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호기자의 야생일기] 한번에 정확히!…빈볼에도 에티켓 있다

입력 2010-08-1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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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를 보니까 한대 맞을 것 같더라고, 마음속으로 제발 허벅지 쪽으로 한번에 잘 던져줘야 할 텐데 그러면서 타석에 섰지. 그런데 그 멍청한 놈이 첫 번째 공으로 못 맞췄잖아. 관중들도 보고 있고 TV중계도 하고 있으니까 어쩔 수 없이 인상 쓰면서 노려봐야지. 그리고 다시 몸쪽으로 날아온 공에 맞으면 어쩔 수 없이 또 더 험악하게 인상 쓰면서 노려보고 있어야해. 그러다보면 감정이 격해지고 양쪽 선수들 다 뛰어나오고 그러는 거지. 첫 번째에 잘 맞혀주면 한번 째려보고 그냥 1루로 뛰어갈 수 있었잖아.”

한 현역 코치-실명을 밝히고 싶었으나 당시 상대했던 투수가 아직 현역이라는 이유로 간곡히 비공개를 부탁했다-의 고백이다.

‘빈볼’은 경고이며 복수다. 예의를 지키지 않았다고 판단됐을 때, 주자로 나가 사인을 훔쳤다고 생각될 때 ‘이제 그만하자’는 뜻을 담은 강력한 메시지다. 빈볼을 던져야할 타이밍, 마운드에 선 투수는 메시지의 전달자다. 안전하게 무사히 사고 없이 메시지를 배달해야한다.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초구에 살집이 두툼한 허벅지 앞으로 정확히 배달하는 것이다.

미국의 저명한 야구기자 레너드 코페드는 그의 명저 ‘야구란 무엇인가’에서 ‘타격은 본질적으로 두려움과의 싸움이다’고 정의했다. 그 두려움의 대상은 빠르고 딱딱한 야구공이 신체에 맞았을 때 느껴지는 고통과 그에 따른 부상이다. 당연히 타자에게 빈볼의 연관검색어는 부상이다. 허벅지는 그 부상과 가장 거리가 먼 곳이다. 머리 쪽으로 올라올수록 두려움이 느껴지고 방어적으로 투수와 맞서 싸우게 된다.

반대로 투수에게도 빈볼은 두려움이다. 혹시 타자가 빈볼을 맞고 부상이라도 당할까 망설이다 일을 더 크게 만드는 경우는 수 없이 많다. 스스로 빈볼을 던져야겠다고 판단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 동료들의 마음이 하나로 뭉쳐진 굳은 결의에 따른 것으로 일단 명령이 내려지면 꼭 따라야 한다.

빈볼이 어쩔 수 없는 프로야구의 한 일부라면 그 어떤 공보다도 더 잘 던져야한다. 그래야 부상도 피하고 감정 상하는 일도 피할 수 있지 않을까?

ru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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