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인수 “내 사랑은 적장”

입력 2010-01-2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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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양궁과 대만양궁이 사돈을 맺었다. 2월7일 결혼하는 대만양궁대표팀 전인수(왼쪽) 총 감독과 쉬웬링(許文玲) 전(前) 총감독의 다정한 모습. 2009년 대만양궁협회의 러브콜을 받은 전 감독은 2012런던올림픽까지 대만대표팀을 지도할 예정이다. 사진제공|전인수 감독

쉬웬링 전 대만양궁 감독과
내달 7일 서울서 백년가약

베이징올림픽땐 한국 코치
대만대표팀과 뜨거운 승부


큐피트의 화살이 국경을 넘어 꽂혔다. 결국 올림픽에서의 적장(敵將)은 평생 배필이 됐다.

대만양궁대표팀 전인수(45) 총감독이 쉬웬링(許文玲·40) 전(前) 대만양궁대표팀 총 감독과 2월7일 12시 서울 태평로 코리아나호텔에서 백년가약을 맺는다.

전 감독은 1988서울올림픽 남자단체전 금메달리스트로, 1985년과 1991년 세계양궁선수권 남자단체전 우승의 주역이다. 2008년에는 남자대표팀 코치로 베이징올림픽에 출전해 단체전 금메달을 조련하기도 했다.

쉬웬링은 1996년부터 2008년까지 대만양궁대표팀 코치와 총감독을 역임한 대만의 대표적인 지도자. 2006울산양궁월드컵에서는 남자 개인 금·은메달을 휩쓸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쉬웬링은 2008베이징올림픽에서도 대표팀 감독을 맡아, 전 감독과 뜨거운 승부를 벌였다. 당시 박경모(34)가 개인전32강에서 쿠쳉웨이(대만)를 111-110으로 꺾으며, 전 감독에게 판정승을 안겼다.

첫 만남은 1998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미얀마에서 열린 대회. 당시 전 감독은 태국대표팀을 맡고 있었다. 초보 지도자로 모든 것이 서툴던 쉬웬링. 중국어에 능통했던 감독은 팀 미팅 때부터 경기 운영 방법을 등을 상세히 가르쳐줬다. 친절한 남자는 어디서나 좋은 인상을 남기는 법.

감정의 씨앗은 남았지만, 국제대회에서의 짧은 만남으로는 싹을 틔우지 못했다. 둘 사이가 급속도로 가까워 진 것은 2009년 6월, 전 감독이 대만대표팀을 맡으면서부터. 모든 것이 낯선 전 감독을 배려해 대만양궁협회는 쉬웬링을 자문역으로 배치했다.

자신의 후임이던 전 감독을 경계할 법도 했지만 쉬웬링은 11년 전, 전 감독이 그랬듯 소상히 대만양궁의 모든 것을 알려주었다. 알고 보니, “대만이 세계정상에 가기 위해서 외국(한국)지도자를 영입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올린 장본인이 쉬웬링이었다.

외로운 타지생활. 쉬웬링의 배려에, 종이에 물이 스며들 듯 전 감독의 마음이 기울기 시작했다. 소고기국수 한 그릇을 먹는 것도 함께라면 좋았다.

하지만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 사랑을 고백한다는 것 자체가 쑥스러웠다. 양궁이나 사랑이나 슈팅 타이밍이 최우선. “맵다”면서도 한식에 손을 대는 모습이 예뻐 보일 때쯤, 희미했던 사랑의 표적이 선명해졌다. 이제 활시위를 당길 차례. “우리 나이도 있는데, 같이 살래?” 남자들을 주로 지도해 여장부스타일인 쉬웬링도, 이때만큼은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둘의 결혼 소식이 전해지자 대만양궁관계자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도 반기는 분위기. 둘은 한국에서 열리는 결혼식에 앞서 1월30일, 쉬웬링의 본가가 있는 대만 신죽시에서도 화촉을 밝힐 예정이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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