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미. 사진출처|이은미 미니홈피
제보를 듣고 이은미 씨의 미니홈피를 방문해 보니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역력했다. 메인 화면에는 홈피 주인의 죽음을 알리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 씨 동생이 적은 것이다.
방명록과 일촌평에는 고인을 애도하는 글이 올라와 있었다. 이 씨와 같은 소속사 밥을 먹었던 동료는 자신의 블로그에 추모 글을 올려놓았다.
이를 토대로 볼 때 이 씨가 죽은 것은 사실인 듯했으나, 그가 애인의 손에 처참하게 죽었다는 말은 믿기 어려웠다. 경기도 시흥경찰서와 관계자 취재에 들어갔다.
그렇게 해서 이 씨 사망 단독 보도(동아닷컴 22일자)가 나온 것이다. 경찰에 따르면 조모 씨(28)는 지난 19일 새벽 2시15분경 시흥시 한 길가에서 귀가하던 이 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경찰과 이 씨 지인에 따르면 시신은 참혹했다. 목, 등, 허리 등이 수십 차례 흉기로 난도질 된 채로 발견됐다.
일각에서는 이 씨가 65차례나 칼에 찔려 사망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경찰은 “망자를 두고 정확하게 찔린 숫자를 말하기 곤란하다. 수십 번은 맞다”라며 “결정적인 사망 이유는 부검 결과가 나와 봐야 알 수 있다”고 말을 아꼈다.
조 씨는 일부 부풀어진 소문과 달리 스토커나 정신질환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조 씨에게 스토커 기질은 없다”면서도 “전과기록이 있는지는 알려줄 수 없다”고 노코멘트 했다.
또한, 조 씨는 중고 자동차 매매업자라는 번듯한 직업도 있다. 경찰에 따르면 두 사람은 지난해 10월 지인의 소개로 만났으며, 12월부터 정식으로 교제했다.
한창 행복할 시기에 조 씨는 왜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을까. 그가 경찰에 말한 이 씨 살해 이유는 이 씨의 ‘이별 통보’ 때문이다. 자신은 이 씨와 결혼까지 생각할 만큼 진지했는데, 이 씨가 헤어지자고 해서 격분해 죽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에 따르면 두 사람이 정식으로 결혼을 약속한 사이는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결혼 생각은 조 씨 혼자만 했던 것이다.
경찰은 현장에서 제보와 살해 도구로 쓰인 과도(果刀) 등 조 씨가 남긴 증거를 토대로 조사를 시작했으며, 사건이 발생한지 하루 만에 서해안 고속도로 화성휴게소에서 조 씨를 검거했다.
현재 경찰은 조 씨의 살인이 우발적인 범행인지, 아니면 계획된 범행인지 수사 중이다. △조 씨가 미리 칼을 품고 이 씨를 만났고, △숨을 거둘 때까지 수십 차례 칼을 휘두른 것을 봤을 때 계획 살인 쪽에 무게가 실린다.
경찰은 “조 씨를 집중 추궁하고 있으나, 조 씨가 ‘우발적인 살인’이라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유치장에 수감된 조 씨는 자살 시도 같은 특이 사항을 보이지 않고 있다. 경찰은 “조 씨가 많이 후회하고 반성하고 있다”며 말을 아꼈다. 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이번 사건으로 데이트 폭력 문제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도 높아졌다. ‘데이트 폭력’이란 데이트 관계에서 일어나는 신체적, 정신적, 언어적 폭력을 의미한다. ‘데이트 폭력’이 심해지면 치정살인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사건을 담당한 형사는 “이 씨 사건처럼 데이트 폭력은 가해자가 자기감정을 조절하지 못해서 생기는 것 같다”며 현장에서 느낀 점을 전했다.
그는 “남의 생각이야 어떻든 나는 정말 저 사람을 사랑하는데 그 사람이 헤어지자고 하니, 자존심 상하고 감정 격해져 살인까지 한다”면서 “특히 자기 억제력이 낮은 사람이 술까지 마시면 이성적 판단도 둔해지고 충동적으로 변해서 저렇게 된다. 이런 사건이 흔한 건 아닌데 볼 때마다 답답하다”라고 안타까운 듯 말했다.
동아닷컴 홍수민 기자 sumin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