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그때 이런 일이] 방화 사상 50만원 ‘최고 개런티’ ‘톱스타 남정임’의 탄생 레디고!

입력 2010-11-2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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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總天然色(총천연색). 이 新人(신인)을 注目(주목)하시라. 새해엔 새 사람 새 얼굴의 映畵(영화)를!! 50만원 갸란티의 新人.’

1966년 1월22일 ‘구정’ 개봉 영화인 ‘유정’의 신문 광고 카피다. 배우 김진규와 함께 춘원 이광수의 동명 소설을 김수용 감독이 연출한 영화 ‘유정’의 헤로인은 50 만원의 출연료를 받고 화려하게 데뷔했다. 그리고 영화 속 여주인공의 이름인 ‘정임’은 그대로 이 배우의 예명이 됐다. 바로 배우 남정임(사진)이다. 1960년대 이후 윤정희, 문희와 함께 한국영화 사상 최초의 ‘트로이카’를 이루며 1970년대까지 톱스타로 군림했던 바로 그 배우.

1965년 오늘, 남정임이 스크린 데뷔작 ‘유정’의 촬영을 시작했다. ‘남정임양의 싱싱한 매력, 산뜻한 연기에 박수를! 청초지순의 이 낭만대작에 백만팬의 눈을 모으자’는 영화 광고 문구처럼 남정임은 “이글거리는 눈과 별빛처럼 理智(이지)의 빛을 반짝이는 용모가 淸楚(청초)”(1965년 11월22일자 경향신문)한 매력으로 인기를 모았다.

남정임이 받은 출연료 50만원은 그해 10월29일 ‘유정’의 여주인공을 뽑는 신인배우 공모 무대의 상금이었다. 당시 연방영화사는 ‘유정’의 여주인공을 공모했고 KBS 공채 탤런트 5기로 그해 연속사극 ‘마패’를 통해 브라운관에 얼굴을 내민 남정임이 100대 1의 경쟁을 뚫고 뽑혔다. ‘이민자’라는 본명의 이 스무살 아가씨는 당시 한양대 연극영화과 2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연방영화사 주동진 사장은 ‘유정’의 여주인공 이름을 따 그녀에게 ‘남정임’이라는 예명을 선사했다.

당시 남정임이 받은 50만원은 ‘방화 사상’ 전례없는 액수로 평가받았다. 통계청이 2009년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1965년 자장면 한 그릇이 35원이었고 다방 커피 한 잔은 30원이었다는 점에서 남정임의 출연료가 상당히 거금이었음을 읽게 한다.

이는 이 영화와 신인배우 남정임에 대한 기대와도 같았다. 그 기대에 보답하듯 영화는 흥행에 성공했다. 남정임은 1966년 13회 아시아 영화제에서 신인여우 장려상을 품에 안았다. 이후 그는 무려 300여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당대 최고의 여자스타로 인기를 누렸다.

남정임은 이후 1978년 자신을 데뷔시킨 김수용 감독의 ‘웃음소리’를 끝으로 스크린을 떠났다. 그리고 1992년 9월2일 4년 동안 자신을 괴롭힌 암을 이겨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세상 사람들은 2년 뒤 그녀가 세상을 떠난 그 날, 지금은 없어진 서울 논현동 씨네하우스에서 추모영화제를 열어 고인을 추억했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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