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선 무대에 나선다는 자체가 기분 좋은 일이지만 성과를 내야하는 부담감과 극도의 긴장감이 뒤따르니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다.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히딩크 사단의 일원이었던 정 코치의 월드컵 이야기를 들어봤다.
●태극마크와 인연이 없었던 선수시절
정해성 코치는 대학 시절 유망주였다.
당시 고려대 지휘봉은 김정남 감독이 잡았다. 그는 정 코치에게 대표팀 발탁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그는 86년 멕시코 월드컵 팀의 감독이 됐다.
하지만 정해성은 태극마크와 인연이 없었다. 큰 사건에 휘말렸다. 연세대 선수들과 친목을 다지는 자리에서 시비가 붙었다. 건달들과 싸움이 벌어졌고, 심한 부상을 입었다. 거의 1년간 축구를 접어야 했고, 결국 대표 발탁도 물 건너갔다. 부상만 아니었다면 대표 발탁 뿐 아니라 월드컵 출전도 도전할 수 있었지만 단 한 번의 실수로 모든 걸 잃었다.
“그 사건 때문에 이미지도 안 좋아져서 그것을 불식시키는 데만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일이 아니었다면 대표선수도 되고, 월드컵에도 도전해 볼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결국 나에게 월드컵 출전의 기회는 없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루어냈던 축구대표팀 코칭스태프. 핌 베어벡, 얀 룰푸스, 정해성, 거스 히딩크, 박항서(사진 왼쪽부터). 스포츠동아DB
●히딩크 사단 국내 코치 1호는 정해성
코치로 정해성은 태극마크를 달았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과 아시안컵에서 허정무 감독을 보좌했다. 아시안 컵을 마친 뒤 허 감독이 물러나고 네덜란드의 거스 히딩크 감독이 2002년 한일월드컵을 위해 영입됐다.
이 때 정 코치는 대표팀을 떠날 계획이었다.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는 정 코치에게 잔류를 부탁했다. 감독이 떠나면 코치도 함께 자리를 내놓아야 한다는 것을 철칙으로 여겼던 그는 고민에 휩싸였다.
정 코치는 허 감독과 따로 만나 상의했다. 허 감독은 “너는 남아서 더 배워야지”라며 후배의 마음을 가볍게 해줬다.
정 코치는 결국 국내코치로는 1호로 히딩크 사단에 합류했다.
이후 박항서 수석코치가 영입됐고, 김현태 GK 코치 등이 추가로 영입돼 히딩크 사단의 참모진이 구성을 마쳤다.
●히딩크와 한판 하다
히딩크 사단의 출발은 그리 좋진 않았다.
프랑스와 체코에 0-5로 지는 등 준비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유럽 전지훈련 과정에서 정 코치는 히딩크와 제대로 한판 붙었다고 했다.
“프랑스에 0-5로 진 뒤에 유럽 전훈을 통해 네덜란드에서 2경기를 이겼다. 그런 뒤 선수들의 마음이 풀어진 것 같았다. 그래서 한번 분위기를 다 잡기 위해 나섰는데 그게 히딩크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네덜란드에서 선수들이 단체 관광에 나섰다. 복장은 네덜란드 입국 때 입었던 단복. 하지만 3명의 선수가 생각 없이 트레이닝복을 입고 나섰다. 이에 정 코치는 선수들을 나무랐고, 당시 주장 강철이 말리고 나섰다. 그러자 히딩크 감독은 강철을 불러 “잘 했다”고 해 정 코치를 곤란하게 했다.
이후 히딩크 감독은 코칭스태프 미팅에서 노골적으로 정 코치를 배제시키기는 등 문제를 확대시켰다. 결국 정 코치는 사임까지 고려했다.
그러나 기술위원회의 만류로 정 코치는 대표팀에 남았고, 오해를 풀고 다시 하나가 됐다.
지난해 12월 축구대표팀 훈련 도중 눈이 내리는 가운데 이야기를 나누는 정해성 수석코치(왼쪽)와 허정무 감독. 스포츠동아DB
●허 감독과의 특별한 인연으로 월드컵 재도전
우여곡절 끝에 히딩크 사단은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4강 진출이라는 신화를 만들어냈다. 정 코치도 히딩크 사단의 일원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K리그 제주 유나이티드에서 사령탑을 지내는 등 코치에서 감독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제주에서 물러난 뒤 잉글랜드 축구를 공부하기 영국으로 떠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허 감독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안부전화였다. 며칠 뒤 허 감독은 “해성아 들어와라”라는 말 한마디로 그를 대표팀 수석코치로 낙점했다. 허 감독의 말 한마디에 정 코치가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끈끈한 인연을 이어왔기 때문이다.
허 감독과 정 코치의 인연은 선수시절부터다.
정 코치는 당시 최고의 선수 허정무의 전담 마크맨이었다. 워낙 기량 차가 커서 허 감독을 발로 밟기도 했다. 그런 뒤 둘은 92년 덴마크에서 열린 유럽선수권 관전을 위해 다시 만났다. 둘은 대회 기간 동안 한 차로 동고동락하고 다니며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됐다. 이후 대표팀과 프로팀에서 호흡을 이루었던 두 사람은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 한국의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이라는 목표를 향해 함께 뛰고 있다.
최용석 기자 gtyong@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