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우연히 보건소에 갔다가 건강검진을 받았는데요, 내장비만이라는 충격적인 진단을 받았습니다. 사실 저는 겉에서 보기에 마른 편이라 이런 결과가 나올 줄은 꿈에도 상상 못했거든요.

그런데 보건소에서도 말랐다고 방심하면 안된다고, 기름진 음식은 피하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집에 가는 내내 고민하다가 가족들 앞에서 “이젠 채식위주로 밥을 먹어야겠어요. 그러니까 이제 다들 육류는 그만!”이라는 중대 발표까지 했습니다.

남편은 상당히 아쉬워했지만 이참에 고기에 대한 욕심과 집착, 미련을 버리기로 하고 저와 함께 채식의 길을 걷기로 했죠.

그래서 지난 주말, 가족들의 사기도 북돋아주고, 아이에겐 채식과 친해지라는 의미에서 채식뷔페에 가기로 했습니다. 알아보니까 풍부한 각종 채소에 죽, 모자란 단백질은 콩을 이용해 만든 다양한 음식들로 섭취가 가능하다고 하니, 우리 가족이 가기에는 딱이었죠.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은 제가 뷔페 먹으러 가자고 하니까 신난다면서 따라왔는데요, 들어가는 순간부터 “엄마, 여기는 가격이 왜 이렇게 싸요?” 라면서 놀라더군요. 저는 아들의 입으로 채소들이 쑥쑥 들어갈 것을 상상하면서 속으로 ‘이 녀석아, 전에는 고기가 있으니까 그랬지, 여기는 풀밭인데 그렇게 비싸면 말이 되니?’라고 생각하며 일절 모르는 척 했습니다. 일단 음식과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고 본격적으로 그릇에 음식들을 담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은 늘 그랬듯이 김밥과 잡채를 먼저 찾았습니다.

뭐, 이곳에도 김밥과 잡채가 없는 건 아닙니다만, 고기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잡채와 햄이 빠져있는 김밥이 준비돼 있었죠. 아들은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전혀 아랑곳 하지 않고 음식들을 한가득 담아 오더라구요.

그리고는 자리에 앉아서 입 안 가득 음식을 밀어 넣는데, 몇 번을 오물오물 씹더니 “엥? 엄마, 여기 맛이 왜 이래요? 고기는 하나도 없고, 뭔가 허전한데… 엄마는 안 그래요?”하고는 그제서야 뭔가 다르다는 것을 눈치 챘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름 수습한다고 “고기가 없기는 왜 없어, 이것 봐, 엄마는 불고기도 가져 왔는 걸?”하고 제 접시에 있던 콩으로 만든 불고기를 덜어줬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한입 먹어보더니 “에이, 고기랑 뭔가 다른데? 이거 고기 아니죠?” 하고는 귀신같이 알아 차리더라구요.

“엄마, 여긴 왜 이렇게 풀만 많아요? 나는 갈비도 먹고 싶고, 회도 먹고 싶은데, 무슨 뷔페가 이래요?”이러는데, 남편은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그러게, 여보, 나도 좀 씹고 싶다.”이러면서 남자 둘이 제 앞에서 시무룩하게 포크만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습니다.

결국 돌아오는 길에 두 남자 성화에 못 이겨서 얼른 감자에 양파, 당근 넣고 매콤하게 닭볶음탕을 만들었습니다. 마무리로 당면까지 넣어주니, 그제서야 살 것 같다면서 큰 토종닭 한 마리를 해치워 버리는데, 밥통에 남은 밥까지 싹싹 긁어서 국물에 비벼 먹더라구요.

둘이 얼마나 맛있게 먹던지, 저도 끝까지 참다 참다 결국엔 같이 밥 비벼먹었습니다. 이렇게 채식위주로 살아야겠다는 제 계획은 무참히 무너져 버렸고, 아무래도 다시 계획을 세워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게 생각해보니까 내장비만이라고 꼭 채식을 해야 할 이유는 없는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일단은 고기 먹는 양을 조금씩 줄이고 운동을 같이 하려는데요, 이렇게 한다면 꼭 채식까지 할 필요는 없겠죠?

전북 익산시 | 박희진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