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명문 극단 ‘시키(사계)’에 입단해 2006년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크리스틴으로 데뷔.
이후 ‘위키드’, ‘미녀와 야수’, ‘지저스크라이스트 슈퍼스타’ 등 주옥같은 작품에 여주인공으로 출연.
2009년 한국으로 돌아와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에서 크리스틴 역으로 한국무대 데뷔.
2011년 ‘몬테크리스토’의 ‘메르세데스’에 이어 ‘지킬앤하이드’에서 ‘엠마’ 역으로 열연 중.
뮤지컬 배우 최현주에 대한 간략한 이력이다. 간략하지만 꽤 드라마적인 구석이 있어 한눈에 행적을 읽을 수 있다.
최현주씨와 ‘양기자의 인증샷’ 인터뷰를 한다고 하니 주변에서 꽤 부러워했다. 재미있는 점은 팬들뿐만 아니라 최씨와 함께 작업을 했던 스태프들 역시 상당수 포함되었다는 것.
최씨는 스태프들에게도 인기가 높았던 모양이다.
물론 스태프들에게 존중받는다는 것은 노래와 연기력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최현주씨와의 인터뷰는 그가 출연 중인 뮤지컬 ‘지킬앤하이드’의 공연장인 서울 잠실동 샤롯데극장 건물 1층의 카페에서 진행됐다.
커피를 주문하고 잠시 기다리고 있자니, 최현주씨가 수줍게 웃으며 나타났다.
하얀색 바지에 스트라이프 셔츠를 걸친 수수한 차림이지만, 눈부신 자태.
사람들이 말하는 ‘강함을 제압하는 부드러운 최현주’의 아름다움이 첫눈에 감지된다.
‘지킬앤하이드’는 이미 세 번이나 보았지만, 최씨를 만나기 위해 그가 출연하는 공연을 다시 한 번 보아 두었다.
“공연을 보았다”라고 하니 최씨가 싱긋 웃었다.
최씨가 맡고 있는 ‘엠마’는 조정은, 김소현도 있다. 서로 닮은 듯하면서도 분명한 차이가 있는 ‘엠마’이다.
“소현 언니가 모성애가 강한 엠마의 느낌이라면 정은 언니는 지적이죠. 전 언니들보다 뒤늦게 합류한 만큼 어떻게 캐릭터를 잡을까 고민이 많았어요. 연습기간도 길지 않았고.”
최씨는 “어떻게 보면 ‘엠마’라는 역이 밋밋할 수도 있는데 앞선 ‘엠마’들이 개성이 뚜렷해 오히려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제가 원래 공부를 해서 분석을 잘 하는 애도 아니고, 연기를 탁월하게 잘 하는 쪽도 아니라서(하하!). 무책임한 발언이 될 수도 있지만 그냥 저랑 닮은 쪽에서부터 시작하고 있어요. 완벽한 연기자는 다 잡고 시작하지만, 전 앞으로 진화가 될 수 있는 …(하하하!)”
- 2009년에 귀국한 이후 계속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일본 ‘시키’에서 이러다 얼굴 잊어버리는 것 아닌가요.
“‘오페라의 유령’이 연습기간까지 치면 거의 2년을 했죠. 중간에 일본을 다녀오긴 했어요. ‘사운드오브뮤직’ 개막 때도 다녀오고. 하지만 공연 중이라 배우로서 돌아갈 수는 없는 상황이었죠.”
‘시키’는 1년 단위로 배우와 계약을 한다.
최씨의 외유가 길어지면서, 사실 ‘오페라의 유령’을 하는 동안 계약은 끝나있는 상태이다.
“일본에서 ‘돌아오라’고는 하는데 (하하하!) 한국에 있어 보니까 좋더라고요. 마음이 편하고. 가족과 있는 것도 좋고.”
‘오페라의 유령’이 끝나고는 “슬슬 돌아가볼까”하는 마음이 들기도 전에 ‘몬테크리스토’의 여주인공으로 덜컥 캐스팅되어 버렸다.
하루는 공연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니 가족이 난리였다.
TV에서는 일본 대지진 참사 영상이 비치고 있었다.
부모가 최씨를 붙들고 “일본에 안 가길 잘 했다”라고 했다.
“다음날 ‘몬테크리스토’ 대표님이 저를 보시더니 ‘내 덕에 산 줄 알아라’하시더라고요.(하하)”
- 일본과 한국의 관객은 많은 차이가 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겪어보니 어떻던가요.
“처음 일본에 갔더니 극단에서 자기네 작품을 다 보여 주더라고요. 말은 못 알아듣지만 처음이라 다 신기하고 재미있었죠. 끝나고 막 박수를 치는데, 뭔가 분위기가 달라요. ‘이 사람들은 재미가 없었나’하고 갸웃했죠. 그런데 몇 번을 봐도 다 같은 반응이 거예요.”
“자세히 보니까 일본 관객들은 박수를 조용히 치지만 끊임없이 쳐요. 눈이 반짝반짝 하고. 열정적으로 환호를 하거나 기립박수는 확실히 우리 관객이 많죠. 확실히 달라요.”
- 성악을 전공한 소프라노시죠. 노래할 때 성악 발성이 강하게 느껴지는데요. 아무래도 록이라든지, 성악 발성을 벗어난 배역은 한계가 있지 않을까요.
“제약이 많은 것 같아요. 일본에서는 다행히 제가 무대에 설 수 있는 배역을 주로 맡았고, 극단 대표님이 제 목소리를 너무 좋아해 주셨어요.”
실제로 최씨는 일본 ‘시키’ 시절 주인공만 맡았다. 주변에서 질투도 받았다.
“제가 노래를 너무 잘 하는 것도 아니고, 연기를 잘 하는 것도 아니고, 빼어난 외모도 아닌데 주연을 하니까 주변에서 갸웃했죠. 누군가는 ‘그렇다고 네(외모)가 극단 대표님 취향도 아닌데’라고 하더라고요.(하하)”
최씨는 한국에 오니 제한이 좀 더 느껴진다고 했다. ‘이런 목소리는 이러저러한 역할’이라는 고정관념같은 것이 일본보다 강하다.
- 평소 ‘천사표 이미지’가 있는데요. 실제로는 어떤가요.
“전혀 안 착해요. 그냥 평범하죠. 너무 평범해서 배우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정도죠. 뮤지컬배우를 이렇게 오래 하고 있는 제가 스스로도 신기해요. 쑥스러워하면서도, 해 가는 거죠. 신기해요.”
- 평소의 모습과 무대에서의 당당한 모습은 굉장히 달라 보입니다. 무대체질인 것일까요.
“굉장히 긴장을 하는 편이에요. 예를 들어 저는 커피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공연 전에는 안 마셔요(실제로 최씨는 커피가 아닌 다른 음료를 주문했다). 카페인 때문에 더 떨릴까봐. 저와는 반대로 일부러 커피를 마시고 ‘업’시키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오페라의 유령’ 이야기. ‘크리스틴’의 첫 노래는 오페라 무대에 데뷔하는 장면에 나온다. 처음 데뷔하는 자리이니 긴장하고 떠는 연기를 해야 한다.
“그게 저한테는 진짜였어요. 매일 공연을 하는데도 다 진짜였죠.”
‘지킬앤하이드’에서 ‘엠마’가 첫 등장할 때도 마찬가지. ‘엠마’는 앙상블 배우들의 뒤쪽 계단에 서 있는다.
“그런데 그 계단이 흔들리는 거예요. 안 그래도 긴장되는데, 더 무서운 거죠. 무대감독님이 괜찮다고는 하시는데.”
일본에서 ‘위키드’를 할 때 에피소드도 있다. 이 작품은 ‘오즈의 마법사’의 뒷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두 명의 마녀가 주인공으로 나오는데 최씨는 ‘글린다’라는 착한 마녀 역이다.
“등장할 때 위에서 리프트를 타고 내려오거든요. 처음 리허설을 할 때 너무 무서워서 막 소리를 질렀죠. 노래를 하면서 내려와야 하는데, 노래가 아니라 비명을 지른 거죠. 도저히 목소리가 안 나오더라고요.”
일본 극단 ‘시키’에 몸을 담았던 한국배우들은 제법 된다. 고영빈, 오나라, 강태을, 김지현이 있고 ‘지킬앤하이드’에서 ‘지킬’을 맡아 최현주씨와 호흡을 맞췄던 김준현도 ‘시키’ 출신이다.
박은태, 차지연도 ‘시키’ 작품에 출연했다.
- 일본 ‘시키’와 한국 극단의 분위기는 꽤 다를 것 같습니다.
“‘시키’는 일본에서도 특이한 곳이었죠. 한국에서 배우로 활동하던 분들은 ‘여긴 군대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전 대학 졸업하고 바로 갔고, 첫 사회생활이라 ‘원래 다 이런 건가보다’했죠.”
일단 ‘시키’의 배우가 되면 규칙적인 일정에 매이게 된다.
일반적으로 배우들은 공연이 없을 경우 자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지만, ‘시키’ 소속배우는 트레이닝을 받기 위해 ‘센터’로 출근해야 한다. 외국인 배우들은 일본어 수업도 받아야 한다.
남는 시간은 개인연습이다. 하여튼 하루 일과가 이런 저런 스케줄로 꽉 짜여져 있다.
앞서 말했지만 ‘시키’의 배우들은 1년 단위로 극단과 계약을 한다.
매월 월급이 나와, 배우들은 경제적인 안정감을 얻을 수 있다.
최현주는 소속배우 중에서도 상당히 높은 대우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킬앤하이드’에는 두 명의 여주인공이 등장한다. 최현주씨가 맡은 ‘엠마’ 외에 ‘루시’가 있다.
‘루시’는 몸을 파는 술집여인이지만 꽤 인상깊은 캐릭터이다. 실제로 ‘엠마’보다 ‘루시’를 더 좋아하는 관객도 많다.
김선영, 이영미, 소냐 등이 ‘루시’로 이름을 날렸다.
최씨도 혹시 ‘루시’에 대한 욕심이 있지는 않을까.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법이니까.
“정말 매력적인 역할이죠. 하지만 ‘엠마’에 정을 들여서, 여기에만 집중하고 싶어요. 뮤지컬에는 여자끼리 부르는 듀엣곡이 거의 없는데 ‘지킬앤하이드’에는 있어요. 지금 ‘루시’분들과 제 음색이 차이가 나는데, 그래서 더 좋더라고요.”
‘지킬앤하이드’는 우리나라에서 유독 인기가 높은 뮤지컬이다. 어쩌면 전 세계에서 ‘지킬앤하이드’가 가장 인기있는 나라는 한국이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그 이유가 궁금하다.
“일본관객도 좋아하기는 하는데 우리나라는 유난히 광적으로 좋아하는 관객이 많으시죠. 작품 자체도 좋고, 노래도 좋지만 뭐랄지, 남자 주인공을 굉장히 돋보이게 만드는 작품같아요. 남자 주인공이 쉬지않고 무대에 나와야 하고. 제가 알기로 60회 이상 ‘지킬’을 보신 관객분도 계시더라고요.”
- 이제 한국 배우생활도 3년차이니 배우들과 친분이 꽤 두터워졌을 것 같습니다. 평소 가까운 선후배나 동료배우가 있다면.
“제가 사교적인 성격이 아니라서 많지는 않아요. ‘오페라의 유령’하면서는, 동갑이기도 하고 … 양준모 배우요. 와이프도 동갑이더라고요. 부부랑 함께 만나기도 했죠. 홍광호 배우도 있고요. 홍광호 배우는 이번에 ‘지킬’을 하면서 또 만났죠.”
인터뷰 말미에 우물쭈물 하고 있으니 최현주씨가 빤히 기자를 쳐다본다.
사실 인터뷰를 하러 가기 전 최씨와 함께 작업을 했던 스태프 한 명이 기자에게 “꼭 좀 물어봐 달라” 사정하며 전해 준 질문이 있었던 것이다.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눈을 질끈 감고 물었다.
“집 주소가 어떻게 되시나요. 지구는 아닌 것 같은데요.”
1시간 남짓 인터뷰 중 가장 호탕한(?) 그녀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물론 최씨는 주소를 알려주지는 않았다.
스포츠동아 양형모 기자 (트위터 @ranbi361)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