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터Ms.박의라이브갤러리]미술,뇌물과선물사이

입력 2009-02-04 00: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얼마 전 정국을 강타한 한상률 전(前)국세청장의 낙마에는 그림로비 스캔들이 일등공신을 했다. 이 스캔들은 공직사회의 불문율인 청렴에 대한 국민의 기대감을 또 한번 산산조각 냈다. 2007년 신정아 사건, 2008년 삼성로비 사건, 그리고 올 초 국세청장 비리 사건까지 미술은 이제 권력층 비리의 확실한 진앙지로 자리 잡았다. 이번 사건에 대한 언론의 초점은 그림의 용도가 선물이냐 뇌물이냐에 맞추어져 있다. 대가성의 유무, 인사 청탁의 유무, 심지어 도덕적 의미의 선악의 기준에 따라 그것은 선물이 되기도 뇌물이 되기도 할 것이다. 사실 그림로비는 오늘날 한국사회에만 해당되는 일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이탈리아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 있는 보티첼리의 ‘동방박사의 경배’(1475년경)를 들 수 있다. 이 그림은 당시 피렌체의 신흥부자 델 라마가 피렌체 최고의 세도가인 메디치 가문과의 친분을 대외적으로 과시하기 위해 교회 예배당에 거는 방식으로 선물(?)한 것이다. 보티첼리는 델 라마의 지시에 따라 동방박사와 그 수행원들을 메디치 가문 사람들로 바꾸어 그렸다. 그런데 문제는 어떤 물건을 선물 또는 뇌물로 분명하게 판가름할 수 있냐는 것이다. 왜냐하면 선물의 개념 규정이 애매하기 때문이다. 가령 A가 답례를 기대하지 않는 순수한 선물로 그림 한 점을 B에게 주었다고 치자. 그런데 B는 시간이 지날수록 A에게 갚을 수 없는 마음의 부담감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B는 보답의 의미로 A에게 골프채를 준다. 이렇게 하지 않고서는 B가 마음의 빚을 결코 덜어낼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때 B가 A에게 준 골프채는 선물인가, 선물이 아닌가? 물론 여기서 A와 B의 사회적 위치나 주고받은 선물의 금전적 가치, 그리고 주고받을 때의 정황이나 그 파급효과에 따라 답은 달라질 수 있겠으나, 문제의 핵심은 변하지 않는다. 즉 답례를 기대하지 않는 선물일수록 받은 이의 채무감은 증가하게 되고, 바로 이 채무감 때문에 애당초 순수하게 받은 선물일지라도 나중에 가서는 선물이 아닌 것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 같은 상황이 계속 되다보면 순수하게 시작된 인간관계도 결국에는 부채관계로 엮이고 마는 그야말로 비즈니스가 될 것이다. 프랑스의 사상가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 1930∼2004)는 선물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상호이익, 보답, 교환, 반대급부로서의 선물 및 채무가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역설한 바 있다. 즉 선물다운 선물이 존재하려면 받는 사람과 주는 사람 모두에게 선물처럼 보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이번 사건의 그림은 애당초 선물이 될 수 없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가 남아 있다. 바로 미술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다. 이 문제는 신정아 사건과 삼성로비 사건 때도 정치 논란에 밀려서 슬며시 사라져버렸다. 이제 정말로 우리가 미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진지하게 자문해야 할 때다. 오늘날 미술이라고 하면 떠올리게 되는 것들은 미술관, 갤러리, 큐레이터, 어려운 것, 천재, 경매, 돈, 부자, 고급취미, 사치, 로비, 뇌물, 비자금 등 하나같이 보통 사람의 일상에서는 받아들이기 버거운 것들이다. 앤디 워홀(Andy Warhol)이 처음 사용한 ‘비즈니스 아트’만큼 오늘날 미술의 위상을 적절히 묘사하는 말도 없다. 사실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미술은 2백 년이 조금 지난 신발명품이다. 18세기 전까지만 해도 오늘날 미술이라고 부르는 것은 일상생활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메리 앤 스타니스제프스키(Mary Anne Staniszewski)는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에서 이 점을 분명히 했다. “미술은 근대-지난 200년간-의 발명품이다.” 더 많은 먹잇감을 기원하기 위해 동굴에 그린 들소와 야생마의 사냥 장면, 다산을 기원하기 위해 조각한 비너스상, 주일마다 예배를 드리러가는 성당의 모자이크와 스테인드글라스, 카메라가 발명되기 전 사진의 역할을 했던 초상화 등등 18세기 이전에는 생활의 한 부분으로 동고동락했던 것들이 18세기를 기점으로 ‘파인 아트(fine art)’, 즉 ‘순수미술’로 재탄생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바와 같이 순수미술의 행보는 결코 순수하지 않았다. 그것은 사회적 차별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출발했기 때문이다. 그것의 목적은 다름 아닌 특권층과 그렇지 않은 계층간의 사회적 차이를 정당화하는 것이었다. 1789년 프랑스 혁명으로 왕정 몰락 후, 프랑스의 새 임자가 된 자본가와 시민들이 맨 먼저 착수했던 일은 다름 아닌 옛 궁전의 진열실을 미술관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그것이 지금의 루브르 미술관이다. 자유·평등·형제애로 무장한 프랑스의 새 주인들은 미술관을 통해 자신들이 그토록 분노했던 권위와 불평등의 상징인 왕정의 특권적 삶을 다시 시작하게 된다. 갈수록 미술은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되었고, 모르면 배워야 했고, 최종적으로 자본과 결합하게 되면서 사회적 성공을 나타내는 지표가 되었다. 사태가 이렇다 보니 미술가의 똥을 보고서도 ‘뭔가 있다’고 스스로 최면을 걸어 그 의미를 찾아야 할 판이다. 혹자는 이번 사건을 두고 그림은 뇌물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림을 선물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정신적 품격이 높음을 상징하는 것이고…”, “그림을 뇌물로 바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림은 기호품이기 때문에…” 하지만 이것은 미술에 대한 일면적 파악이다. 그림 선물이 정신적 품격이 높음을 상징한다고, 곧 기호가 파인하다고, 순수한 것이라고, 그래서 뇌물이 아니라고 믿는 일반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생각들이 아직까지 한국의 미술계를 지배하고 있고, 설상가상으로 미술에 대한 다른 종류의 즐거움이 있다는 사실마저 은폐한다. 영어의 선물로 번역되는 기프트(gift)는 독일어로 독약을 뜻한다. 오늘날 미술에 대한 이런 생각들이 고(故)최욱경 화백의 ‘학동마을’을 우리 사회의 약이 아니라 독으로 만들었다. 박 대 정 유쾌, 상쾌, 통쾌 삼박자가 맞아 떨어지는미술 전시를 꿈꾸는 큐레이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