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저 선수의 올림픽 메달을 예상하고 있었나요?”
한 외신 기자가 다가오더니 조심스레 묻습니다. 어리둥절한 눈치입니다. 모두가 메달 후보로 거론했던 이름들 대신, 다른 선수들보다 키가 한 뼘은 더 작은 동양 선수가 은메달을 목에 걸었으니까요. 타고난 신체 조건부터 눈에 띄게 밀렸으니 놀랄 만도 합니다.
질문이 쏟아집니다. 관심은 가는데 정보가 너무 적어서 답답했을 겁니다. 지나치는 한국 취재진을 붙들고 사소한 것 하나라도 더 알아내려 합니다.
14일(한국시간) 캐나다 밴쿠버 리치몬드 올림픽 오벌. 이승훈(22·한체대)이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0m에서 아시아 선수로는 최초로 장거리 메달을 따낸 이후 벌어진 풍경입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한국 기자들을 통해, 이승훈이 불과 9개월 전 쇼트트랙에서 전향했다는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또 한번 술렁입니다. 그리고 이번엔 종목을 바꾼 이유를 궁금해 합니다.
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한 게 계기라고 했더니, 한 기자가 “저런 선수가 왜 떨어졌냐”고 되물을 정도입니다. 첫 번째 올림픽이라는 말에도 다들 “오∼오” 하며 눈을 크게 뜹니다.
그만큼 이승훈이 일으킨 파장은 예상 외로 컸습니다. 특히 아시아 스포츠 강국인 일본과 중국이 가장 놀랐습니다.
중국 신문 캐나다 특파원으로 일하고 있는 한 대만 출신 기자는 “중국은 스피드 장거리는 넘보지 못하는데, 한국에 저런 선수가 있다는 게 정말 부럽다. 대단하다”며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한 쪽에서는 이승훈 이전에 아시아 최고 성적을 냈던 일본의 히라코 히로키(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대회 4위)가 일본 기자들에 둘러싸여 질문 공세를 받고 있었고요.
“이승훈 때문에 일본 스케이트연맹이 난리 났다”던 한 관계자의 귀띔이 문득 떠오릅니다. 이승훈에게 스피드 전향을 권유했던 대한빙상경기연맹 관계자는 만나자마자 함박웃음부터 짓습니다.
애써 표정관리를 하던 김관규 감독도 “중계 화면에 환호하는 모습이 다 나왔다”고 지적(?)하자 쑥스럽게 웃음을 터뜨립니다. 이승훈의 여자친구마저 그에게 “이런 사람인지 몰랐다”는 농담을 던졌다고 합니다. 차마 기대하지 못했던 올림픽 메달을 따냈고, 대한민국 빙상이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으니까요.
외신기자들의 마지막 질문은 이랬습니다. “그럼 이승훈이 1만m에서도 좋은 결과를 얻을까요?” 한국 취재진은 자신있게 대답했습니다. “이제는 ‘그렇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배영은 기자 yeb@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 다시보기 = 이승훈, 스피드스케이팅 5000m 은메달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