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호기자의 야생일기] 맞을수록 ‘프로 꿈’ 성큼 배팅볼 투수들이 사는법

입력 2010-05-0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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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타자가 시원하게 방망이를 휘두르자 강한 파열음과 함께 외야 깊숙한 곳까지 공이 날아간다. 최소 2루타 이상은 될 듯한 잘 맞은 타구. 그 순간 마운드에 서 있는 투수는 활짝 웃는다. 타자가 공을 잘 치면 잘 칠수록, 그리고 그 타구가 멀리 멀리 나갈수록 더 기쁘고 보람을 느끼는 투수. 경기직전 타자들의 타격훈련을 돕는 배팅볼 투수다.

SK와 KIA의 경기를 앞둔 29일 오후 광주구장. KIA의 배팅볼 투수 임동준은 온 힘을 다해 공을 던지고 있었다. 곧 5월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쌀쌀한 날씨에 강한 바람까지 불었지만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렇게 30여분 혼신을 다한 투구는 계속됐다. 그리고 마지막 타자가 배팅케이지를 벗어났지만 아직 쉬지 못했다. 각종 장비를 챙기고 뒷마무리까지. 한참이 지나서야 가까스로 숨을 돌리던 그가 갑자기 물었다.

“공 괜찮았어요?” “그럼요. 그런데 오늘 평소보다 훨씬 더 빨라보이던걸. 너무 무리한 것 아니에요?”

“오늘 SK 선발이 김광현이잖아요. 그래서 훨씬 더 세게 던지려고 했는데…. 아직 멀었어요.”

임동준은 좌완투수다. 상대팀 선발이 왼손 투수일 때마다 이렇게 마운드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팀을 위해 열정을 불태운다. 비록 정식경기는 아닐지라도 조금이라도 빠른 공을 던져 팀이 이기는데 힘을 보태려한다.

프로야구 각 팀에는 똑같은 유니폼을 입고 있지만 경기에는 나서지 않는 5명 내외의 선수들이 있다. 그들은 1군도, 2군도, 신인도, 신고 선수도 아닌 훈련보조요원이다. 모두 초등학교부터 고교 혹은 대학까지 정식으로 야구를 한 진짜 선수다. 다만 아직 정식으로 프로선수가 되지 못했을 뿐이다.

야구장에 가서 조금만 주의깊게 살피면 그들을 만날 수 있다. 경기 전 온힘을 다해 배팅볼을 던지고 경기 내내 불펜에서 무거운 마스크와 프로텍터를 뒤집어쓰고 투수의 공을 받는다. 미국과 일본에는 안정된 생활이 보장된 전문 배팅볼 투수와 불펜캐처가 있다지만 아직 우리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다. 오직 실낱같은 희망에 젊음을 걸고 최선을 다할 뿐이다.

지난 시즌 KIA 불펜포수 변선웅은 조범현 감독에게 “타격 훈련도 틈틈이 해 놓으라”는 언질을 받았다. 그리고 조용히 배트를 휘두르며 새해를 기다렸다. 2010년 변선웅은 정식 선수가 됐다. 아직 그의 무대는 2군이지만 그동안 남몰래 흘린 땀을 믿으며 또 한번 꿈을 향해 달리고 있다.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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