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립싱크 금지법’ 국회 발의… 찬반 공방도 가열

입력 2011-05-25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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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 원하는 관객 속이는 것”
“무조건 막는 건 시대 뒤떨어져”

레이디 가가 “난 립싱크 안 해요” 미국 팝스타 레이디 가가는 2월 말 미국 뉴욕 매디슨스퀘어가든에서 열린 ‘몬스터 콘서트’에서 격렬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과 TV로 콘서트를 보게 될 사람들을 위해 립싱크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2009년 서울 강남구 청담동 클럽 앤서에서 열린 쇼케이스에서 열창하고 있는 레이디 가가. 유니버설뮤직코리아 제공

“립싱크는 관객을 속이는 행위다.”

“립싱크 금지는 시대착오적인 과잉 규제다.”

최근 이명수 자유선진당 의원이 이른바 ‘립싱크 금지법’을 발의하면서 립싱크를 둘러싼 공방이 달아올랐다. 립싱크란 다른 사람이 부른 노래를 자기가 부르는 것처럼 연기하거나, 미리 녹음해둔 자기 노래를 틀어놓고 입만 벙긋거리는 것을 뜻한다.

이 의원이 제안한 립싱크 금지법은 △대중 가수와 성악가들, 뮤지컬 가수들은 상업 공연에서 립싱크를 할 수 없고 △음향 설비나 가수의 건강에 문제가 생겨 립싱크가 불가피할 경우 이를 사전에 알려야 하며 △이를 어기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각오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 “립싱크는 사기다”

립싱크 금지법은 립싱크로 물의를 빚는 가수가 끊이지 않는 데다 ‘나는 가수다’ ‘위대한 탄생’ ‘슈퍼스타K’ 등 오디션 프로그램 열풍으로 가창력 있는 가수가 각광받는 분위기 속에서 발의됐다.

올해 초 뮤지컬 ‘미션’은 립싱크 때문에 국내 처음으로 리콜 공연 사태까지 갔다. 오케스트라 없이 미리 녹음된 반주에 맞춰 공연이 진행된 데다 일부 장면에서는 가수들이 립싱크를 해 빈축을 산 것. 2009년에는 미국 가수 머라이어 캐리가 라이브 음악 프로인 KBS ‘스케치북’에 나와 립싱크해 비난을 받았다. 그는 2002년에도 라이브 프로인 MBC ‘수요예술무대’에서 립싱크를 하려다 출연을 거부당했다.

이 의원 측은 “관객은 라이브 연주를 기대하며 공연장을 찾는다. 립싱크를 하는 것은 사기 행위다”라고 주장했다. 임진모 대중문화평론가는 “녹음된 음원과 다른 음악을 들려주는 게 라이브의 묘미인데 가수가 입만 벙긋거린다면 가수가 아니라 연기자”라며 “음향 시설과 무대 환경이 무리가 없다는 전제 아래선 가수는 절대 립싱크를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 “립싱크 금지는 과잉 규제”

다른 사람의 노래를 제 노래처럼 립싱크하는 것이 문제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실제로 1988년 데뷔한 미국 듀오 ‘밀리 바닐리’는 다른 사람의 노래를 립싱크한 것으로 드러나 활동을 중단해야 했다. 1994년 한국에서도 그룹 ‘마로니에’의 인기곡 ‘칵테일 사랑’이 이전 멤버가 부른 노래에 여성 멤버가 립싱크를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파문을 일으켰다.

그러나 자기 노래를 립싱크하는 것을 문제 삼는 것은 과잉 규제라는 반론이 제기된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는 립싱크 금지법에 대해 “보컬에 오토튠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화되는 등 일렉트로닉 장르가 작법으로 받아들여지는 요즘의 가요계와는 맞지 않는 시대착오적인 법”이라고 비판했다. 라이브만을 강조하는 것은 오히려 완성도 높은 사운드를 즐기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가수 이승철은 “라이브 환경이 되지 않는 방송에선 립싱크만 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전국 투어 등에서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방송에서 라이브를 하다 성대 결절이 생기는 위험을 겪고 싶지 않다”고 설명했다.


○ 요즘은 립싱크 대신 MR 논란

립싱크 논쟁은 1990년대 아이돌 그룹이 줄줄이 등장하면서 본격화했다. 외모와 춤을 내세우며 노래는 립싱크로 때우는 아이돌 가수들이 비난받자 KBS ‘가요톱10’은 1997년 방송 화면에 립싱크 여부를 표시하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립싱크를 안 한다’는 점을 내세우는 가수들도 등장했다. 4인조 ‘빅마마’는 2003년 데뷔하면서 늘씬한 여성들이 무대에서 노래하는데 실제로 노래하는 사람은 무대 뒤의 빅마마 멤버들이라는 줄거리의 뮤직비디오로 화제를 모았다. ‘멤버 모두 라이브가 가능하다’고 광고하는 아이돌 그룹도 생겨났다.

최근에는 미리 녹음해둔 반주와 코러스를 틀어놓고 노래하는 MR(Music Recorded)를 두고 가창력 논란이 제기된다. 누리꾼들이 코러스와 반주를 제거한 ‘MR 제거본’을 인터넷에 올려 가수들의 가창력을 검증하는 것이다.

한 음반기획사 관계자는 “해외에서는 가수의 음악성을 가창력이 아니라 앨범 전체의 사운드로 판단한다. 립싱크 논란이 다시 일어나는 것은 한국 사람들이 여전히 가수를 노래하는 기술자로 여긴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립싱크 해외선 어떻게 보나▼


올림픽 개막식 립싱크 소동 中, 세계 유일 금지규정 둬

미국에서는 뮤직비디오가 보편화하면서 뮤비에서처럼 화려한 퍼포먼스를 원하는 관객들을 위해 라이브를 포기하는 경우가 생겨났다. 마이클 잭슨, 마돈나, 재닛 잭슨 등 댄스가수들이 곡 전체 혹은 일부를 립싱크하게 된 것이다.

일본도 라이브만 강요하지는 않는다. 곡의 전반부는 라이브로, 후반부는 립싱크로 소화하거나 곡 전체 중 정확하게 부르기 힘든 부분만 립싱크로 처리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 나라에서도 립싱크를 무조건 용인하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은 아니다. 엘턴 존은 올해 초 영국 인기그룹 ‘걸스 얼라우드’와 ‘더 새터데이스’에 대해 “립싱크하는 가수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질 수 없다. 모든 립싱크 뮤지션을 퇴출시켜야 한다”고 비판했다.

2009년 미국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호주 콘서트에서 노래의 대부분을 립싱크하자 관객들이 퇴장하고 환불을 요구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스피어스 측은 “퍼포먼스를 위해 일부 곡을 립싱크한다는 사실을 미리 알렸다”고 밝혔지만 이를 계기로 호주에서는 가수들이 립싱크를 할 경우 사전에 알리도록 의무화하는 법을 도입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현재까지 립싱크 금지 규정을 둔 나라는 중국이 유일하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서 축가를 부른 소녀(사진)가 실은 다른 아이의 노래를 립싱크한 것으로 드러나자 조례를 제정해 상업 공연에서의 립싱크를 금지하고 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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