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성, 홍란. 스포츠동아DB
신혼여행지로 유명한 휴양지에서의 골프라고 부러워하실 분도 많겠지만 사실 골프선수들의 전지훈련은 그렇게 부러워 할만한 일은 아닙니다.
여기서 흘리는 땀이 올 시즌 저의 상금을 결정하는데다 제가 비용을 내서 떠나는 훈련이기 때문에 단 한순간도 쉬거나 여유를 부릴 수 없답니다.
이번에 스포츠동아 지면을 통해 독자 여러분을 만날 수 있게 돼 기쁩니다. 초등학교 이후로 일기를 쓰는 건 오랜만이라 어색한 느낌이 들지만 전지훈련 기간 동안 프로 골퍼들이 어떻게 훈련하고 생활하는지 생생하게 전해드리겠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27일>
27일 드디어 하와이에 도착했다. 신혼여행지로 유명한 곳이어서 그런지 여기서 훈련을 한다고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이 밀려왔다.
서둘러 짐을 찾고 공항을 배경으로 기념사진도 한 장 ‘찰칵~’.
역시 남는 건 사진뿐이죠. ‘고고 씽~’ 드디어 하와이에서의 생활이 시작됐다.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해변으로 달려가 푸른 바다에 풍덩 빠지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차창 밖의 하와이 풍경은 참 아름다웠다. 뭐랄까. 천국 같은 느낌. 그래서 인지 훈련을 왔다는 생각이 덜 했다.
골프장에 도착하니 친구인 서희경 프로가 반갑게 맞아줬다. 그런데 문득 “휴가 나온 군인이 부대로 복귀하는 느낌이 이런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는 건 왜 그럴까.
새까맣게 그을린 희경이의 모습에서 그동안 고생한 모습이 역력했다. 희경이는 지난 해 연말부터 이 곳에서 전지훈련을 시작했다. 작년에 상금여왕까지 했는데도 여유를 부리지 않고 일찍부터 훈련을 시작했다.
간혹 “희경이와 관계가 나빠지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받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린 여전히 사이좋은 친구다.
여독을 풀 여유도 없이 나도 곧바로 연습장으로 향했다. 열심히 땀 흘리는 동료들을 보니 한가로이 시간을 보낼 틈이 없었다.
“이제부터 죽었구나. 아~옛날이여!”
그동안 서울에서 친구들과 영화도 보고, 수다도 떨었던 시간들이 오래된 영화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제부터는 다시 프로골퍼의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 덧 하와이에도 밤이 찾아왔다. 그렇게 첫날밤이 시작됐다. 신혼여행을 왔더라면 기분이라도 내겠지만 내일부터 본격적인 훈련에 돌입해야 하니 일찍 잠을 청했다.
<29일>
하와이에서의 셋째 날이 시작됐다. 드디어 첫 라운드를 시작하는 날이다. 참, 어제는 이 곳에서 김형성 프로를 만났는데 얼마나 반가웠는지, 외국이라 그런지 가족을 만난 느낌이 들었다.
연습 라운드지만 꼴찌에게는 설거지 당번이라는 무거운 벌칙이 주어진다. 서른 명이나 되는 설거지는 안 해본 사람은 그 고통을 모른다. 그래서 인지 동료들의 표정에서 굳은 의지가 엿보였다.
나는 희경이, 권승열, 최승호, 박영옥 프로 이렇게 5명이 함께 플레이에 나섰다. “그냥 라운드를 하면 재미가 없으니 1달러 내기라도 해야지.”
“OK! 그 정도는 해야죠.”
만만치 않은 상대지만 “설마 내가 돈을 잃을까”라는 생각에 나도 기꺼이 동참을 선언했다. 잠시 후,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공이 제 멋대로 날아가면서 지갑이 얇아졌다.
급기야 대형 사고가 터졌다. 권승열 프로가 이글, 나머지 3명은 버디를 기록했고 나만 혼자 보기를 했다. “골퍼라면 이럴 때 어떤 기분인지 말 안 해도 잘 아시죠?” 정말 죽고 싶은 심정뿐이었다.
이날의 성적은 “내가 프로골퍼가 맞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최악이었다. 14번홀까지 무려 9오버파를 적어냈다. 당연히 꼴찌다.
시즌 때는 상상도 못할 성적이다. 돈은 돈대로 잃고, 설거지까지….
그야말로 혹독한 하와이 신고식을 치렀다.
혹독한 신고식 때문에 우울했는데, 내일 모두 와이키키 해변을 가자는 말에 힘이 솟았다. 서핑 보드는 아니어도 와이키키 해변에서 달콤한 하루를 보낼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설¤다. “기다려라 와이키키여~”
2010. 1. 31 하와이에서 홍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