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국의 사커에세이] 사우디선 축구 옐로카드도 사면대상

입력 2009-12-1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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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표도 혜택…선제골도 특사 덕

옐로카드도 경범죄?

중동의 축구강국 사우디아라비아는 요즘 온통 국기 물결이다. 초록색 바탕에 흰 글씨로 이슬람 신앙고백 글귀와 함께 사우디아라비아 통일을 기념하는 칼이 아래위로 새겨진 사우디 국기는 요즘 관공서는 물론이고 학교 병원 도로 교량 할 것 없이 여기저기서 밤낮으로 나부끼고 있다. 국경일도 아닌 시기에 사우디가 갑자기 국기들의 홍수를 이루게 된 것은 크라운 프린스, 즉 술탄 왕세제(81)의 귀환 때문이다.

현 압둘라 사우디 국왕의 이복동생이자 사우디 제 2인자인 술탄 왕세제는 11일 1년 6개월여에 걸친 미국에서의 와병생활을 마치고 금의환향했다. 고령에다 암세포가 여기저기 전이되어 회생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여겨지던 왕세제가 기적적으로 완치 판명을 받고 그리던 고국 땅을 다시 밟게 되었으니 그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술탄 왕세제는 압둘라 국왕이 서거할 경우 왕위 승계 1순위인데다 평소 빈민 구제활동에 각별한 관심을 쏟는 등 국민적 인기도 높은 편이다.

따라서 그의 무사귀환을 경축해 사우디 정부가 각종 범죄자들을 사면하게된 것도 결코 놀라운 일은 아니다. 우리가 대통령 취임 특사니 광복절 특사니 해서 경범죄자들의 기록을 말소해주고 수십, 수백 명의 수감자들을 사면하고 있듯이. 특이한 것은 수천, 아니 수만 명에 달하는 이번 사면대상에 한국의 축구선수 이영표(알 힐랄)도 끼어 있다는 점이다. 이번 특사로 그가 이번 시즌 사우디 프리미어리그에서 기록했던 2개의 옐로카드가 없어졌다. 옐로카드뿐 아니라 레드카드를 받았거나 출전정지 상태에 있던 선수들도 모두 사면돼 다음 경기에는 뛸 수 있게 됐다.

만기가 6개월, 1년 앞으로 다가온 모범수들을 사면하거나 간혹 일반인을 대상으로 운전면허 정지, 과태료 미납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늘 무전유죄, 유전무죄 식의 형평성이 문제가 되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축구선수의 옐로카드 기록조차 말소하는 나라는 아마도 사우디 밖에 없을 것이다. 혹자는 오버가 심하다거나 사우디 특유의 허장성세라고 손가락질 할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축구가 사우디 국민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그만큼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한다.

이영표도 잠깐 범죄자 취급을 받긴 했지만 그다지 싫은 표정은 아니다. 옐로카드 한 장만 더 받았다면 자칫 중요한 경기를 놓칠 수도 있었던 처지에서 해방됐으니 말이다. 그래서였을까. 15일 알 카디시아와의 리그 12라운드 홈경기에 나선 이영표는 기침 감기를 앓으면서도 거침없는 플레이로 전반 15분 기막힌 크로스로 선제골을 만들어내며 팀 승리의 일등공신이 됐다. -사우디 리야드에서-

지쎈 사장
스포츠전문지에서 10여 년간 축구기자와 축구팀장을 거쳤다. 현재 이영표 설기현 등 굵직한 선수들을 매니지먼트하는 중견 에이전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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