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1년 4개월 전, 2008년 4월의 어느 날 밤이었다.
영화 ‘해운대’의 제작을 준비하고 있던 윤제균 감독의 전화기 너머로 술에 잔뜩 취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배우 설경구였다.
설경구를 ‘해운대’의 주연으로 캐스팅하려고 결심했던 윤 감독은 망설임도 없이 늦은 밤 달려 나가 그를 만났다.
그날 설경구와 윤제균 감독은 술을 마시며 이야기꽃을 피우다 함께 울음을 토해냈다. 두 사람은 그때 왜 같이 울었는지 이유를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당시 두 사람의 만남은 다섯 번째 1000만 관객 한국영화가 탄생하는 출발점이 됐다.
‘해운대’의 1000만 관객 돌파가 초읽기에 들어선 지금, 이 영화에 대한 설경구의 남다른 선택은 영화계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해운대’가 800만 관객을 넘어선 12일 밤 윤제균 감독은 영화를 개봉하기까지 겪은 숱한 과정 속에서 가슴 속에 쌓아두었던 만감으로 눈물을 흘렸다. 이때 굵은 눈물을 흘리던 윤 감독의 어깨를 감싸안은 사람도 바로 설경구였다.
설경구는 곧 ‘해운대’를 통해 두 편의 1000만 관객 영화를 가진 배우가 된다. 2003년 영화 ‘실미도’에 이어 ‘해운대’는 23일께 1000만 관객을 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국 배우 중 필모그래피에 1000만 관객 영화가 두 편인 배우는 그가 유일하다.
누구에게나 자랑할 만한 의미있는 기록이지만 설경구는 이에 대해 정작 무덤덤한 표정이다. 12일 밤 기자들과 만나 생맥주를 나누며 축하의 말을 건넸지만 그는 쑥스러운 듯 그저 웃기만 했다.
그리고 그가 밝힌 사실. “영화 시나리오도 보지 않고 ‘해운대’ 출연을 결정했다”고 했다. 시나리오는 출연을 결심한 뒤에 받아보았다. 설경구는 이미 윤제균 감독의 ‘1번가의 기적’을 본 뒤 관심을 가진 상태였다. 윤 감독으로부터 ‘해운대’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은 그는 이미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에 빠져든 상황이기도 했다.
한 마디로 감독에 대한 신뢰가 밑바탕이 된 셈이다. 또 한 편의 1000만 관객 영화인 ‘실미도’ 때도 그랬다. 설경구는 2002년 ‘공공의 적’으로 인연을 맺은 강우석 감독에 대한 신뢰로 영화에 출연한 바 있다.
그리고 그의 결정 이후 ‘실미도’는 한국영화 사상 첫 1000만 관객 영화로 남았다. 감독을 믿는 배우의 열정으로 그는 두 편의 1000만 영화를 갖게 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설경구는 ‘1000만 배우’라는 별칭엔 무관심한 듯, 덤덤히 웃었지만 사람에 대한 신뢰와 믿음으로써 카메라 앞에 나서고 있다. 그건 또 이야기를 바라보는 배우의 정밀한 시선이 아니고서는 설명될 수 없는 것.
설경구는 “난 감독을 믿었다”는 말을 몇 번이고 되뇌었다. 그는 현재 영화 ‘용서는 없다’를 촬영 중이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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