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이미지 몰아가기, 70년대 '가요정화운동'의 재탕인가?

입력 2011-02-16 18:5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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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확대해석과 이중잣대. 게임 시장과 게이머는 봉이 아니다
이장희, 세시봉 등 추억 속의 연예인이 등장했던 MBC의 예능프로그램 '황금어장-무릎팍도사'와 '놀러와'는 7080세대의 향수를 자극하며 중장년층은 물론 젊은이들에게도 큰 화제가 됐다.

이 방송에서는 이들의 최근 근황은 물론 그간 방송에서는 접할 수 없었던 비하인드 스토리도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각기 다른 두 방송에서 공통적으로 언급되며 화제가 된 내용이 있으니 바로 '가요정화운동'이 그것이다.

'가요정화운동'은 1975년에 건전한 가요를 국민들에게 보급하겠다는 의도로 시행된 정책. 의도는 훌륭하다 할 수 있겠지만 방송에서 이 정책에 의해 희생된 노래의 목록과 그 이유가 공개되자 많은 이들은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그건 너'는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내용이라며 금지됐으며, '불 꺼진 창'은 사랑하는 여인의 집에 갔는 데 창 옆에 그림자가 있으니 불륜이라는 이유로, '한잔의 추억'은 가사에 포함된 '마시자'라는 내용이 폭음을 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이유로 금지곡으로 지정됐다.

또한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타오르고'라는 가사를 담고 있는 '아침이슬'은 붉게 타오른다는 내용이 북한체제를 암시한다는 이유로 금지곡 딱지를 뒤집어 쓰기도 했다. 이날 방송의 게스트와 진행자들은 물론이거니와 이를 시청한 시청자들 역시 과거의 억지스러운 모습에 쓴 웃음을 지었다.

지금으로부터 26년 전인 1975년에 행해진 '가요정화운동'은 현대 사회에서는 이렇게 우스꽝스럽고 창피한 과거의 행적으로 남게 됐다. 당시 기준으로도 억지스럽다는 분위기가 많은 정책이었으니 26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더욱 이해할 수 없는 모습으로 보여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과거의 이야기에서 시선을 현재로 돌려보자. 최근 게이머들 사이에서 가장 큰 화제라면 역시 지난 주말 방영된 MBC 뉴스데스크의 '폭력성 게임에 대한 실험'을 꼽을 수 있다.



이날 뉴스에서 기자는 게임을 즐기는 이들이 있는 PC방의 전원을 불시에 내려버리고, 이에 당황하며 불쾌감을 표하는 이들의 모습을 뉴스로 보도했다. 그리고는 이들의 모습을 두고 '폭력게임처럼 이들도 폭력적으로 변했다'는 멘트로 마치 이들이 폭력 게임 때문에 이러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라는 이야기로 뉴스를 마무리했다.

이러한 뉴스를 두고 게이머들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며 발끈하고 나섰다. 게이머 뿐만 아니라 그 어떤 누구라도, 자신이 집중해서 하고 있는 일을 갑자기 방해 받으면 저러한 반응을 보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육식이 폭력에 미치는 영향을 알기 위해 고기집의 불판을 불시에 다 빼봤습니다”, “바둑의 폭력성을 확인하기 위해 노인들이 두고 있는 바둑판을 엎어보겠습니다”라는 식의 패러디가 쏟아지고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 있다.

또한 실험군과 대조군이 분리되지 않은 실험이며 이러한 실험으로 결론을 내기 위해서는 같은 실험을 대상을 바꿔가며 수 차례 해야 하는데도, 단 한 번의 실험만 해 놓고서는 이러한 결론을 내린 거 자체가 무리수라는 지적도 일고 있다.

게이머들이 이러한 보도에 발끈하는 것은 실험의 무리수와 비약에 의해 논리성이 떨어지는 결론을 내렸다는 1차적인 이유 이외에도, 최근 '악의적'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무차별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게임 시장에 대한 흠집내기에 게이머들의 인내심이 극에 달한 탓도 있다.



사실 게임의 폭력성 때문에 청소년들이 폭력적으로 변한다는 주장은 90년대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오는 만큼, 이러한 주장이 갖고 있는 비약과 억지에 대한 지적도 꾸준하게 제기되어 오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는 90년대 후반에 자신의 동생을 도끼로 살해해 사회적인 파장을 일으킨 한 소년의 이야기를 꼽을 수 있다. 언론 매체에서는 이 소년이 평소 게임을 즐겼기 때문에 이러한 잔인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죄를 저지를 그 소년보다는 오히려 게임과 게임사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렀다

하지만 이 소년이 평소 즐겼던 게임은 일본의 롤플레잉 게임 'YS2 스페셜'로, 이 작품에는 잔인한 장면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롤플레잉 게임이기에 아이템으로 각종 무기류가 등장하긴 하지만, 이 게임에는 이러한 무기류를 휘두르는 동작 자체가 구현되어 있지 않다. 단지 몬스터와 부딪히는 방향에 따라 대미지가 결정될 뿐이었다. 결국, 언론사에서는 해당 게임에 대한 이해를 전혀 하지 않은 채로 이 게임을 마치 '잔인무도'한 게임으로 호도한 셈이다.

폭력적인 콘텐츠를 담고 있는 게임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게임을 즐기는 이들이 보다 폭력적인 성향을 띌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인간이 저지르는 모든 폭력의 원인으로 게임을 지목하는 것은 억지라고 밖에는 할 수 없다.

폭력적인 콘텐츠를 담고 있는 영화나 드라마는 게임보다 더욱 먼저 등장해, 더욱 오랜 시간 동안 훨씬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폭력사태의 원인으로 영화와 드라마를 지목하지는 않는다.

이는 게임이 인간의 폭력 성향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폭력의 원인으로 게임을 지목하려면 이들 영화나 드라마에도 똑 같은 책임을 물어야 하며, 영화나 드라마에 책임을 넘기지 않으려면, 게임에게도 마찬가지의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영화를 보는 이들은 영화가 가상의 상황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때문에 각종 사건과 영화의 폭력 콘텐츠를 결부시키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다'라는 주장은 게임에도 똑같이 적용시켜야 하는 주장이라는 것처럼 말이다.

1975년의 '가요정화운동'은 그 정책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정책 시행의 억지성과 확대해석으로 당시의 젊은이들에게는 큰 비판을 받았으며,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는 부끄러운 기억으로 남았다. 과연, 이번 MBC 뉴스데스크의 '무리수 실험'은 26년 후의 우리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

MBC가 26년 후에도 자사의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이러한 사회 분위기를 소개하며 시청자들의 공감을 사기 위해 2011년 2월 13일의 뉴스데스크를 자료 영상으로 첨부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한준 게임동아 기자 (endoflife81@gamedong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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