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야 나, 진짜 나 맞다니까? 허허 참. 아무리 이야기해도 안믿네.”
진가쟁주(眞假爭主). 집주인이 버린 손톱을 먹은 쥐가 주인으로 둔갑해 진짜 행세를 한다는 설화. 누가 진짜고, 누가 가짜인지 도저히 분간할 수 없다. 결국 원님의 판결에 따라 가짜는 남고, 진짜는 집, 가족, 그리고 자신까지 모두 빼앗긴 채 쫓겨난다.
진가쟁주 설화가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다. 바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세상에서 유명 인사를 사칭한 가짜 트위터, 가짜 페이스북에 많은 사람들이 속아넘어가고, 다행히 속지 않은 사람들은 진짜 트위터와 진짜 페이스북까지 가짜로 의심한다. 간단한 가입과정 때문에 진짜와 가짜를 구별해내기가 매우 힘들기에 더욱 그러하다.
교묘한 속임수로 진짜 행세
가장 큰 피해자는 ‘진짜 집주인’들이다. 지난 해 애플 CEO 스티브 잡스를 사칭한 트위터 계정(정확히 말하면 패러디 계정)인 ‘ceoSteveJobs’는 ‘아이폰4를 리콜해야 한다’는 트윗을 올려 많은 사람들을 공황상태에 빠트렸다. 더욱이 일부 국내외 언론들이 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오보를 내 혼란을 가중시켰다. 이후에도 해당 트위터 계정은 “아이폰으로 안드로이드라고 치면 치질이라는 말로 자동 수정된다(typing Android will autocorrect to hemorrhoid)”, “리트윗하지 마세요, 불법복제니까요(Help fight digital piracy. Don’t retweet)” 등의 어록을 내놓으며 애플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이에 애플은 트위터에 패러디 계정 사용을 정지시켜달라고 요청했고, 트위터는 해당 계정이 패러디했다는 사실을 더 분명하게 밝힐 것을 권고했다. 현재 이 계정은 사용정지 상태다.
삼성 이건희 회장을 사칭한 가짜 페이스북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 페이스북은 이 회장의 사진을 걸어놓고 진짜 행세를 하다가 삼성측에 적발됐다. 삼성그룹은 “이건희 회장은 현재 페이스북을 하지 않고 있다”며 가짜 페이스북에 현혹되지 말 것을 당부했다
트위터가 기업 마케팅의 대세로 떠오르면서, 기업 트위터를 사칭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올해 초 모토로라의 공식 트위터가 갑자기 폐쇄되면서, 소통 창구를 잃은 소비자들이 집단으로 항의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하지만 알고 보니 모토로라의 공식 트위터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게 밝혀졌다. 누군가가 모토로라를 사칭해 공식 트위터 행세를 해왔던 것이다. 이 트위터 계정은 ‘Kr_Motolora’로, 모토로라의 공식 영문표기인 ‘Motorola’와 다르다.
사칭논란에 멀쩡한 사람도 사기꾼 취급
가짜 SNS가 범람하면서 죄 없는 사람들도 사기꾼으로 매도 당하는 경우도 생긴다. 미국 인디애나주의 중년 변호사 마크 주커버그(Mark S. Zukerberg)가 바로 그 경우다.
주커버그는 공교롭게도 페이스북의 창시자와 완전히 같은 이름(미들네임 제외)을 가졌다. 2년 전 페이스북은 그가 유명인을 사칭한다고 판단하고 계정 개설을 거부했고, 그는 할 수 없이 운전면허증, 출생신고서 등의 복잡한 증빙 서류를 제출하고 나서야 비로소 페이스북을 이용할 수 있었다. 이 과정은 무려 4개월이나 걸렸다.
이후 주커버그는 페이스북 창시자를 사칭하거나, 오해할만한 글을 남기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처럼 가족 혹은 친구들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데 페이스북을 이용했을 뿐이었다. 물론 그를 페이스북 창시자로 착각해 메일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긴 했지만, 스쳐 지나가는 해프닝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계정은 지난 5월 9일(북미 기준) 삭제됐다. 페이스북 담당자 중 한 명으로부터 또 다시 페이스북 창시자를 사칭했다는 오해를 받은 것이었다. 당황한 그는 페이스북과 몇 차례의 연결을 시도했고, 페이스북은 자사의 실수를 사과하고 계정을 복구시켰다.
주커버그는 항의의 뜻을 담아 ‘나는 마크 주커버그다(http://iammarkzukerberg.com)’라는 홈페이지를 개설했다. 이 곳에서 그는 “나는 수십 년간 법조 분야에서 내 이름을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며 “2004년 이전에 인터넷으로 내 이름을 검색하면 내 이름이 나왔지만, 이제는 더 이상 나를 찾을 수 없게 됐다. 내 이름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다”라고 한탄했다.
주커버그 이외에도, 수많은 연예인들이 가짜 트위터나 페이스북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다른 계정은 다 가짜, 내가 바로 진짜”라고 해명해도, “당신도 가짜 아니냐”는 의심 어린 눈초리가 돌아오니 팔짝 뛸 노릇이다. 화장하지 않은 맨얼굴이나 지극히 개인적인 모습을 담은 ‘인증샷’이 따라 붙어야 비로소 의심이 풀린다.
뚜렷한 해결책이 없는 것이 제일 문제
가짜 트위터와 가짜 페이스북은 점점 더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이를 막을 뾰족한 해결책은 없다. 더욱이 트위터와 페이스북이 미국 기업이라는 이유로 국내에서는 거의 손을 놓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트위터는 명의 도용을 막기 위해 프로필 옆에 인증 마크를 부착해주는 ‘계정 인증’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계정 인증 요청을 받고 있지 않다. 공식 홈페이지에 공식 트위터 주소를 기재하라는 조언이 고작이다.
날이 갈수록 사칭 수법은 대담해지고 교묘해질 것이다. 막아 주는 사람이 없다면, 스스로가 자신을 지킬 수밖에 없다. 온 힘을 다해 내가 진짜 나라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글 / IT동아 서동민(cromdandy@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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