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엄마의내리사랑이제돌려드릴게요

입력 2009-02-2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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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프로그램을 들으며 버릇이 하나 생겼습니다. 그것은 매사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과 지난 일들을 생각할 때면 나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사연을 쓰고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생각만 할뿐 막상 컴퓨터로 옮긴다는 게 참 쉽지가 않습니다. 지난번 어떤 사연을 듣고, 생각나는 일이 있어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됐습니다. IMF가 시작되던 겨울이었습니다. 저희 남편이 하던 사업이 부도를 맞아 저희는 많은 빚을 떠안고 길거리로 나앉게 됐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 했고 이렇게 생이 끝나는 건 아닐까 참 암울했습니다. 저희 친정엄마께서 어려운 저희 형편 알고, 수십 년을 한푼 두푼 모아오신 쌈짓돈과 결혼할 때 받으신 쌍가락지를 선뜻 내주셨습니다. 저희는 월세방과 중고트럭 한대를 살 수 있었고, 트럭으로 물건을 팔며 장사를 했습니다. 7살, 6살 아들도 저희 엄마가 맡아 키워주셨습니다. 엄마께선 뇌졸중질환이 있으셔서 시력저하와 불편한 다리를 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한사코 아이들을 돌봐주시겠다 하시며 아이들 받아쓰기, 구구단 외우기, 쉬운 한자공부까지 봐주셨습니다. 그리고 수시로 간식거리를 싸서 저희 장사하는데 오기도 하셨습니다. 너무 죄스러운 맘에 단 한번도 환하게 엄마를 맞아드린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정월대보름날이었습니다. 그 날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손님은 없고, 그렇게 신세한탄 하며 앉아있는데 엄마가 저 멀리서 보따리를 들고 오는 게 보였습니다. “배고프지? 마침 손님도 없으니 잘됐네. 이 서방이랑 밥 먹고 해라” 하며 오곡밥을 싸다 주셨습니다. 저는 그만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 남들은 딸 낳아서 비행기 타고 다닌다는데 엄마는 못난 딸, 사위 때문에 노년에 손주 뒷바라지에 도시락까지 싸오신다는 게 너무도 죄송해서 화를 냈습니다. “밥 굶는 세상도 아닌데 무엇하러 밥까지 싸 가지고 다녀요! 다리도 시원치 않으시면서! 엄마 때문에 속상해죽겠어!” 저는 미안한 마음을 화로 표현해버렸고, 엄마는 “그래 알았다 알았어. 이건 해온 거니까 먹고 해” 하시며 돌아서는데 그 뒷모습이 너무도 쓸쓸해 보였습니다. 그 모습에 저는 왈칵 눈물이 쏟아졌고, 남편도 태연한 척 밥을 먹는데, 눈가에 눈물이 촉촉했습니다. 그렇게 친정엄마의 사랑과 보살핌으로 저희는 서서히 일어설 수 있게 되었고, 이제는 작은 가게가 생겨 차타고 힘들게 여기저기 옮겨 다니지 않아도 된답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도 다 커서 이제는 외할머니 고마운 줄 알고 잘 따르고 있습니다. 저희도 어머니께 효도해 드리려고 애쓰고 있답니다. 올해 대보름 때는 오곡밥과 나물, 부럼까지 세팅해서 제가 엄마께 한 아름 안겨드렸습니다. “아이고∼ 이게 다 뭐냐∼ 이걸 네가 다 했어?” 하며 좋아하시는데, ‘나도 예전에 저렇게 웃으며 도시락 받아드릴걸…’하며 또 다시 마음이 아팠답니다. 엄마에게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엄마 더 아프지 마세요! 오래 오래 제 곁에 있으시면서 제가 해드리는 효도 다 받으셔야죠. 엄마가 주셨던 대보름의 그 도시락,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가슴에 남아있습니다. 뒤늦었지만 엄마, 그 때 참 감사하고 또 죄송했습니다.” 경남 김해|손혜진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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