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덕환 "시즌2 들어가기 전 제작진과 딜 했다" ①에서 이어집니다.
▶"데뷔 20년, 이제는 빼도 박도 못 하겠다"
-벌써 데뷔한지 20년이 지났습니다. 소감은?
"아하하. 웃기죠. 말이 데뷔 20년이지 그런 말 하기엔 나이가 어려서 부끄럽기도 하고요. 감회가 새롭긴 해요. 되게 오랫동안 이 길을 걸어왔구나. 이제는 빼도박도 못하네. 이런 느낌? 남들보다 조금 일찍 시작했으니 본보기가 돼야겠다는 생각은 들어요."
류덕환은 "3,4살 무렵 사람들이 나를 만지려고 손을 내밀었는데 목이 터질 정도로 울었던 것"을 생애 첫 기억으로 꼽았다. 이 기억은 연기를 시작한 계기로 이어졌다. 숫기가 너무 없었던 아들을 걱정한 어머니가 집 근처 연극단에 그를 데려간 것.
"어머니가 극장에 저를 놓고 왔는데 제가 진짜 엄청 울었데요. 2시간만 믿고 맡겨달라는 단장님 말씀에 저를 놓고 가셨는데 2시간 후에 와보니 제가 누나 형들과 잘 놀고 있었데요."
-연기는 누구한테 배웠나요?
"가장 좋은 선생님은 어머니죠. 제대로 혼내줄 수 있는 선생님이니까요. 아역 때 가장 큰 가르침을 줬던 사람은 같이 연기했던 아역들이었어요. 아주 좋은 촉진제였어요."
그은 "이 세상에는 굉장히 많은 배우가 있지만 그에 버금가게 청소년 아역배우들도 많다"며 "이들이 성인 배우들보다 연기는 못할지언정 열정은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아역 배우들은 아직 이루지 못했고 이뤄야 할 게 많기 때문에 열정이 정말 커요. 그 열정을 끝까지 놓치지 않으면 성인 배우가 될 수 있고 어느 정도 유명해졌다고 되바라진다면 부모님이 시키니 어쩔 수 없이 연기하게 되는 거죠."
-덕환 씨 또한 부모님의 의지로 연기를 시작했습니다. 본인의 의지로 바뀐 순간이 있나요?
"영화 '묻지마 패밀리'를 찍고 나서요. 그 때 개인적으론 영화가 잘 안됐던 시기에요. '성철스님' 70% 찍었을 무렵에 갑자기 성철스님 따님이 나타나서 고소하는 바람에 일대기랑 다르다고 해서 엎어졌고 '산전수전'도 잘 안됐고요. 신동엽 씨랑 '학교전설' 찍었는데 신동엽 씨가 대마초 사건에 연루돼서 개봉 못했고요. 그래서 나는 정말 영화랑 안 맞나보다 했는데 '묻지마 패밀리' 선도부 역할로 캐스팅됐어요. 찍고 나서 영화관에서 영화를 봤는데 마지막에 엔딩 크레딧에 제 이름이 올라가는데…. 와… . 이 느낌 뭔지 모르겠는데 한 번만 더 느껴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 때 어머니가 시켜서 연기를 한 게 아니라 이제는 내가 진짜 원하는 구나. 나를 위해서 하고 있구나 알았어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던 순간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그의 팔에 소름이 돋았다. 그는 팔을 쓸어내리며 "아직까지 그때만큼의 전율은 없었다. 다시 한 번 느껴보고 싶어서 계속 노력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고의 칭찬? 도움이 되는 배우"
-20년째 연기를 하고 있어요. 일종의 직업병도 있나요?
"파악하고 기억하는 거요. 사람들 습관 중에 안좋은 버릇들은 꼭 따라해요. 잊지 않기 위해 따라하는 거예요. 연기하다 언제 써먹을 줄 모르니까요. 연기가 어렵다고들 하지만 한 시간만 걸어다니면서 사람들 관찰해보세요. 아이템이 쏟아져요."
사람들 관찰하려면 "밤 10시 이후 천호동 건대 주변이 최고"라던 그가 "나는 인간쓰레기라도 생각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몇 해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첫째 날은 엄청 울었고 둘째 날은 지쳐있었고 셋째날 웃음이 났어요. 정말 끝까지 가면 웃음 밖에 안 나와요. 20년간 살아오면서 본 아버지 얼굴보다 3일간 아버지 영정사진 본 시간이 더 긴 것 같고 아버지 흰머리가 이렇게 많았나, 가르마가 이렇게 있었구나 싶고…. 그런 나 자신을 보면서 스스로 '이 감정 잊지 말아야지. 내가 직접 느낀 거니까 잊지 말아야지' 하고 있는 거예요. '배우병'인 거예요. 굳이 기억하지 않아도 될 것까지 기억하는 것. 기억하면 나만 힘든건데 마음 한 구석에 장치처럼 가지고 있는 거예요. 배우는 사람을 표현하는 사람이니까요."
-이전 인터뷰들을 보니 유인촌 선생님 덕분에 '전원일기' 순길이 역을 맡을 수 있었고 장진 감독님을 만난 것은 천운, 신하균 선배님 덕분에 키에 대한 콤플렉스를 벗어났다고 했더군요. 언제나 사람 중심으로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가끔 주위에서 혹은 이제 연기를 시작하는 친구들이 '너는 자리도 잡았고 잘 되고 있잖아'라고 이야기해요. 그럼 저는 '난 아직도 너희들이 노력하는 만큼 똑같이 노력하고 있고 너희들이 경험하지 못한 아픔을 내가 겪고 있어. 어떻게 보면 너희들보다 내가 더 어려울 수 있어. 다만 내가 너희들보다 낫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건 내 사람들 밖에 없다'고 이야기해요. 그만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저에게 가장 중요해요. 신기하게도 저는 좋은 사람들을 정말 많이 만났어요. 사람운이 좋은 것 같아요."
-배우로써 어떤 칭찬듣고 싶나요?
"도움이 되는 배우라는 칭찬이요. 아역 출신 배우들이나 연기를 꿈꾸고 있는 분들에게 힘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내가 단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이겨내서 좋은 모습 보여준 배우라고 인식이 된다면 그들도 저 배우는 저렇게 이겨냈으니 나도 이겨낼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면 저는 정말 성공한 거라고 생각해요."
2시간이 넘게 이어진 인터뷰에서 그는 단 한 순간도 '나 연기 좀 해요' 잘난 척하거나 '나 연예인이야' 으스대지 않았다. 대본을 쉽게 외우기 위해 손동작을 넣는다는 그는 인터뷰 내내 답변에 맞는 손동작으로 기자의 이해를 도왔다. 인터뷰가 끝날 즈음 그는 연기가 삶인 배우이자 삶이 연기인 사람으로 보였다. 마지막으로 '인간 류덕환'에 대해 물었다.
"술 좋아하는 사람?"이라며 즉답을 피한 그는 장난스레 웃으며 "'인간 류덕환'을 궁금해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간적인 모습을 굳이 보여주고 싶지 않아요. 그걸 궁금해하기 때문에 제 작품을 궁금해 할 수 있는 것 같거든요. 원래 내 모습을 계속 노출시키면 배우로서의 메리트가 없어질 것 같아요. 작품에서도 조금은 낯설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인간적인 부분이 많이 노출되면 관객들은 작품을 볼 때도 인간 류덕환을 걸러서 볼테니까요. 작품이 좋았다면 인간 류덕환을 궁금해 하시겠죠? 아주 죄송하지만, 변태같지만 (웃음) 인간 류덕환을 궁금해 하시는 걸 뒤에 숨어서 보는 게 전 정말 좋아요."
김아연 기자 aykim@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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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벌거벗은 임금님\'으로 처음 연기를 시작한 류덕환은 어느새 데뷔 20년차 \'중견\'배우가 됐다. 데뷔 20년 소감을 묻자 "되게 오랫동안 이 길을 걸어왔구나 싶다. 이제는 빼도 박도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웃었다. 사진=장승윤기자 tomato99@donga.com
▶"데뷔 20년, 이제는 빼도 박도 못 하겠다"
-벌써 데뷔한지 20년이 지났습니다. 소감은?
"아하하. 웃기죠. 말이 데뷔 20년이지 그런 말 하기엔 나이가 어려서 부끄럽기도 하고요. 감회가 새롭긴 해요. 되게 오랫동안 이 길을 걸어왔구나. 이제는 빼도박도 못하네. 이런 느낌? 남들보다 조금 일찍 시작했으니 본보기가 돼야겠다는 생각은 들어요."
류덕환은 "3,4살 무렵 사람들이 나를 만지려고 손을 내밀었는데 목이 터질 정도로 울었던 것"을 생애 첫 기억으로 꼽았다. 이 기억은 연기를 시작한 계기로 이어졌다. 숫기가 너무 없었던 아들을 걱정한 어머니가 집 근처 연극단에 그를 데려간 것.
"어머니가 극장에 저를 놓고 왔는데 제가 진짜 엄청 울었데요. 2시간만 믿고 맡겨달라는 단장님 말씀에 저를 놓고 가셨는데 2시간 후에 와보니 제가 누나 형들과 잘 놀고 있었데요."
-연기는 누구한테 배웠나요?
"가장 좋은 선생님은 어머니죠. 제대로 혼내줄 수 있는 선생님이니까요. 아역 때 가장 큰 가르침을 줬던 사람은 같이 연기했던 아역들이었어요. 아주 좋은 촉진제였어요."
그은 "이 세상에는 굉장히 많은 배우가 있지만 그에 버금가게 청소년 아역배우들도 많다"며 "이들이 성인 배우들보다 연기는 못할지언정 열정은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아역 배우들은 아직 이루지 못했고 이뤄야 할 게 많기 때문에 열정이 정말 커요. 그 열정을 끝까지 놓치지 않으면 성인 배우가 될 수 있고 어느 정도 유명해졌다고 되바라진다면 부모님이 시키니 어쩔 수 없이 연기하게 되는 거죠."
-덕환 씨 또한 부모님의 의지로 연기를 시작했습니다. 본인의 의지로 바뀐 순간이 있나요?
"영화 '묻지마 패밀리'를 찍고 나서요. 그 때 개인적으론 영화가 잘 안됐던 시기에요. '성철스님' 70% 찍었을 무렵에 갑자기 성철스님 따님이 나타나서 고소하는 바람에 일대기랑 다르다고 해서 엎어졌고 '산전수전'도 잘 안됐고요. 신동엽 씨랑 '학교전설' 찍었는데 신동엽 씨가 대마초 사건에 연루돼서 개봉 못했고요. 그래서 나는 정말 영화랑 안 맞나보다 했는데 '묻지마 패밀리' 선도부 역할로 캐스팅됐어요. 찍고 나서 영화관에서 영화를 봤는데 마지막에 엔딩 크레딧에 제 이름이 올라가는데…. 와… . 이 느낌 뭔지 모르겠는데 한 번만 더 느껴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 때 어머니가 시켜서 연기를 한 게 아니라 이제는 내가 진짜 원하는 구나. 나를 위해서 하고 있구나 알았어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던 순간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그의 팔에 소름이 돋았다. 그는 팔을 쓸어내리며 "아직까지 그때만큼의 전율은 없었다. 다시 한 번 느껴보고 싶어서 계속 노력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배우 류덕환 사진=장승윤기자 tomato99@donga.com
▶"최고의 칭찬? 도움이 되는 배우"
-20년째 연기를 하고 있어요. 일종의 직업병도 있나요?
"파악하고 기억하는 거요. 사람들 습관 중에 안좋은 버릇들은 꼭 따라해요. 잊지 않기 위해 따라하는 거예요. 연기하다 언제 써먹을 줄 모르니까요. 연기가 어렵다고들 하지만 한 시간만 걸어다니면서 사람들 관찰해보세요. 아이템이 쏟아져요."
사람들 관찰하려면 "밤 10시 이후 천호동 건대 주변이 최고"라던 그가 "나는 인간쓰레기라도 생각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몇 해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첫째 날은 엄청 울었고 둘째 날은 지쳐있었고 셋째날 웃음이 났어요. 정말 끝까지 가면 웃음 밖에 안 나와요. 20년간 살아오면서 본 아버지 얼굴보다 3일간 아버지 영정사진 본 시간이 더 긴 것 같고 아버지 흰머리가 이렇게 많았나, 가르마가 이렇게 있었구나 싶고…. 그런 나 자신을 보면서 스스로 '이 감정 잊지 말아야지. 내가 직접 느낀 거니까 잊지 말아야지' 하고 있는 거예요. '배우병'인 거예요. 굳이 기억하지 않아도 될 것까지 기억하는 것. 기억하면 나만 힘든건데 마음 한 구석에 장치처럼 가지고 있는 거예요. 배우는 사람을 표현하는 사람이니까요."
-이전 인터뷰들을 보니 유인촌 선생님 덕분에 '전원일기' 순길이 역을 맡을 수 있었고 장진 감독님을 만난 것은 천운, 신하균 선배님 덕분에 키에 대한 콤플렉스를 벗어났다고 했더군요. 언제나 사람 중심으로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가끔 주위에서 혹은 이제 연기를 시작하는 친구들이 '너는 자리도 잡았고 잘 되고 있잖아'라고 이야기해요. 그럼 저는 '난 아직도 너희들이 노력하는 만큼 똑같이 노력하고 있고 너희들이 경험하지 못한 아픔을 내가 겪고 있어. 어떻게 보면 너희들보다 내가 더 어려울 수 있어. 다만 내가 너희들보다 낫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건 내 사람들 밖에 없다'고 이야기해요. 그만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저에게 가장 중요해요. 신기하게도 저는 좋은 사람들을 정말 많이 만났어요. 사람운이 좋은 것 같아요."
-배우로써 어떤 칭찬듣고 싶나요?
"도움이 되는 배우라는 칭찬이요. 아역 출신 배우들이나 연기를 꿈꾸고 있는 분들에게 힘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내가 단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이겨내서 좋은 모습 보여준 배우라고 인식이 된다면 그들도 저 배우는 저렇게 이겨냈으니 나도 이겨낼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면 저는 정말 성공한 거라고 생각해요."
2시간이 넘게 이어진 인터뷰에서 그는 단 한 순간도 '나 연기 좀 해요' 잘난 척하거나 '나 연예인이야' 으스대지 않았다. 대본을 쉽게 외우기 위해 손동작을 넣는다는 그는 인터뷰 내내 답변에 맞는 손동작으로 기자의 이해를 도왔다. 인터뷰가 끝날 즈음 그는 연기가 삶인 배우이자 삶이 연기인 사람으로 보였다. 마지막으로 '인간 류덕환'에 대해 물었다.
"술 좋아하는 사람?"이라며 즉답을 피한 그는 장난스레 웃으며 "'인간 류덕환'을 궁금해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간적인 모습을 굳이 보여주고 싶지 않아요. 그걸 궁금해하기 때문에 제 작품을 궁금해 할 수 있는 것 같거든요. 원래 내 모습을 계속 노출시키면 배우로서의 메리트가 없어질 것 같아요. 작품에서도 조금은 낯설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인간적인 부분이 많이 노출되면 관객들은 작품을 볼 때도 인간 류덕환을 걸러서 볼테니까요. 작품이 좋았다면 인간 류덕환을 궁금해 하시겠죠? 아주 죄송하지만, 변태같지만 (웃음) 인간 류덕환을 궁금해 하시는 걸 뒤에 숨어서 보는 게 전 정말 좋아요."
김아연 기자 aykim@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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