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월드컵이 개막한 지 겨우 엿새가 지났을 뿐인데 마치 6년은 된 것처럼 길게 느껴진다. 아프리카에서 열린 첫 월드컵은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이후 가장 무질서한 대회라고 할 만하다. 경기장에 가서 티켓을 사는 데 4시간이 걸릴 정도라니.
하지만 중요한 것은 축구 경기 자체다. 훌륭하고 볼만한 축구 경기 말이다. 그런데 아직 그런 축구를 많이 접하진 못했다. 역동적인 플레이를 펼쳤던 한국과 리오넬 메시의 아름다운 몇몇 순간이 돋보였던 아르헨티나, 젊은 선수들의 파워를 과시한 독일만이 유일하게 공격할 수 있는 용기를 선보였다. 파이팅, 한국! 계속 나아가라, 메시! 잘 싸워라, 독일!
그동안 월드컵 취재를 위해 4개 대륙을 누볐지만 개막전이 있던 날 아침에 일어나 그렇게 큰 쇼크를 받기는 처음이다. 넬슨 만델라의 증손녀 제나니가 교통사고로 숨졌다는 소식 때문이다. 그녀는 요하네스버그 소웨토에서 열린 대회 개막 전야 콘서트에 갔다가 귀가하던 길이었다. 한 달 전 만 13세가 된 이 소녀를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는 바로 36시간 전에 요하네스버그 외곽 만델라의 집 밖에서 만났다. 소녀는 신이 나 있었다. 2002년 한국에서처럼 사람들은 행복한 도취감에 젖어 있었다.
제나니와 그녀의 여동생은 만델라 집 안에서 폴짝폴짝 뛰어다니며 거리로 뛰어나가고 싶어 안달이었다. 하지만 곧 만델라의 집을 방문하기로 돼 있던 포르투갈의 잘생긴 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날 밤 제나니 자매는 콘서트에 가서 춤을 추었는데 제나니는 결국 집에 돌아가지 못했다.
만델라는 제나니의 죽음 때문에 비탄에 젖어 개막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경기는 계속돼야 하고, 여러분은 경기를 즐겨야 한다”는 영상 메시지를 전했다. 개최국 남아공과 멕시코는 개막전에서 8만4000명의 관중을 앞에 두고 1-1로 비겼다. 경기장은 부부젤라 때문에 시끄러웠지만 활력이 넘쳐흘렀다.
하지만 그 개막전 이후부터 대부분의 경기가 소심함과 조심스러움으로 일관했다. 프랑스가 그런 추세의 출발이었다. 프랑스는 우루과이와의 경기에서 승리의 영광을 좇기보다 패배를 더 두려워했다. 결국 0-0으로 비겼다.
한국이 그리스를 상대로 넣은 두 골과 독일이 호주전에서 넣은 네 골을 빼면 골이 너무 안 터진다. 자고로 축구 경기란 선수들이 자유로이 자신이 가진 모든 기술을 펼쳐 보일 수 있어야 한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모든 팀의 감독들은 축구가 공적인 엔터테인먼트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선수들이 공격을 꺼리고 감독의 엄격한 지시에만 따른다면 리듬과 흐름을 잃을 것이다.
난 지구의 절반을 가로질러 이곳에 왔다. 이번 대회 첫 승리 팀이 된 한국의 경기는 기꺼이 돈을 내고 볼만했다. 호주를 무차별 공격해 굴복시킨 독일 경기도 비록 상대가 약하긴 했지만 괜찮았다.
남아공 월드컵은 혼돈 속에서 열리고 있지만 축구라는 스포츠가 제대로 된 기백으로 치러진다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 축구를 보려고 온 세계가 이 대회를 관심 있게 지켜보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야말로 안타까운 사고가 있기 전에 제나니를 그토록 흥분시켰던 것이다.
-남아공에서
잉글랜드 칼럼니스트 ROBHU800@a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