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우왕영은의행복한아침편지]임부복입으려던남편

입력 2009-05-28 14: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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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결혼 7년차의 주부인데요. 지금 둘째를 임신해서 8개월째 돼가고 있습니다. 곧 있으면 출산을 하지요.

날씨도 많이 따뜻해지고, 혹시 봄여름에 입을 만한 임부복이 없을까 찾아봤더니 8년 전 저희 친정언니가 입었던 임부복이 나오더라고요.

저는 언니가 입었던 낡은 임부복을 빨아서 컴퓨터 방 옷걸이에 걸어서 말렸습니다. 날씨가 좋아서 방에 걸어놔도 금방 마르더라고요.

그런데 그날 저녁 남편이 들어와서 컴퓨터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저는 내심 남편이 그 임부복을 보고, “하나 사자” 얘기 해주길 기다렸는데, 남편은 저녁 늦게까지 별 말이 없었습니다.

그날 밤, 자려고 누웠는데 남편이 뭘 하고 있는지 컴퓨터 방에서 나오질 않는 거예요. 가끔 컴퓨터로 게임도 하고 영화도 보고 하니까, 그러느라 안 오나 방문을 살짝 열어봤는데, 세상에 남편이 제 임부복을 입으려고 낑낑거리고 있는 겁니다. ‘어머? 내 임부복을 입고 뭐 하려는 거지? 저 인간 변태 아냐~~~’ 저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사실 부끄러운 얘기일 수도 있는데 남편이 가끔 컴퓨터로 야동을 보거든요. 혹시 야동 속에 그런 장면이 나와서 따라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남편한테 뭐라고 따져 묻지도 못 하고 조용히 침실로 돌아왔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남편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는 거예요.

거기다 침실로 돌아온 남편 역시 쉽게 잠을 청하지 못하고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남편이 제게 물어보더군요.

“여보. 컴퓨터 방에 걸려 있는 그 베이지색 바지 말이야. 그거 내 바지 아니야? 당신이 예전에 봄옷 꺼내 놓는다고 했잖아. 그래서 내 봄 바지 꺼내 놓았나 했는데?”라고요.

그래서 제가 “베이지색 바지 그거 내 거야. 어제 빨아서 걸어놓은 거야 왜?” 하니까 저희 남편의 눈이 동그래져서 “정말? 그게 당신 거라고? 그런데 바지 길이는 왜 저렇게 길고, 허리는 또 왜 저렇게 커?” 하더군요.

그래서 “임부복이니까 그렇지. 배 위까지 올라오게 입어야 하니까 바지 길이가 길고, 허리도 뒤에 보면 줄이는 거 있잖아. 허리둘레랑 배 크기에 따라 줄였다 늘렸다 하는 거야~”라고 하자 남편이 안도의 숨을 내쉬며 “난 또 내가 살 찐 줄 알고 깜짝 놀랐잖아. 아니 바지를 입어보는데, 허벅지가 도저히 안 들어가는 거야. 그동안 내가 살이 많이 쪘는 줄 알고, 당장 헬스클럽 가서 회원등록 하려고 그랬지” 하더라고요.

사실 저희 남편은 제가 사다주는 옷만 입기 때문에 자기 옷에 어떤 게 있는지 잘 모릅니다.
그냥 제가 꺼내주면 입고, 안 꺼내주면 입던 옷 그대로 입고 그럽니다.

그러니까 그날 밤에도 못 보던 옷이 걸려 있으니까 혹시 자기 건가 하고 입어 본 거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다리가 들어가지 않아서 낑낑거리면서, 운동 좀 해야지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밤에 잘 때는 괜히 우울한 생각이 들었대요.

‘곧 있으면 마흔. 나이를 자꾸 먹으니까 살도 안 빠지고 찌기만 하나’그런 걱정에 밤새 뒤척였다고 했습니다. 그것도 모르고 제가 오해를 했으니 오히려 제가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암튼 간만에 남편의 엉뚱한 행동 때문에 저희 부부 모처럼 많이 웃었는데요, 너무 무던하기만한 남편. 이젠 저한테도 관심 좀 갖고, 자기 자신한테도 관심을 많이 가져줬으면 좋겠어요.

경기도 의정부시|박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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