이 주던 시절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그들이 몸 보다는 팀이 우선시 하는 살신성인의 선수들이 차고 넘쳐서? 우리나라는 역사가 길지 않아 그 표본을 정확히 산출할 수 없으나 미국 프로야구에서는 지금처럼 단단한 공이 공인구로 사용되기 시작한 이후 몸에 맞는 공의 개수가 감소하다 1990년대 후반에 들어가며 다시 급격히 늘어나게 됐는데, 그 원인으로 보호대의 등장을 꼽고 있다. 휘황찬란한 작전을 내리고, 홈으로 내달리려는 3루 주자를 위해 힘차게 팔을 휘휘 돌려대는 3루 코치들과는 달리 관중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1루 코치는 1루에 나간 주자들과 주먹을 마주치고 귓속말을 전달하며 홈런이 나왔을 때 타자와 하이파이브 하는 정도의 극히 보조자적인 역할에 지나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요즘에 보자면 그들은 코치가 아니라 물건 보관인쯤으로 직종변경을 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잠시 경기의 장면들을 떠올려보자. 한 명의 주자가 나간다. 물건을 받아온다. 또 다른 주자가 나간다. 또 물건을 받아든다. 세 번째 주자가 1루에서 아웃된다. 그에게 들고 있던 2명의 물건을 넘겨준다. 대게의 경우 만루가 되면 누군가 나와 대신 받아간다. 1루 코치를 자세히 봤다면 그 팀의 덕아웃이 3루에 자리했을 경우 이런 모습을 심심치 않게 봤을 것이다. 투수가 고의사구를 던졌을 경우 보호대를 하나씩 하나씩 풀어헤치면서 투수에 암묵적인 불만을 표시하는 것도 야구장의 한 장면이 됐다. 자기가 친 타구가 아래쪽으로 날아가 다리에 맞고 부상당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등장한 다리 보호대는 배리 본즈가 팔꿈치에 두툼한 보호대를 착용하고 나오면서 유행을 타기 시작했다. 당시 홈런 신기록을 세우고 있던 본즈를 상대로 투수들이 빈볼 성 공을 많이 던지자 착용한 것이 그 본격적인 시초였다. 팔꿈치 보호대의 등장 이후 타자들은 투수들의 몸쪽 위협구에 공포를 덜 느끼게 됐을 뿐 아니라 몸쪽 공에 적극적인 대처도 할 수 있게 됐고, 조금 더 타석에 바짝 서면서 바깥쪽 공략에까지 자신감을 얻게 됐다. 투수들의 공이 갈수록 빨라지고 보지 못하던 마구들이 생겨나는 것과 달리 웨이트 트레이닝, 단풍나무 방망이 사용 외에 효과적인 공격력 상승 방법을 찾지 못했던 타자들에게 팔꿈치 보호대는 대단한 물건이었다. 문제는 보호대의 사용이 몸쪽 공에 대한 위협을 덜 갖는데서 나아가 이제는 의도적으로 공을 맞고 나가기 위해 몸을 안쪽으로 들이대는 타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데 있다. 그 아픈 공을 피하지 못해 고통을 받는 대신 주던 1루를 이제는 출루를 위한 또 하나의 수단으로 악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굳이 특정 팀, 특정 선수를 논할 수 없을 정도이다. 야구 규칙 5.09항에는 [투구가 정규 타석 자세에 있는 몸 또는 옷에 닿았을 경우 볼 데드가 되어 1개의 진루가 허용된다]고 몸에 맞는 공의 정의를 명시하고 있지만, 다음 6.08(b)항에서 [타자가 투구를 피하지 않고 그 투구에 닿았을 경우에는 볼로 선언된다]고 추가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경기에서는 피하지 않고 그대로 맞은 경우, 심지어 공에 몸을 갖다 댄 경우에도 그대로 몸에 맞는 공을 선언하고 있다. 순간적으로 날아오는 공에 대해서 피했는지 아닌지를 판단할 명확한 기준이 없고, 몸을 움직여 맞았을 때에도 피하다 맞았다고 우긴다면 주심이 이를 반박하기 어렵다 주심은 타자가 공을 맞는 정 반대쪽의 타자 뒤쪽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의 강속구 투수 페드로 마르티네즈나 로저 클레멘스는 이런 타자들을 상대로 자신의 가장 강력한 공을 몸쪽으로 던져대는 강심장 투수들이다. 보호대로 맞고 나가려는 타자들에게 보호대가 없는 쪽에, 혹은 보호대에 맞아도 아플 공을 던져 이래도 몸쪽에 바짝 붙어 내 공을 맞으려 하겠냐는 식의 맞불작전을 펼쳤다. 결국 이런 일들이 도화선이 돼 많은 빈볼시비와 난투극을 야기하기도 했지만 몸쪽 승부를 하지 못하는 투수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건 타자들도 인정하는 야구계의 원칙이다. 이렇게 야구 규칙의 태생에 반하는 사건들이 일어나면서 야구계 일각에서는 팔꿈치 보호대를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으나 부상을 뚜렷하게 방지할 수 있는 품목의 사용을 제안하자는 주장이 통과될 리는 만무하다. 자기 몸에 약간의 변화만 생겨도 컨디션이 왔다갔다하는 선수들이 몸에 갖가지 장비를 차고 나오면서 자신의 감각도 바뀌고 배트 스피드도 늦어지는 걸 감수하며 이러고 있는 실정이니 그들도 어찌 보면 피해자다. 투수들의 위협구 때문에 생긴 보호대냐, 보호대 때문에 늘어난 사구(死球)냐는 것은 결국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식의 원초적인 다툼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결국엔 투수와 타자 모두 정직한 승부로 이런 논란을 잠재워야 한다. 단지 1루로의 출루를 위한 이런 몸 들이대기 전략은 투수와 타자들 사이에 신뢰를 잃게 할 뿐 아니라 몸쪽 공에 타격을 하기보다는 얻어맞자는 식의 대응으로 타자들의 공격 리듬을 잃게 할 가능성이 높고, 무엇보다 멋진 몸쪽 꽉 찬 공으로 삼진을 잡아내고, 또 그 공을 때려내 안타를 치고 나가는 걸 보길 원하는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행위라는 걸 항상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지금의 저 몸에 맞는 공이 진짜 몸에 맞는 공인지 충분히 피할 수 있음에도 일부러 맞은 공인지는 투수가 타자에게 던진 공이 빈볼인지 아닌지를 파악하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이다. -엠엘비파크 유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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