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시크릿가든'에서 스턴트우먼 길라임(하지원 분)의 대역을 연기한 유미진씨. 정주희 동아닷컴 기자
남자가 아닌 여자 액션배우가 여배우의 거친 액션 대역을 맡는 것은 드문 일. 13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에 위치한 액션스쿨 연습실에서 스턴트우먼 유미진 씨를 만났다.
유 씨는 최근 ‘진짜 길라임’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포털 검색어 상위권을 유지했다.
“저는 컴퓨터가 고장난 줄 알았어요. 얼떨떨했죠. 지금은 액션 분야에 대한 연기를 그만큼 배우가 잘해줬기 때문에 스턴트우먼에 집중이 된 것 같아요. 고맙죠.”
예쁘장한 얼굴과 키 163cm 보통 여성의 체구를 갖춘 유 씨. 하지만 도합 12단을 갖춘 그에게선 스턴트우먼만의 다부진 포스가 느껴졌다.
유 씨가 속해있는 액션스쿨의 스턴트맨들은 총 60여명 정도. 그 중 스턴트우먼은 유 씨를 포함해 단 3명이다.
지방의 한 체육관에서 사범으로 일을 해오던 유 씨는 작년 4월 무작정 짐을 싸갖고 서울로 올라와 오디션을 거친 후 액션스쿨에 입학하게 됐다.
“당시 오디션 때 액션스쿨 선배들이 만류를 많이 했어요. 회사처럼 정기월급도 못 주고 생계를 책임져주지 못한다고요. 그래도 전 하고 싶은 일을 찾다보니까 여기까지 왔어요.”
이곳 액션스쿨의 기본 교육과정은 보통 6개월. 교육과정에는 현대액션, 사극액션, 승마, 와이어, 스킨스쿠버 교육 등이 포함되어 있다. 유 씨는 5개월 정도 기본교육을 받았을 무렵 액션스쿨 감독의 제안을 받고 처음 촬영장에 발을 딛게 됐다.
“사실 6개월 과정 졸업 후 스턴트로 남겠다는 지원자들은 추가 3개월 교육을 해요. 이후 실력을 갖춘 사람만 촬영할 수 있는데 저는 운이 좋게도 졸업하기 전 촬영을 나가게 됐죠.”
당시 유 씨는 배우 하지원과의 체형을 비슷하게 맞추기 위해 한 달 동안 거의 굶어가며 무려 8kg의 살을 뺐다.
유 씨의 첫 촬영인 동시에 드라마 첫 회 촬영은 명동 한복판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현장에는 정두홍 무술감독이 나와 있었다.
“대장님 앞에서 막내인 제가 액션을 보이려니 많이 긴장됐었죠. 게다가 주말이라 사람들이 가득 차 있어 부담도 많이 됐었어요.”
유 씨는 아파트 2, 3층 높이의 백화점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이 ‘좀 어려웠다’고 말했다. 한 장면을 위해 4~5번을 뛰었다고 한다. 안전장치는 와이어 없이 밑에 박스와 매트리스를 깔아놓은 것이 전부였다.
스턴트맨 직업 특성상 현장에서 부상을 입더라도 촬영이 끝날 때까지는 전혀 내색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유 씨의 설명이다.
“혹시나 이런 액션에서 누군가 부상을 입게 되면 ‘아, 이 액션에서는 이 배우를 쓰면 안 되겠구나’ 하는 인식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촬영 중 부상이 생기더라도 보통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촬영에 임해요. 스턴트맨들의 말 못할 애환이죠.”
국내 인기 여배우의 대역을 한 소감은 어땠을까?
“하지원 씨는 액션 씬을 워낙 많이 촬영해보셔서 그런지 스턴트 맨들의 고충을 잘 알아요.그리고 액션 팀들은 대부분 여배우 누가 이쁘다와 같은 말들을 전혀 안하는데, 하지원 씨와작품을 같이 하고나서는 ‘정말 매력적이고 인간적인 배우다’라고 얘기해요. 스텝들부터 시작해서 막내 액션배우까지 인사를 먼저 건네줬거든요.”
유 씨는 처음으로 출연한 작품이 이제 마지막 2회를 앞두고 있어 아쉬움이 누구보다 커보였다.
“정말 이번 드라마는 몇 년이 지나서도 애착이 많이 갈 것 같아요. 첫 사랑처럼 뭐든지 처음은 기억에 오래 남잖아요. 특히 작품 내용도 우리 액션 배우들 이야기를 다뤄서 너무 영광스러웠어요.”
스턴트맨들의 최고 목표는 보통 국내 무술감독 또는 액션을 연출하는 사람들을 꿈꾼다고 한다. ‘진짜 길라임’ 유 씨는 조금 다르다.
“저도 국내 최초 여성 무술감독을 꿈꾸죠. 하지만 아직 감독보다는 운동을 열심히 해서 할리우드에 진출하고 싶어요. 외국 영화계에서도 대역을 할 수 있을 만큼 실력을 갖춰서 활동해보고 싶어요.”
정주희 동아닷컴 기자 zooe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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