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봉의 스타탐구] SK 정근우 “날 키운건 8할이 다르빗슈였다”

입력 2009-12-0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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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정근우.

최고의 2루수를 꿈꾸는 ‘작은 거인’
SK 정근우(27·캐리커처)의 우상은 롯데 2군 감독 박정태다. 부산고 1학년 때 정근우는 롯데 2루수였던 박정태를 보기 위해 1년 내내 사직구장을 찾았다. ‘박정태 선배처럼 최고의 2루수가 되자’는 다짐을 수백 번도 넘게 했다고 한다. 올해 정근우는 입단 이후 최고의 성적을 올렸다. 생애 2번째 2루수 부문 골든글러브 수상도 확실시되고 있다. 그의 꿈은 이제 우상 박정태를 뛰어넘어 역사상 최고의 2루수가 되는 것이다.


○고교시절 세 차례 팔꿈치 수술

정근우는 부산고 시절 세 차례나 오른쪽 팔꿈치 수술을 했다. 1학년 때 처음 정근우의 팔을 본 의사는“도대체 팔이 이 지경이 되도록 무엇을 했느냐? 이 팔로는 다시 야구를 못 할 수도 있다”는 청천병력 같은 이야기를 했다. 팔꿈치 연골이 모두 손상됐고 뼛조각까지 돌아다닐 정도로 팔꿈치는 엉망이었다. “다시 야구를 할 수 있게 해주세요. 선생님!” 정근우는 이때 난생 처음 의사에게 매달려 눈물을 흘렸다. 부산 동성중 시절 정근우의 별명은 ‘정완투’였다. 배팅볼을 혼자 다 던진다고 해서 동료들이 지어준 별명이었다. 결국 공을 너무 잘 던졌던 게 팔꿈치 악화를 불러왔고 수술까지 이어졌다. 지금도 정근우가 공을 던질 때 위축된 모습을 보이는 것은 고교시절 세 차례의 팔꿈치 수술과 무관하지 않다. 1학년 때 정근우는 1년 내내 사직구장을 찾아 롯데 경기를 지켜봤다. 고인이 된 당시 조성옥 부산고 감독이 “푹 쉬고 키나 커라. 1학년 때는 훈련을 안 해도 된다”며 특별휴가를 주었던 것. 그의 시선은 항상 2루수 박정태에게 집중됐다. “잘 치고, 수비 잘 하고 근성 있고 모든 게 멋있었죠.” 박정태를 보면서 정근우는 최고 2루수의 꿈을 가슴속에 키웠다고 한다.


○꿈은 2000안타, “내년엔 현수를 이겨보고 싶다!”

올해 정근우는 데뷔 이후 가장 많은 168안타를 쳤다. 최다안타 2위다. 두산 김현수보다 4개가 모자라 타이틀을 놓쳤다. 공교롭게도 2년 연속 김현수에게 1위 자리를 내주고 2위에 머물렀다. “현수를 경쟁상대로 삼을 수 있다는 건 즐거운 현실이죠. 내년에는 꼭 한번 이겨보고 싶습니다.” 안타에 대한 정근우의 꿈은 크다. 내년 가장 큰 목표가 최다안타 1위라고 밝힌 그의 최종 목표는 통산 2000안타다. 국내에서 2000안타를 기록한 선수는 지금까지 삼성 양준혁과 올해 은퇴한 전준호 등 2명뿐이다. 올해까지 571안타를 때린 정근우는 “양준혁, 전준호 선배처럼 몸관리를 잘해 꼭 성구회 회원이 되겠다”는 야심을 갖고 있다.


○다르빗슈의 슬라이더, 타격에 눈을 뜨게 했다!

올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정근우는 일본대표팀의 에이스 다르빗슈에게 두 차례나 삼진을 당했다. 경험해 보지 못한 다르빗슈의 고속 슬라이더에 꼼짝도 못했다. “직구라고 생각하고 휘두르는 순간 휘어져 나가더라고요. ‘이런 공도 있구나!’ 하는 느낌이었어요.” 타석에서 좀더 불필요한 동작을 없애고 공을 최대한 오래 볼 수 있는 타격자세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정근우의 새로운 시도는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고 시즌 내내 안타를 뿜어냈다. SK 김성근 감독은 시즌 중반 “정근우가 타격에서 한 단계 성장을 이루었다”고 칭찬한 적이 있다. 다르빗슈의 슬라이더에서 얻은 깨달음을 정근우는 멋지게 자신의 스윙으로 완성시켰다.


○최고 2루수를 꿈꾼다!

역대 2루수 가운데 최다 골든글러브 수상자는 5차례 수상한 박정태다. 그 뒤로 김성래, 강기웅, 박종호, 안경현이 3회씩이다. 올해 두 번째 골든글러브 수상이 유력한 정근우의 목표는 6회 이상의 골든글러브를 받아 2루수 부문 최다수상자가 되는 것이다. 또 2루수로서 세울 수 있는 모든 기록을 바꿔보겠다는 생각이다. 올해 정근우가 기록한 168안타와 53도루는 역대 2루수 부문 1위다. 타율 0.350과 98득점은 모두 2루수 부문 역대 2위. 타율은 1988년 삼성 김성래가 세운 0.350에 3모가 모자라고 98득점은 홍현우가 세운 99득점에 1점이 모자란다. 자연스럽게 내년 시즌 정근우의 목표는 타율 0.351과 100득점이다. “홈런과 타점은 제 몫이 아니잖아요. 저는 안타, 타율, 도루, 득점으로 승부합니다.” 정근우가 꿈꾸는 또 하나의 목표는 5년 연속 3할 타율이다. 왼손타자 가운데는 양준혁과 장성호가 9년 연속 3할을 쳤지만 오른손 타자는 김동주가 세운 5년 연속 3할이 최고기록이다. 정근우는 올해까지 3년 연속 3할을 기록했다. 지금의 타격감각이면 5년 연속 3할도 크게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자타가 인정하는 최고 2루수를 향한 정근우의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자랑스러운 준우승! 자랑스러운 동료들!

정근우는 올해 한국시리즈를 자랑스럽고 행복한 시리즈였다고 표현했다. 우승을 한 2007년과 2008년보다 더 큰 감동을 느꼈다며 한점의 후회도 없는 시리즈라고 얘기했다. “김광현, 전병두, 송은범, 채병용까지 주축투수들이 다 부상이잖아요. 솔직히 힘들다고 생각했죠.”두산과의 플레이오프에서 2패를 당한 뒤 기적 같은 3연승을 했고 한국시리즈에서도 KIA와 7차전까지 가는 접전을 펼쳤다. “아픈데도 팀을 위해 던지는 투수들을 보니까 눈물이 나더라고요. 팀을 위해 하나가 되는 동료들을 보면서 내가 이 팀의 일원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팀원들끼리의 신뢰와 믿음을 재확인한 올해 한국시리즈가 정근우는 그래서 행복했다고 한다.


○누구에게나 기회는 온다!

부산고 3학년 때 정근우는 프로에 지명을 받지 못했다. 대통령배 우승을 하고 청소년대표로 세계선수권대회에 나가 우승까지 했지만 프로는 그를 외면했다.“키가 작아 프로에 적응하기 어렵다”는 스카우트들의 이야기를 나중에 전해 듣고 난생 처음 172cm의 작은 키를 원망하기도 했다. 대학 진학조차 결정되지 않았던 정근우에게 8월말 고려대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이미 야구부는 스카우트가 끝난 뒤였지만 당시 이종도 감독은 럭비부 인원을 하나 빌려 정근우를 입학시켰다. 고려대에 입학하면서 정근우는 탄탄대로를 달렸다. 1학년 때부터 주전으로 뛰면서 국가대표로 활약했고 결국 2005년 SK에 2차 1번으로 지명되는 기쁨을 누렸다. 그는 지금 베이징올림픽 금메달과 WBC 준우승을 이뤄낸 대한민국 드림팀의 2루수다.“항상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최선을 다해라. 그리고 키가 작다고, 또 고등학교 때 프로에 지명받지 못했다고 절대 기죽지 마라”는 게 정근우가 후배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정근우가 올해 기록한 타율 0.350, 168안타, 53도루, 98득점은 모두 SK 역사상 최고 기록이다. 이 기록을 정근우는 내년 시즌 모두 뛰어넘으려 하고 있다.

‘작은 거인’ 정근우의 야심찬 도전이 주목된다. 그는 프로 역사상 최고의 2루수가 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스포츠동아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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