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의 발전 때문에 고사양 게임들이 등장하는 것이 먼저일까, 아니면 고사양 게임 출시 때문에 PC 사양과 성능이 발전하는 것일까? 닭과 달걀 같은 이 관계 속에서 키보드나 마우스 등의 PC 주변기기는 ‘아웃 오브 관심’이 되곤 한다. 주변기기를 교체해도 PC 성능은 달라지지 않고, 고사양 게임이 더 잘 돌아가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종일관 바뀌는 유행과 기술에 주변기기들도 나름의 속도로 발을 맞추고 있다. 이 중 게임 전용 ‘게이밍 키보드’는 1,000억대의 시장가치를 지닌 국내 e스포츠 성장과 위상을 대변하는 지표 중 하나다.
e스포츠는 찰나와 촌각을 다투는 대전이다. 우리는 선수들이 키보드 조작 실수 방지를 위해 불필요한 키(윈도우 키 등)를 빼두거나, 손에 익은 키보드를 항상 가지고 다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들이 사용하는 게이밍 키보드는 프로게이머 만의 전유물로 인식되어 일반 사용자들의 접근도가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가격도 다소 비싸기도 하다). 그러나 레이저에서 출시한 블랙위도우 얼티메이트 게이밍 키보드(이하 블랙위도우)는 프로게이머와 그들을 동경하는 팬뿐만 아니라 일반 사용자의 관심도 끌만하다.
키보드 종류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IT강의실 (http://it.donga.com/openstudy/111/)을 참고하기 바란다.
첫인상, 묵직하고 굵직하다
블랙위도우의 첫인상은 육중한 느낌이다. 꼬임방지 케이블은 일반 키보드의 2배 이상 두꺼워 묵직한 이미지에 한몫더한다. 블랙위도우의 실제 무게는 1.5kg인데 이는 넷북보다 무거운 셈이다. 거기에 뒷면 모서리마다 미끄럼 방지 고무 패킹이 부착돼,책상에 올려두면 웬만해서 흔들리지 않는 뚝심도 있다. 블랙위도우는 무게만큼 두께도 일반 키보드에 비해 두껍다. 이에 따라 타점이 높아서 인위적인 손목 꺾임이 적은 편이라 할 수 있다. 키를 누르는데 적은 힘(50g)이 들어가는 기계식 키보드 장점으로 장시간의 문서 작업도 손목과 손가락이 피로감이 한결 덜하다. 블랙위도우를 쓰면서 각도조절 받침대를 펼 일이거의 없겠지만 받침대가 이렇게 가냘퍼 보이기도 쉽지 않다.
외관은 수려,관건은 관리
키보드는 오로지 손으로만 사용하는 주변 기기다. 하이그로시 투명 바디 특성상 덕지덕지 지문이 잘 묻는 편이다. 그나마 검정색이라 손떼가 탈 염려는 적긴 하다. 유지만 잘하면 오히려 하이그로시 바디와 무광 키캡은 블랙위도우의 외관을 더욱 돋보이게 할 것이다. 숫자패드 상단의 상태 표시등은 LED로 제작되어 군더더기를 덜어낸 느낌이다. 사이버틱한 글꼴로 새겨 있어 나름대로 세련미를 강조하고 있다.
본체 뒷면 USB포트와 오디오 단자가손 앞으로
블랙위도우의 두꺼운 케이블 선은 4개로 갈라진다. 일반적으로 컴퓨터 본체 뒷면에 있어 사용하기 곤란했던 UBS포트 1개와 오디오/마이크 단자를 손앞까지 끌고 온 것이다. 간혹 보급형 스피커에 달려 있는 이어폰/마이크 단자를 사용할 경우 음질이 손상되곤 하는데, 이는 컴퓨터 사운드가 스피커 내부의 기판을 거치면서 음원이 손실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블랙위도우의 오디오/마이크 단자, USB포트는 전송 데이터가 키보드를 거치지 않는 ‘패스쓰루(Pass-through)’ 형태이기에 음질 손상, 저하 현상은 거의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키보드 오른쪽 측면에 단자를 배치한 것으로 미루어볼 때 오른손잡이를배려한 것 같지만, 실제 사용하면 불편한 감이 없지 않다. USB 메모리 등을 꽂으면 툭 튀어나온 상태가 되거나 이어폰/헤드폰을 연결하면 케이블이 복잡하게 놓이게 되어 마우스 사용 시 은근히 거치적거렸다. 이왕이면 키보드의 왼쪽측면이나 상단은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든다.
게임은 창문 꼭 닫고, 새벽 몰래 할 때 별미
노트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Fn(특수 기능키)는 다른 키와 조합하여 사용한다. 블랙위도우는 Fn키를 활용하여 다양하고 편리한 기능을 빠르게 사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Fn키 조합으로 음소거외에도 음량조절이 가능하며, 멀티미디어 재생 제어 기능은 윈도우 미디어플레이어뿐만 아니라 멜론 플레이어, 다음 팟플레이어, 곰플레이어 등 주요 멀티미디어 재생 프로그램에서 잘 작동된다. 또한 게이밍 키보드답게 윈도우 키를 비활성화하는‘게이밍 모드’는게임 중 발생할 수 있을 ‘재난’을 사전에 방지해 준다. 키보드 바닥에서 은은히 발광하는 백라이트는LED 키를 누를 때마다 밝기가 5단계로 조절된다. 각 키마다LED가 하나씩 달려 있지만 각개 조절은 불가능하다. 한편 한글 자판 버전은 기본 상태(영문 자판 인쇄)에서 한글 자판을 덧붙인 것이라서, 반투명 처리된 영문 자판에만 파란불이 들어온다. 이외에 Pause/Break키에는 슬립모드 기능이 있는데, Fn키와 이 키를 동시에 누르면 PC가 대기 상태(최소 전력 모드)로 전환된다. 대기 상태에서는 마우스를 움직여야 다시 깨어난다.
Fn키 위치에 대한 한 뼘 고찰
Fn키는 키보드 좌측 Ctrl키와 Alt키 사이에 배치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오른손이 마우스를 놓지 않은 채로 신속한 작동을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블랙위도우는 오른쪽에 배치되어 있다. 이 같은 배치는 Fn키가 음소거, 음량조절, 멀티미디어 컨트롤보다 게이밍 모드로 쉽게 돌변하기 위한 배려일지 모른다. 또 F1~F8키처럼 게임 시 활용도가 높은 키에 게이밍 모드 키를 두지 않은 점도 높이 살만하다. 좌측에 세로로 배열된 매크로 키는 불편하지 않지만 적응시간이 필요하다. 적응만 되면 일반적으로 키보드 상단 모서리에 있는 경우에 비해 긴박한 게임 중에서도 빠른 입력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매크로 기능은 게임에서만?
게이밍 키보드답게 블랙위도우는 매크로 키가 별도로 존재한다. 좌측 세로로 배열된 매크로 키는 총 5개인데, 게이밍 키보드치고 많은 양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다. 관리프로그램을 설치하면, 키보드의 모든 키를 매크로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외에서 인기몰이를 하는 게임 대부분이 암기해야 할 단축키가 있거나, 숙지해야할 인터페이스가 있다. 그러나 상당 부분을 이미 게임 내 설정에서 지원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게이밍 키보드가 가지고 있는 하드웨어적인 매크로 기능은 개수가 많다고 해서 장점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블랙위도우는 기본 프로그램을 설치하지 않고도 Fn키를 누른 상태에서 우측 Alt키를 누르면 임의로 매크로를 기억할 수 있다. 숫자패드 위에 빨간 매크로 LED에 불이 들어오면 저장하고 싶은 키 값을 입력하고 다시 Fn키와 우측 Alt키를 누른다. 매크로 LED가 점등 상태가 되면, 그 때 매크로 키를 지정하면 된다. 게임 실행 중에 매크로를 바로 저장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저장된 매크로를 수정하거나 삭제하기 위해서는 결국 관리 프로그램을 써야 한다.
관리 프로그램에 와서야 블랙위도우의 매크로 기능을 본격적으로 쓸 수 있다. 메뉴는 한글이 지원돼 어렵지 않게 사용할 수 있고, 기존에 입력했던 매크로 저장과 삭제는 물론 프로파일을 불러오거나 내보낼 수 있다. 매크로 관리 탭에서는 단계별 행동을 지연시킬 수도 있고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명령어들도 존재한다.
특이한 점은 기본 명령과 추가 명령이 게임할 때보다 사무적인 용도에 적합하다는 것이다. 실행 중인 워드 프로그램에서 새 창을 열거나, 저장 후 인쇄 기능을 단축시킬 수 있다. 그러나 복사한 뒤 잘라 넣고 저장해서 인쇄하는 명령어는 게임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사무용으로 쓰기에도 2% 아쉬운 듯했다. 이미 ‘프로회사원’은 각종 워드 프로그램의 단축키를 머리 속에 매크로 했을 것이다.
매크로 입력 중일 때는 마무리를 짓고 확인버튼을 꼭 누르자. 매크로 설정 도중 다른 작업을 하면 한/영 변환이 되지 않거나 입력중인 매크로가 그대로 작동해서 불필요한 수고를 하기 때문이다.
드라이버 파일과 설명서는 전자식
요즘 대부분의 IT기기 드라이버 파일과 설명서는 제조사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제공된다. 단가를 줄이기 위한 업체의 노력이겠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드라이버 CD와 설명서 책자를 원하는 사용자가 많다. 특히 이들을 다운로드 받는 공식 홈페이지가 외국어로 되어 있다면 그 열망은 커져간다. 레이저의 공식 홈페이지는 기본 언어를 한국어로 설정해도 정작 다운로드 센터에서 영어로 전환된다. 설명서는 친절하게도 전용 프로그램 사용법을 이미지로 보여주고 있지만, 만약 이 마저 없었더라면 순도 100% 영문 설명서는 열어 볼 엄두도 나지 않았을 것이다. 관리 프로그램이 한글이라는 점이 다행스럽다.
게이밍과 기계식의 하이브리드 키보드
서두에 말한 대로, 블랙위도우는 일반 키보드에 비해 상당히 비싼 키보드다. 보편적으로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키보드는 부수적인 주변기기라는 선입견 때문에 구매욕은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 뒤에 자리잡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세상 모든 비싼 제품에는 비싼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블랙위도우도 그런 면에서 보면, 게이밍 키보드와 기계식 키보드의 장점을 적절히 조합한 몇 안 되는 프리미엄 키보드라 할 수 있다. 넘을 수 없는 벽에서 '넘보고 사보고 싶은' 키보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우선 게이밍 키보드라는 타이틀에 너무 얽매이지 말자. 편리한 매크로 기능과 뛰어난 반응속도, 세련된 디자인은 프로게이머나 게임 매니아가 아닌 일반 사용자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이니 말이다. 또 기계식 키보드는 키보드 매니아만의 전유물이라는 생각도 버리자. 찰칵거리는 타이핑 소리와 튼튼한 내구성, 손목 피로도를 덜어주는 구조는 구매를 망설이는 자에게 지름신을 내리기 충분하다.
글 / IT동아 박준구 (zzizizic@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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