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데뷔전 실격 ‘망신’…기권 소녀 ‘오명’

입력 2009-11-1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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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위의 수난사
2005년 10월 17일은 미셸 위의 ‘수난’(受難)이 시작된 날이다. 일주일전, 자신의 생일날(10월11일) 프로 전향을 선언하고 첫 출전한 삼성월드챔피언십에서 4라운드 합계 8언더파 280타를 쳐 4위로 경기를 마쳐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른 듯 했다. 하지만, 2시간 뒤 실격 통보를 받았다.

3라운드 때 7번홀에서 숲 속에 떨어진 볼을 찾아 언플레이어블(Unplayable)을 선언하고 드롭하는 과정에서 오소(誤所)플레이 규정을 어겼다.

미셸 위는 눈물을 흘리며 억울함을 밝혔지만 경기위원회의 결정은 바뀌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16세에 불과하던 미셸 위를 옹호하는 발언이 많았다. 그러나 한 기자의 제보로 시작된 미셸 위의 수난시대는 이후 계속됐다.

결정적인 계기는 2007년 손목 부상을 이유로 라운드 중 경기를 포기하면서부터다. 긴 트리뷰트 대회에 초청선수로 출전했다가 1라운드에서 16번홀까지 14오버파를 기록하고는 손목이 아프다는 이유로 경기를 포기했다. LPGA는 ‘투어카드가 없는 LPGA 투어 비회원은 18홀 스코어가 88타 이상이면 해당 시즌 투어 대회 출전을 금지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그 다음에 이어졌다. 다음주 열린 맥도널드 LPGA 챔피언십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듯 연습라운드에 나서면서 의도적인 기권이었다는 비난을 받았다.

US여자오픈에서도 졸전 끝에 “손목이 아프다”며 라운드를 포기했다. 1라운드에서만 11오버파 82타를 쳤던 미셸 위는, 2라운드에서도 9번홀까지 6오버파를 더 쳤다. 예선탈락이 뻔한 상황에서 부상을 핑계로 기권을 선언했다.

미셸 위의 이름 앞에 ‘기권소녀’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게 만든 사건이다.

2008년에는 우승을 눈앞에 두고도 부주의한 행동으로 눈물을 곱씹었다. 7월 열린 스테이트 팜 클래식에서는 스코어 카드에 사인을 하지 않고 제출했다가 망신을 당했다. 3라운드까지 단독 2위로 경기를 마쳐 우승을 넘봤지만 작은 실수 하나로 물거품 됐다.

지난 5월엔 국내에서 열린 롯데마트여자오픈에서 프로암 참가를 거부해 또 한번 소동을 일으켰다. 캐디를 동반하지 못하도록 한 KLPGA의 규정에 “이해할 수 없다”며 프로암 참가를 거부했다.

선수가 프로암 출전을 거부할 경우 대회 출전 취소는 물론 벌금, 기타 대회 출전권 발탁 등의 제재를 받지만 미셸 위는 초청선수였다는 이유로 대회에는 그대로 출전했다.

이런 와중에 미셸 위는 2008년 리노타호오픈까지 13차례 남자 대회에 출전하며 성대결을 펼쳐 더욱 더 심한 ‘눈총’을 받았다.

‘미운오리’, ‘문제아’라는 갖은 비아냥에 속이 상했던 미셸 위가 마침내 1000만 달러짜리 활약을 펼치며 논란의 종지부를 찍었다. 한번의 우승으로 ‘과거’를 덮기엔 부족하지만, 그의 나이 이제 스무 살이다.

주영로 기자 na187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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