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희기자의 호기심 천국] 배트 부러지는 현상, 타격실력과 상관있나?

입력 2010-08-1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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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자들은 경기 중 배트가 부러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어떤 유형의 타자가 배트를 더 많이 부러뜨릴까. 사진은 한화 강동우가 롯데전에서 타격하면서 배트가 두 동강나는 모습. 스포츠동아 DB

김상현 “난, 배트 부러져도 넘어가던데…”
2009년 가을잔치 때의 일이다. 페넌트레이스 막판부터 절정의 타격감을 과시한 SK 박정권의 ‘요술 방망이’가 화제가 됐다. 9월 중순부터 한 달 간 ‘부러짐’ 없이 생명력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당시 박정권은 “배트가 부러진다는 것은 그만큼 정타가 안나온다는 얘기”라면서 “타격감이 좋기 때문에 잘 부러지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그렇다면 방망이 실력과 부러지는 배트의 개수는 반비례 할까. 프로야구에서 가장 배트가 많이 부러지는 타자는 누구일까.


○어디 맞아야 잘 부러지나?



손잡이·끝부분 공 맞으면 많이 부러져

스윙궤적 따라 차이…파워와는 무관


배트가 부러지는 경우는 크게 2가지. 배트 안쪽에 맞거나 배트 끝에 맞을 때다. 어느 쪽에 맞든, 부러지는 부위는 손잡이 쪽인 경우가 많다. 한화 한대화 감독 등 관계자들의 경험을 종합해보면, “상대적으로 배트 끝에 맞을 때가 더 잘 부러지는 것 같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삼성의 좌완 파이어볼러 권혁도 “몸쪽 직구보다 도리어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슬라이더에 더 잘 부러지는 것 같다”고 했다.

과학적으로도 일리가 있다.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유재준 교수는 “지렛대 점(배트를 쥐는 부분)에서 멀어질수록 (배트의) 회전력은 커진다. 따라서 공이 배트 끝에 맞을 때, (손잡이 부분에 전달되는) 충격량도 커진다. 시소를 탈 때 가벼운 사람이 무거운 사람보다 지렛대 점에서 멀리 있으면, 평행을 이루는 것과 같은 원리”라고 했다.

반면, 공이 배트의 스위트스팟(Sweet spot)과 만날 때는 배트가 부러지지 않는다. 배트의 회전력이 진동 등으로 손실되지 않고, 온전히 공을 앞으로 보내는 데만 쓰이기 때문이다. 매번 정타를 치는 타자라면 당연히 배트가 자주 부러질 리 없다. 배트 생명력이 긴 편인 넥센 강정호는 “힘으로 우겨서 치지 않고, 공을 결대로 치면 잘 부러지지 않는 것 같다”는 견해를 밝혔다.

○김상현·장성호 ‘잘 부러져도 잘만 쳤다.’


김상현 작년 홈런왕때 20∼30개 동강

장성호는 한시즌에 무려 80자루나 써


하지만 타격은 농구의 자유투가 아니다. 실패의 확률이 그만큼 많기 때문에 현실에서는 방망이가 자주 부러지는 A급 타자도 많다. 대표적인 선수는 KIA 김상현과 한화 장성호.

김상현은 홈런왕에 올랐던 지난 시즌, “실전 중에만 20∼30자루를 부러뜨렸다”고 했다. 배트가 잘 부러지지 않는 타자들이 10∼15개로 한 시즌을 마치는 것을 감안하면 2배가량 많은 수치. 심지어 배트가 부러지면서도 홈런을 친 경우도 있었다.

장성호는 한 술 더 뜬다. “풀타임을 소화했을 때, (실전에서만) 30∼40자루가 부러졌다”고 했다. ‘방망이를 거꾸로 잡아도 3할을 친다’던 시절을 포함한 얘기다. 장성호 배트의 스폰서였던 (주)맥스 공금석 사장은 “한 경기에 3개가 부러지는 것도 봤다”며 혀를 내둘렀다.

스프링캠프 등 훈련 때 배트가 부러지는 경우와 기분 전환을 위해 배트를 바꾸는 경우까지 포함하면, 장성호는 약 80자루로 한 시즌을 난다. 넥센이 1·2군을 포함해 연간 약 800자루의 배트를 쓴다고 하니, 장성호 혼자 다른 팀 평균의 10분의 1을 쓰는 셈. 이 정도가 되면 비용도 만만치 않다. 배트는 1자루 당 15∼20만원. 장성호의 경우, 연간 약 1500만원 어치의 배트를 쓰는 셈이다. 하지만 개인 부담은 크지 않다. 경기 중 부러진 것은 팀에서 보전하는 것이 원칙. 일부 스타선수들은 배트회사의 스폰서를 받기도 한다.


○힘 좋은 타자의 배트가 잘 부러진다?

넥센 송지만은 “2000년대부터 탄성이 좋은 단풍나무배트가 나와서 빈도수가 줄기는 했지만, 홈런타자의 배트가 더 잘 부러지는 것 같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첫 번째 이유는 공이 변하기 전에 앞쪽에서 치다보면, 배트 끝에 걸리는 경우도 생긴다는 것. 두 번째는 ‘똑딱이’보다 ‘대포’의 배트회전력이 크기 때문에 당연히 빗맞을 때의 충격도 크다는 것이다.

김상현은 “내 경우, 손잡이 부분이 얇은 배트를 쓰는 것도 원인”이라고 했다. 일반적으로 홈런타자들은 배트헤드의 무게감을 더 느끼기 위해 손잡이 부분이 얇은 배트를 쓴다. 장성호 역시 “난 컨디션이 좋을 때 도리어 더 많이 부러진다”고 했다. 몸쪽 공을 최대한 당겨놓고 칠 때, 파워가 없을 때는 그냥 파울이 되지만 “배트 스피드가 좋을 때는 배트가 부러지더라”는 경험담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일반화할 수는 없다. 지난시즌 홈런1위 김상현과 달리 2위 최희섭(KIA)의 배트는 잘 부러지지 않는다. 최희섭의 배트를 스폰서하는 공금석 사장에 따르면, 최희섭이 연간 사용하는 배트는 김상현의 절반수준. 그래서 한화 장종훈 타격코치는 “스윙궤적에 따라서도 배트가 부러지는 확률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잘 부러지느냐 아니냐’를 가지고 타자의 능력을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정리했다.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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