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VS가수‘노래시간’놓고줄다리기‘1초전쟁’

입력 2009-03-1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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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분짜리 노래를 2분 30초로 자르라고?” VS “조금이라도 더 잘라야 다른 가수들도 살지.” TV 음악순위 프로그램 PD와 가요관계자들 사이에 요즘 ‘1초 싸움’이 치열하다. 1초라도 노래를 줄여 한 명의 가수라도 더 세우려는 제작진과 조금이라도 더 길게 신곡을 부르고픈 가요제작사들 사이에 줄다리기가 팽팽한 것. 제작사나 가수 입장에서 어렵게 만든 노래를 거의 반토막으로 만드는 괴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노래를 부를 수 있는 프로그램이 극히 한정된 상황에서는 울며 겨자먹기로 노래에 칼을 들이댈 수밖에 없다. TV 음악 순위 프로그램과의 ‘초싸움’에 지친 일부 제작자들은 아예 신곡을 발표하기 전에 방송용 음원을 따로 제작하거나 음악을 3분 이내로 맞춰 만들기도 한다. ○ 순위 프로그램 출연 신인가수 음원은 무조건 2분40초 신인가수 A는 음악 순위 프로그램 첫 출연을 앞두고 3분24초 짜리 노래를 2분40초로 자르라는 제작진의 통보를 받았다. 원곡에서 44초나 줄면 노래의 힘이 빠진다고 사정한 끝에 결국 20초를 잘라 3분4초로 합의를 봤다. 신인그룹 B도 마찬가지였다. 노래의 포인트라 할 수 있는 전주를 들려주기 위해 1절 후 바로 2절 후렴구를 부르는 편법을 택했다. 통상 TV 음악 순위 프로그램에서 신인가수가 나올 때 음원은 2분30초에서 길게는 3분이 마지노선이다. 그 이상 길어지면 어김없이 방송사의 제재가 들어온다. 신인에게 그만큼의 시간을 할당할 여유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신인은 매일 쏟아지고, 이들이 설 수 있는 음악 프로그램은 계속 줄어드는 상황에서 일단 방송에 출연하는 것 자체가 치열한 경쟁이다. 하지만 어렵게 출연을 한다고 해도 공들여 준비한 노래가 뭉텅 잘려나가는 아픔을 겪어야 한다. 신인들은 이런 걸 ‘성장통’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한 신인그룹은 “오랫동안 준비했는데 3분도 채 안 되는 시간 안에 모든 걸 보여줘야 한다는 건 매우 힘든 일”이라며 “그나마 무대에 설 수조차 없는 다른 동료들에 비해 소속사에 힘이 있는 우리는 상황이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 아이들(idol) 그룹, 톱스타 컴백과 맞물리면 더 불리 신인가수 C의 소속사측은 얼마전 한 순위 프로그램 제작진에게 거세게 문제를 제기했다. 3분이라는 신인 기준선에 맞춰 3분2초 분량으로 음원을 제작했는데, 이를 다시 2분 40초로 바꾸라는 통보를 받았기 때문. 그런데 C가 출연하기로 한 날 공교롭게도 한 인기 아이들 그룹이 컴백을 했다. 70∼80분 정도의 방송 시간 중 이들의 스페셜 컴백 무대로 7분∼10분 정도를 할애하면 어쩔 수 없이 다른 가수, 특히 신인가수의 출연 시간을 줄일 수밖에 없다. 유난히 대형 스타들의 컴백이 많았던 2008년, 화려한 톱스타들의 컴백 무대를 위해 많은 신인들이 어렵게 확보했던 출연 기회가 취소되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이른바 ‘3분 안에 노래를 마쳐야 한다’는 기준은 신인 뿐만 아니라 높은 인지도를 가진 가수에게도 해당한다. 한 기획사 관계자는 “유명 가수를 가진 기획사에게는 ‘20분이라도 줄 테니 무대에 서 달라’고 조르고 신인가수 기획사에게는 무조건 음원을 자르라고만 하니 씁쓸할 따름”이라고 밝혔다. ○ 제작진 “한 가수당 10초를 줄이면 한 명이 더 출연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가수나 음반 관계자들의 불만에 대해 순위 프로그램 제작진도 할 말은 많다. 어차피 프로그램 수나 방송 시간이 한정된 상황에서 출연을 기다리는 가수는 늘 많기 마련. 출연 가수들이 10초씩만 노래를 줄이면 다른 가수가 한 명이라도 더 방송에서 자기 노래를 소개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는 것이다. 한 지상파TV 음악프로그램 PD는 “신인가수 뿐 아니라 모든 가수들이 음원을 시간에 맞춰 편집을 한다”며 “한 가수의 무대가 3분이 넘어가면 시청자들이 지루해하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한 케이블TV 음악프로그램 PD는 “보통 하루에 20팀 넘는 가수들이 방송에 나오는데 3분 넘으면 순위 발표, 1위 후보 소개나 진행자의 멘트는 아예 할 시간도 없다”며 “솔직히 2분30초가 가장 이상적이며 3분도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홍재현 기자 hong92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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