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호기자의 야생일기] 승패 떠난 관중석 함성 ‘프랜차이즈 스타’의 힘

입력 2010-04-1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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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대구. 홈팀 삼성이 원정팀 KIA에 2-3으로 뒤져 패색이 짙던 9회말 2사. 아웃카운트 하나면 경기가 끝나는 상황이었다. 스탠드는 무겁게 침묵했고 싸늘한 기운마저 느껴졌다. 몇몇 관중은 이미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때 선수 교체를 알리는 장내 아나운서의 안내방송이 시작됐다. “삼성 라이온즈 대타∼ 양준혁!” 순간 1만 관중은 떠나갈 듯 환호하며 한 목소리로 양준혁의 이름을 큰소리로 외쳤다. 관중들에게 보답하듯 양준혁은 깨끗한 중전안타를 기록했다. 후속타자의 삼진으로 경기는 그렇게 삼성의 패배로 끝났다. 그래도 팬들은 양준혁을 보며 그나마 아쉬움을 달랬는지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벼워보였다. 맥주를 좀 드셨는지 얼굴이 불콰해진 어느 30대 팬은 친구에게 “내나 너나 중학교 다닐 때부터 양준혁이 팬 아니었나”라며 흥겨워하고.

15일 광주. KIA가 8회초 두산에 3-3 동점을 허용하자 관중석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경기 전 몇몇 KIA 팬들은 단체로 곰탕까지 시켜먹으며 두산전 승리를 바랐건만 위기가 감돌았다. 그러나 8회말 타석에 한 선수가 서자 관중들은 동시에 오른팔을 흔들며 함성을 외쳤다. 최희섭이나 김상현처럼 큰 것 한방을 날려줄 수 있는 중심타자도 아니지만 팬들은 너무나 익숙한 그의 이름을 목이 터져라 외쳤다. 주인공 이종범은 약속이나 한 듯 결승 홈런을 날리며 팬들을 향해 똑같이 오른손을 번쩍 들었다. 경기가 끝난 후 한동안 많은 관중들은 자리를 뜨지 않고 이종범이 응원단상에 올라올 때까지 기다려 뜨거운 박수로 반겼다.

양준혁과 이종범은 17년 전부터 대구, 광주팬들과 함께하고 있는 ‘프랜차이즈 출신스타’다. 승패를 떠나 야구장에서 그들을 직접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 팬들은 열광한다.

작년부터 전면드래프트가 도입돼 각 지역연고 1차지명이 없어졌다. 현장에서는 당장 유망주의 해외진출을 걱정하고 있다. 덧붙여 한국프로야구 고유의 강한 경쟁력으로 자리 잡은 프랜차이즈 출신스타도 전면드래프트 제도 안에서는 명맥을 잇기 어렵다. 장단점이 있겠지만 1차 지명제도를 버리기 보다는 우리 프로야구만의 특별함으로 가꾸는 건 어떨까.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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