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아침편지]딸대학등록금안낸척아빠의‘소심한복수극’

입력 2009-09-04 0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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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해 대학에 들어간 작은 딸은 방학이 시작되자, 그동안 대학생활에 적응하느라 피곤했는지 집 안에서 빈둥거리며 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농담으로 “이 녀석아, 남들은 방학 때 아르바이트 해서 학비도 보태고 하는데, 너는 뭐 하는거냐?”했더니, 못 들은 척 하고 방으로 들어가 버리더군요.

다음 날, 딸은 제 눈치가 보였는지 생활정보지를 잔뜩 들고 와서는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저러다 말겠지’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퇴근해서 돌아오니 아내가 하는 말이 오늘부터 아르바이트 시작했다고 하는 게 아니겠어요?

어떤 일이냐고 물어보니까, 동네에 있는 횟집에서 홀 서빙을 한다고 했습니다. 나이도 어린 것이 힘든 일을 하는 게 안쓰러웠지만, ‘며칠 하다 말겠지’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 녀석이 열흘이 지나도 힘들다 소리 한 번 안하고 꾸준히 일을 하러 가더라구요. 그렇게 날짜가 지나고, 한달만 하기로 한 아르바이트가 끝난 날, 딸애가 하얀 봉투 하나를 내밀더군요. 뭔가 했더니 65만원을 벌었는데, 그중에서 제 용돈이라며 10만원을 넣어 준 것 이었습니다.

나머지로는 뭘 할 거냐고 물으니, “내가 벌었으니까 옷도 사고, 친구들이랑 놀러도 가고, 내 용돈 해야지” 이러는데, 이 녀석이 대견하면서도 65만원은 우리에게 다 주고, 용돈을 받아가야 하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러다 며칠 후, 2학기 등록금을 내라며 고지서가 날아왔는데, 일주일 내로 납부를 안 하면 등록이 안 된다고 써있었습니다. 그래서 인터넷 뱅킹으로 얼른 납부를 해놓고, 고지서는 봉투 옆에 나란히 놔뒀는데, 납기일이 다가오도록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고지서가 신경이 쓰였는지 딸애가 “아빠, 3일 밖에 안 남았는데. 어떡해요? 등록 안 해주실 거에요?”하더라구요.

그래서 “니 돈 벌어서 니 맘대로 쓰니까, 나도 내 돈 갖고 내 맘대로 할 거야. 아빤 돈 없어서 등록금 못 주니까, 알아서 해라, 요즘은 학자금 대출도 많이 해준다던데, 정 급하면 대출 받아서 등록금 내고, 나중에 졸업하면 갚던가. 보증인 필요하면 아빠 된 도리로 보증은 서 줄 테니까 걱정 말어”하고 딸의 속을 박박 긁었습니다.

그러자 딸은 그제서야 옷 몇 벌 사고, 친구들에게 한 턱 쏘고 남은 돈이라며 등록금에 보태라고 40만원을 내놓더군요.

그래서 전 모르는 척하고 돈을 다 받았지요. 이 녀석 그래도 일 한다고 고생했으니까, 2학기 때 공부 열심히 하라고 보약이라도 좀 지어줄까봐요.

아무튼 이렇게 해서 소심한 제 복수는 끝이 났지만, 착한 우리 딸,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다 이해해주겠죠?

From. 전명기|부산광역시 사하구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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