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게임] 육상계에서 이미 파다한 그들의 러브스토리

입력 2010-11-26 07: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여자 허들 이연경 선수 남자친구인 이정준 선수. 비록 함께 광저우에 오지는 못했지만,  결혼을 약속한 이정준이 누구보다 더 기뻐했을 듯하다. 스포츠동아DB

여자 허들 이연경 선수 남자친구인 이정준 선수. 비록 함께 광저우에 오지는 못했지만,  결혼을 약속한 이정준이 누구보다 더 기뻐했을 듯하다. 스포츠동아DB

이연경 ♥ 이정준 ‘허들 연인’의 특별한 러브스토리

너무나 달랐던, 그 다름에 끌렸던 그들
혈육과 사별 고통 달래주며 사랑 확인
교제기간 성적 희비…이정준 AG 탈락
귀국후 곧 결혼…“이젠 함께 날아야죠”


한 선수의 성공 뒤에는 항상 변함없는 응원을 보내는 이가 있게 마련이다. 이연경(29·안양시청)의 금빛 질주 뒤에도 묵묵히 질책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버팀목이 있다. 그들의 사랑은 이미 육상계에서 유명하다.

비록 부상으로 아시안게임 출전이 좌절됐지만, 한국남자 허들을 이끌어 온 이정준(26·안양시청)이 바로 이연경의 반쪽이다. 허들커플은 이미 결혼을 약속한 사이. 아시안게임이 끝난 뒤에는 식을 올리고, 함께 더 큰 목표에 도전한다.


○‘아, 어머니’이연경이 채워 준 이정준의 반쪽

2005년 연말이었다. 그 해 겨울은 이정준에게 유난히도 추웠다. 위암으로 투병하던 어머니와 영원한 이별을 했기 때문이다. 태릉에서도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날이 섰다. 그 날에 걸린 선수는 이연경이었다. 이정준은 “처음 몇 달 간은 서로 앙숙이었다”고 말한다.

이연경은 2005년 겨울, 처음으로 태릉에 들어와 이정준을 만났다. 그 전까지는 기본적인 인사만 주고받을 뿐, 살가운 대화 한 번 해본 사이가 아니었다. 이정준은 “연경이가 좀 강해보이는 외모라서 처음에는 이성으로 느끼지는 못했다”고 했다. 이연경 역시 ‘까칠한’ 이정준에게 쉽게 다가서지 못했다.

이연경이 이정준의 집안일을 안 것은 시간이 좀 지나서였다. 배려가 담긴 말들이 오고갔고, 둘 사이의 오해도 서서히 풀렸다. 냉랭하던 이정준의 가슴 속에도 차츰 이연경의 온기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이연경에게서 마치 어머니와 같은 정을 느꼈다.



딱딱해 보이던 첫 인상을 접고, 그녀에게서 ‘여성’의 면모를 발견한 것도 이 때부터다. “연경이는 허들 말고는 아무 운동도 못해요. 운동시간이 끝나면 차분하게 책을 읽는 모습도 매력적이라고요. 아주 고상해요. 저는 활동적인데 말이죠.” ‘반대에게 끌리는’것은 딱 이 커플의 이야기였다. 2006년 5월28일, 태릉선수촌. 마침내 서로의 호칭에서 “누나”가 빠졌다.


○‘아, 아버지’ 이정준이 채워 준 이연경의 반쪽

도하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목에 건 이연경은 2007년부터 부진에 시달린다. 운동을 둘러싼 여러 갈등 때문에 선수생활에 대한 회의까지 느꼈다. 설상가상 2008년 봄, 이연경의 아버지가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다. 슬럼프는 길어졌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이었다. 혈육을 잃은 슬픔이 얼마나 큰지를 아는 사람이 바로 옆에 있었다. 이정준은 장례까지 함께 치렀다. 그 때 둘은 확신한다. 평생을 함께 할 사이라는 것을…. 하늘에 계신 장인어른과도 이미 인사를 한 터였다. 이정준은 그 때부터 이연경의 아버지 역할까지 도맡았다.

다른 육상 커플들은 운동 얘기를 잘 하지 않는다지만, 둘은 달랐다. 평온하기만 하던 둘 사이에 말다툼이 잦아진 것도 이 때였다. “너는 더 잘 할 수 있는데 왜 그러느냐”고. “더 마음을 굳게 먹으라”고. 이정준은 여자친구에게 채찍을 가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연경의 가슴 속에 여전히 기록에 대한 열정이 있음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 상을 치른 뒤에도 며칠 뒤에 몸을 만들어 종별선수권을 나가더라고요. 저도 운동선수지만, 존경할 만 했어요. 그리고 더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결심했지요.” 그리고 이연경은 2009년부터 부활의 발걸음을 내딛는다. 이정준은 “꼭 한창 잘 나가던 2006년의 눈빛으로 돌아왔다”고 회상했다.


○운동만은 엇갈렸던 4년. 결혼 이후에는 함께 날고 싶은 소망

본격적으로 교제한 4년 반의 시간 동안 둘의 희비쌍곡선은 엇갈렸다. 2007∼2008년 이정준은 연이어 한국기록을 깨고, 베이징올림픽에서 장재근(서울올림픽 200m) 이후 20년 만에 육상트랙종목 1회전을 통과했다. 하지만 이연경의 기록은 하향세였다. 최근 2년간은 정반대다. 이연경은 날았지만, 이정준은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10월, 림프선 이상을 발견해 현재는 휴식을 취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둘은 “그래서 더 좋았다”고 말한다. 그마나 서로를 보며 위안을 받고, 새로운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정준은 “요즘은 연경이가 용기를 많이 준다. 운동이 잘 안 돼서 의기소침할 때마다, ‘넌 아파서 그런 것 뿐’이라고. ‘다 털어버리라’고 말한다”며 웃었다.

둘은 오래전부터 결혼을 약속한 사이다. 하지만 아시안게임 준비와 동계훈련 등으로 차일피일 미뤄왔다. 귀국 후 구체적인 결혼 논의를 할 계획이다. 이제 ‘진정 하나’가 되는 허들커플은 운동에서도 ‘기쁨의 순간’을 함께 할 날을 꿈꾼다.

이정준은 “결혼식을 올린 뒤, 일단 내년 세계선수권에서 세미파이널에 가는 것을 목표로 하겠다”고 밝혔다. 이연경은 역시 “나이 많아 안 되고, 여자라서 안 된다는 편견을 다 깼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은 이제 시작을 알리는 것이다. 이제 세계선수권과 올림픽에도 나갈 수 있도록 하겠다”며 마음가짐을 새롭게 했다.광저우(중국) |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