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나깨나 말조심, 한 방에 훅 간 서양의 개발사들

입력 2010-04-07 09:4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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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의 이미지에 먹칠을 한 개발자와 개발사들
지난 해 엄청난 인기를 얻었던 유행어 중에 ‘너 그러다 한 방에 훅 간다’라는 유행어가 있다. 처신을 제대로 못 하면 한 순간에 인기를 잃을 수 있다는 의미를 지닌 이 말은 아직까지도 대중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마치 관용구처럼 쓰이고 있다.

이런 유행어가 인기를 얻는 것은 대사가 지닌 코믹함도 코믹함이지만 그 안에 내포하고 있는 내용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행동이나 말에 있어 사소한 실수로 이미지가 크게 망가지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이런 경우는 게임 업계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 대변할 수 있는 게임 업계지만, 게임을 개발하고 출시하는 등의 업계의 흐름은 사람이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큰 법, 당신은 기대감을 너무 부풀렸다

파퓰러스, 블랙 앤 화이트 등의 개발자로 영국의 명예훈장인 ‘대영제국훈장’(OBE, Order of the British Empire)을 수상하기도 한 게임 개발자. 바로 영국의 게임 개발사 라이온헤드의 수장인 피터 몰리뉴의 이야기다.

자신의 처녀작인 파퓰러스를 통해 ‘갓 게임’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 낸 것은 물론 실시간 전략 게임의 원류를 만들어 내기도 한 이 사나이의 이력은 ‘이 사람이 욕 먹을 구석이 있는가?’라는 의문을 던져줄 정도다.

하지만 이런 피터 몰리뉴도 자신의 이력에 한 가지 오점을 남겼으니 바로 Xbox로 출시된 롤플레잉 게임 ‘페이블’이 그 주인공이다. ‘페이블’은 개발 컨셉만으로도 게이머들 사이에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게임이었다.

하나의 방대한 환타지 세계와 게이머의 행동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NPC들의 반응, 여기에 사랑과 우정, 존경, 공포와 같은 인간들이 갖고 있는 감정의 구현과 다양한 스킬과 직업 등, 피터 몰리뉴는 하나의 완벽한 세계를 게임 안에 담았다며, 페이블을 두고 “인생을 시뮬레이트 한 게임”이라는 자신감까지 내비췄다.

하지만 정작 페이블의 출시와 함께 이런 기대감은 무너졌다. 피터 몰리뉴가 공언했던 방대한 세계는 각 구역으로 나뉘어진 아주 세계로 구현됐으며, 잦은 로딩과 느린 이동 속도, 부족한 동작, 답답한 NPC의 인공지능과 직선적인 스토리 등 애초에 공개한 개발 컨셉 중 구현된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당시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게임성이 크게 떨어지는 게임은 아니라는 것이 페이블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다. 하지만 피터 몰리뉴라는 이름을 내걸고 호언장담했던 콘텐츠가 전혀 담기지 않은 게임을 옹호해 줄 게이머들은 거의 없었다.

결국 페이블 1에서 내세웠던 공약은 수 년의 시간이 흐른 뒤 페이블 2에서 어느 정도 구현되기는 했지만, 그때는 이미 피터 몰리뉴는 게이머들 사이에서 '설래발의 대가‘라는 씁쓸한 이미지를 얻고 난 후였다.


* 거품만 남겨놓고 떠나가느냐

울티마라는 전설적인 RPG를 제작한 데 이어, 이를 온라인으로 확장해 울티마 온라인이라는 전설적인 MMORPG를 만들어 낸 리처드 게리엇. 최고의 RPG 제작자라는 평가와 함께 게이머들에게 ‘로드 브리티쉬’로 불렸던 그였지만, 이젠 ‘로드 브리티쉬’보다는 ‘우주먹튀’라는 이름이 더욱 어울리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리처드 게리엇에 대한 평가가 극단적으로 변하기 시작한 계기가 된 게임은 바로 ‘타뷸라 라사’. 2001년 엔씨소프트와 손 잡은 리처드 게리엇은 동양과 서양의 게이머들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게임을 선보이겠다며 의욕적으로 포부를 밝혔으며, 게이머들은 대가의 이력에 또 하나의 대작이 추가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이후 등장한 타뷸라 라사는 새로울 것이 없는 게임이었다. 지속적인 수정과 보완을 통해 게임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그 발전 속도는 매우 더뎠다. 더 큰 문제는 게임이 수정되어 갈수록 게임의 정체성이 애매하게 변했다는 것. 결국 리처드 게리엇은 동양과 서양의 게이머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겠다는 발언과는 달리 “동양과 서양 게이머들의 취향은 매우 다르기 때문에 이들을 모두 만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라는 발언을 하기에 이른다.

결국 6년이라는 세월이 걸려 시장에 등장한 타뷸라 라사. 하지만 게임은 이미 새로울 것이 전혀 없는 구태의연한 게임이었으며 서비스 개시 15개월만에 그 수명을 다하게 됐다. 결국, ‘동서양의 게이머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겠다’는 의도로 제작된 타뷸라 라사는 결국 ‘동서양 게이머들 모두가 외면하는 게임’으로 끝난 것이다.

이런 실망스러운 성적을 낸 리처드 게리엇. 하지만 이 개발자는 엔씨소프트에서 퇴사한 후에도 스톡옵션을 행사해 120억 원에 달하는 시세차익을 챙기는가 하면, 자신의 퇴사의 성격을 놓고 소송을 거는 등 뻔뻔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 개발사와 게이머를 동시에 괴롭히는 액티비전

모던워페어 2의 엄청난 성공에도 불구하고 약 2억 8천만 달러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적자를 기록한 북미의 퍼블리셔 액티비전. 액티비전 역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게이머들 사이에서 비난을 받으며 이미지가 폭락한 경우다.

모던워페어 2의 개발사인 인피니티 워드를 소유하고 있는 액티비전은 모던워페어 2의 대박을 틈타 스톡옵션으로 거액을 챙겼다. 하지만 회사의 적자를 핑계로 인피니티 워드에게 인세를 전혀 지급하지 않았으며, 모던워페어 2의 성공은 뛰어난 게임성보다도 자사의 마케팅이 거둔 성공이라는 자평을 내리며 게이머들에게 분노를 샀다.

이에 게이머들은 “그렇게 뛰어난 마케팅 실력을 갖고 있으면서, 모던 워페어 2를 제외한 기타 게임들은 왜 모조리 참패를 당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액티비전을 성토하고 있다.

또한 액티비전은 최근 인피니티 워드의 사장과 부사장을 강제로 해고했다. 이는 인피니티 워드와의 계약이 종료되는 2010년 이후에도 콜 오브 듀티와 모던워페어 시리즈의 판권을 소유하기 위한 술수로 평가받고 있다.

최근 Xbox360용으로 출시한 모던워페어2의 추가 맵팩에 대한 게이머들의 반응도 냉담하다. 이번 추가 맵팩에 포함된 신규 맵은 총 5개 중 3개만이 신규 맵이며, 2개는 전작이라 할 수 있는 콜 오브 듀티 4에서 사용된 맵을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격은 1200 MS 포인트로 부실한 추가 콘텐츠에 비해 가격이 매우 비싸다는 것이 게이머들의 공통적인 반응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액티비전의 최근 행보는 정상적인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익집단인 기업이 자사의 수익에 집중하는 것은 당연한 행동이지만, 정도가 지나친 이런 행동들은 결국 회사의 수익에 악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한준 게임동아 기자 (endoflife81@gamedong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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