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은기자의 여기는 밴쿠버!] 집안싸움 쇼트트랙 그후… 이호석의 눈물

입력 2010-02-1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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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석아 괜찮아. 너도 내 아들이야” 한국 남자 쇼트트랙의 성시백은 14일(한국시간) 고대하던 생애 첫 올림픽 메달을 일보직전에서 이호석과의 추돌로 날렸다. 그러나 성시백의 어머니 홍경희 씨(오른쪽)는 15일 사과하는 이호석을 오히려 격려해줬다. 밴쿠버(캐나다) | 박영대 동아일보 기자 sannae@donga.com

14년 동고동락 라이벌 1500m 결승 추돌사고 사죄…성시백 어머니 “괜찮아, 다 잊으렴”
이호석(24·고양시청)은 15일(한국시간) 쇼트트랙 대표팀 훈련이 끝나자마자 퍼시픽 콜리세움 관중석으로 달려 올라갔다. 성시백(23·용인시청)의 어머니 홍경희 씨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홍 씨는 고개를 숙이는 이호석의 어깨를 감싸 안으면서 말했다. “너도 마음 편히 못 잤을 거다. 이런저런 안 좋은 얘기는 다 무시하렴.”

아들 시백도 그랬다. 전날 밤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난 괜찮다. 다음에 잘 하면 된다”고 했다.

홍 씨는 “모두 내 아들 같다. 14년 넘게 동고동락하면서 같이 스케이트를 탔는데, 둘 다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라며 편하게 웃었다.

사연은 알려진 대로다. 14일 캐나다 밴쿠버 퍼시픽 콜리세움에서 열린 쇼트트랙 남자 1500m 결승전. 이정수와 성시백 사이로 파고들던 이호석이 중심을 못 잡고 비틀거렸다. 잠시 아웃코스로 빠졌다가 인코스로 복귀하던 성시백에게는 미처 몸을 피할 시간이 없었다. 결국 휩쓸려 함께 튕겨져 나갔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라이벌이었던 둘에게는 종종 벌어졌던 ‘사고’. 문제는 장소가 바로 올림픽 결승선 바로 앞이었다는 것이다. ‘복병’ 이정수는 한국 선수단에 첫 금메달을 안겼지만, 이호석은 순식간에 은메달과 동메달을 한꺼번에 앗아간 ‘역적’으로 몰렸다.

다음날. 인터넷은 이호석을 비난하는 댓글로 도배가 됐다. 어머니 한명심(50) 씨는 잃어버린 메달보다 아들의 상처가 더 걱정됐다.

“아이가 노트북 컴퓨터를 챙겨갔어요. 혹시라도 안 좋은 글을 보고 힘들어하면 어쩌죠.” 아니나 다를까. 대표팀 관계자는 “이호석이 전날 인터넷을 확인하고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

‘아웃코스의 달인’ 이호석이 굳이 안으로 파고들어야 했던 이유가 있었기에 더 그랬다.

이호석은 어머니에게 “레이스 도중 다른 선수와 세 번이나 스케이트 날을 부딪쳤다. 날 앞부분이 굽어져서 아웃코스로 돌아갈 만한 스피드를 낼 수가 없었다”고 털어놨다.

대표팀 관계자의 증언 역시 마찬가지다. 한 씨는 “인터넷에 호석이 여자친구를 사칭하는 사람까지 나타났다. 시백이 가족에게도 미안한 마음 뿐”이라면서 “아들이 이 일로 남은 경기에서 위축될까봐 걱정이 된다”고 토로했다.

현장에서도 “과거 김동성·안현수 같은 ‘원톱’이 없는 ‘군웅할거’ 체제에서는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일이었다”는 해석이 많다. 이호석·성시백·이정수처럼 기량이 비슷한 선수들이 모여 있으면, 결승에서도 에이스를 중심으로 한 단체 전술을 쓰기 힘들어서다. 자연스럽게 선수들의 경쟁 심리도 높아진다.

쇼트트랙 명 지도자 출신인 전명규 대한빙상경기연맹 부회장은 “세 명이 한꺼번에 (결승에) 올라가면 작전을 짜는 게 더 어렵다. 선수들이 거친 레이스를 함께 잘 버티고 셋이 나란히 섰는데, 마지막에 불운한 일이 벌어져 안타깝다”고 했다.
배영은 기자 yeb@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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