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식 수비’ 보다 공격위주 전략 구사 가능성 커
뒷심부족 약점…허정무호, 선제골 만들면 승산
소위 ‘축구를 볼 줄 안다’는 이는 누구나 예상했듯 핵심 키워드는 디펜스였다. 26일(한국시간) 오스트리아 알타흐 캐시 포인트 아레나에서 열린 북한과 그리스의 평가전에서 ‘수비’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언급됐다.
심지어 전날 많은 취재진 앞에서 진행된 북한 김정훈 감독의 공식 기자회견에서도 “양 팀 모두 탄탄한 수비력을 자랑한다”는 전제 하에 여러 질문들이 쏟아졌고, 일부는 “진정한 수비 축구의 최강자를 가리는 경기”라며 은근한 기대감을 표출하기도 했다.
● 최상의 수비 자원들
그리스는 2004년 유럽선수권 우승으로 변방에서 중심으로 옮겨진 듯 했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은 “그리스가 정말 강팀으로 인정받으려면 오직 수비에 치중하는 기본 틀부터 전부 바꿔야 한다”고 꼬집었다. 분명 효율적이긴 해도, 매력을 주지 못한다는 의미다. 패하지는 않지만 승리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은 절반의 성공만을 보장할 뿐이다.
하지만 확실한 점은 그리스가 여전히 엄청난 수비력을 자랑한다는 사실이다. ‘벌떼 축구’를 토대로 한 역습에서 그리스만한 팀을 찾기 어렵다는 평가도 있다. 월드컵 유럽 예선에서 12경기를 치르는 동안 무실점 경기가 무려 5차례나 된다. 오토 레하겔 감독이 실리 축구의 대명사로 불리는 것도 괜한 게 아니다.
그리스가 가장 막강할 때는 최상의 수비진이 탄생한 순간이다.
포백이 아닌 스리백이 가동되면 키르기아코스-모라스-파파도플로스가 주력으로 나선다. 파파스폴로스와 빈트라, 스리로플로스, 토로시디스 등이 언제든 버티고 있다. 흔히 언급되는 ‘질식 수비’가 빛을 발할 수 있다.
필드 전체에서 어우러지는 전방위 압박으로 쉽게 볼을 가로채 장신 공격진 앞으로 길게 내지르는 롱패스도 함께 위용을 과시한다. 전력에서 밀릴 때 그리스가 승리할 수 있는 나름의 공식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치올리스-카라구니스-카추라니스-파차초글루 등 수비형 미드필더가 형성할 ‘1차 저지선’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16강 진출에 다소 부정적인 시선을 가진 그리스 취재진도 “우리가 가진 강점만 최대한 끌어낼 수 있다면 적어도 패하진 않을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 한국전 선택은?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나온다.
과연 그리스가 한국전까지 스리백을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북한 평가전을 관전한 허정무 감독은 “그리스, 나이지리아, 아르헨티나 모두 한국을 유력한 승점 3점의 제물로 여긴다”고 했다. 내용을 떠나 무조건 승리가 필요한 상황에서 수비에 우선권을 주겠느냐는 것.
최종 선택은 레하겔 감독이 내리겠지만 최근 결정적 승부처에 스리백이 등장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코칭스태프가 분석한 그리스 관련 영상은 모두 4경기로 유럽 예선 스위스, 라트비아, 우크라이나전과 세네갈과 평가전이었다. 여기서 그리스는 포백을 선택했다. “이기려면 득점이 필요하고, 공격을 위해 좌우 측면의 돌파를 기대할 수 있는 포백이 유력하다.”
북한전에서 그리스는 포백을 내세웠다.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 등 상대적으로 전력이 강한 팀들과 상대하기엔 스리백이 유리해도 한국전까지 이를 가동할 가능성은 비교적 낮은 편이다.
물론, 선제골을 넣은 뒤 디펜스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스리백으로 전환할 가능성은 있다. 역으로 본다면 먼저 기선을 제압당했을 때 익숙하지 않은 공격에 포커스를 맞추다 오히려 역공을 얻어맞고 크게 깨질 공산도 있다.
리광철-남성철(후반 리준일)-박철진이 스리백 골격을 엮은 뒤 좌우 측면 날개 지윤남과 차정혁이 내려올 때 파이브백까지 만든 북한에 2점이나 내준 장면이 이를 뒷받침한다. 현지 취재진은 “오히려 북한이 효율적인 플레이를 했다”는 평가를 내렸다.
집중력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한다는 점도 허정무호에 유리하다.
유럽 예선 때 그리스는 총 10실점을 했는데, 그 중 7골을 후반전에 허용했다. 전반에 기록한 12득점-3실점에 비해 후반 기록(9득점-7실점)은 비교적 저조하다. 뒷 공간을 차단하고, 선제골만 먼저 만들 수 있다면 허정무호에 충분한 승산이 있어 보인다.
알타흐(오스트리아)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