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라이프] 이회택 부회장 “수영장 회복훈련 후 ‘지고도 놀았다’ 뭇매”

입력 2010-02-08 17:0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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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의 행정가로 새 삶을 살고 있는 이회택 부회장이지만 지금도 그라운드가 그리울 때가 많다고 한다. [스포츠동아 DB]

한국 축구의 행정가로 새 삶을 살고 있는 이회택 부회장이지만 지금도 그라운드가 그리울 때가 많다고 한다. [스포츠동아 DB]

⑥ 이회택 대한축구협 부회장 “그땐 그랬었지”
한국축구의 스트라이커 계보를 얘기할 때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이름 이회택(64). 70년대 한국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각광 받았던 그가 말하는 월드컵에는 많은 아쉬움이 담겨 있다. 선수시절 최고였지만 그는 한번도 꿈의 무대를 밟지 못했다. 하지만 감독으로 90년 이탈리아월드컵에 참가했고,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는 단장을 맡았다. 2번의 월드컵에서 그는 뜻한 바를 이루지 못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을 앞둔 현재 그는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겸 기술위원장을 맡고 있다.

●큰 무대와 인연이 없었던 선수시절


이 부회장은 선수시절 얘기를 꺼내자 “그 때만해도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이라고 말하며 가볍게 웃었다. 지금처럼 상대를 분석하기 위해 각종 자료를 수집하거나 대회를 앞두고 해외전지훈련을 다니는 것은 상상도 하기 힘든 시절이었단다. 당시 이 부회장은 대표팀 부동의 스트라이커였다.

하지만 68년 멕시코올림픽, 70년 멕시코월드컵, 72년 뮌헨올림픽 등에서 모두 예선 탈락해 큰 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기회를 모두 놓쳤다.

이 부회장은 “한국이 아시아에서 최고로 볼을 잘 차던 시기였는데 이상하게도 월드컵과 올림픽 예선만 하면 지지 않을 상대한테 지거나 비기면서 탈락했다. 고비를 넘기지 못했다. 프로가 없었기 때문에 장기 레이스에 선수들이 적응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당시 선수들은 쉬는 시기가 많았다. 지금의 프로처럼 1년 내내 리그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대회를 참가하면 적게는 한 달에서 많게는 6개월도 쉬는 때가 있었다고 한다.
한국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각광받았던 이회택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에게 남은 유일한 아쉬움 월드컵 16강 진출이다. 사령탑으로 출전한 90이탈리아월드컵 당시 이 감독(맨 왼쪽부터)이 허정무 트레이너, 이차만 코치와 뭔가를 상의하고 있다. [동아일보 DB]

한국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각광받았던 이회택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에게 남은 유일한 아쉬움 월드컵 16강 진출이다. 사령탑으로 출전한 90이탈리아월드컵 당시 이 감독(맨 왼쪽부터)이 허정무 트레이너, 이차만 코치와 뭔가를 상의하고 있다. [동아일보 DB]



●무패 본선 진출의 신화를 만들다

78년 선수를 은퇴한 뒤 지도자로 변신했다. 모교 한양대를 거쳐 포항에서 감독생활을 하며 86년 K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스타출신 지도자로도 성공가도를 달렸다. 결국 그에게 대표팀 지휘봉이 맡겨졌다.



이 부회장은 “90년 이탈리아월드컵 예선을 무패로 통과했다. 전부 우리에게 혼이 났다. 당시는 한 곳에 모여서 최종예선을 치렀는데 마지막 경기를 치르기도 전에 본선에 진출했을 정도로 아시아무대에서는 우리가 최강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본선 무대는 장난이 아니었다. 당시 한국은 벨기에, 스페인, 우루과이와 한 조에 속해서 내리 3패를 당했고, 단 1골만을 황보관이 넣었다. 당시 이 감독은 거센 비난에 시달렸고,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다.

이 부회장은 “본선에서 만난 팀들은 개개인 뿐 아니라 전술적으로도 우리보다 한수 위였다. 당시는 포메이션의 개념이 많이 없을 때였는데 이미 유럽 팀들은 4-4-2, 4-3-3 등 다양한 포메이션을 구사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 부회장은 현지 적응에 대한 아쉬움도 털어놓았다.

“경기를 8일정도 앞두고 이탈리아에 입성했다. 지금은 2~3주 전에 현지랑 비슷한 곳으로 전훈을 간 뒤 본선이 열리는 곳에 들어간다. 3번째 경기가 되니까 선수들의 컨디션이 살아났다. 그래서 늦게 이탈리아에 입성한 게 더 아쉬움이 남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에피소드 하나. 이 감독은 선수들의 회복 훈련을 위해 수영장을 찾았고, 한 방송에서 촬영하는 것을 허용했다. 지금 같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 하지만 국내에서 회복훈련에 대한 개념이 제대로 자리 잡지 않았던 시기였다. 때문에 이 부회장은 3패를 하고도 선수들과 수영장에서 놀았다는 거센 비난에 시달렸다. 이 부회장은 “그 때는 그런 시절이었고,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며 웃었다.
2006독일월드컵에서 이회택 부회장은 대표팀 단장을 맡았다. 딕 아드보카트 감독과 핌 베어벡코치가 원정 대회 참가를 앞두고 인천국제공항에서 나란히 포즈를 취하고 있다. [동아일보 DB]

2006독일월드컵에서 이회택 부회장은 대표팀 단장을 맡았다. 딕 아드보카트 감독과 핌 베어벡코치가 원정 대회 참가를 앞두고 인천국제공항에서 나란히 포즈를 취하고 있다. [동아일보 DB]



●행정가로 또 다시 월드컵 도전

2006독일월드컵 단장을 맡았던 이 부회장. 토고에 1승을 거두고, 프랑스와 비기면서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 가능성이 무르익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선수단 분위기는 좋았다고 했다.

그러나 스위스에 0-2로 패하면 또 다시 3경기만을 마친 뒤 짐을 싸야 했다. 이 부회장은 “아쉬움이 큰 대회였다. 우리 선수들이 토고전에서 승리하면서 자신감을 얻었고, 이후 좋은 경기를 했는데 스위스한테는 모든 면에서 이기지 못했던 것 같다”고 4년 전 기억을 떠올렸다. “밖에서 보면서 ‘우리한테는 아직도 16강 진출이 쉽지 않구나’라는 생각이 드니 더 씁쓸했다”고 덧붙였다.

이제 남아공월드컵이다. 이번에도 대표팀을 지원하는 역할이다. 90년 월드컵 트레이너였던 허정무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있어 그에게 2010년 월드컵은 더 각별하다. 이 부회장은 포항 감독직을 허 감독에게 넘겨준 적이 있는 등 둘은 인연이 깊다.

이 부회장은 “90년 월드컵에서 선수들과 코치스태프의 가교 역할을 맡을 사람으로 허정무를 데려갔었는데 이제는 그가 대표팀을 이끌고 월드컵을 준비하고 있다. 지금까지 잘 해줘 보기 좋다. 개인적으로는 해외파들이 잘해주고 있어 월드컵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있지만 내색하지 않는다. 감독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 내 역할은 지원이다. 대표팀이 월드컵에서 최상의 경기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가능한 범위 내에서 도와주겠다”고 강조했다.

최용석 기자 gtyong@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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