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율화의 더 팬] 프로야구 또 하나의 재미, 천적관계

입력 2011-10-1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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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뭐래도 최고의 투수가 그 타자만 만나면 한없이 약해지거나, 기량이 절정인 타자가 이상할 만큼 특정 투수에게 맥을 못추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이런 현상이 몇해 지속되면 야구팬은 그들을 ‘천적’이라 부른다.

프로야구 30년 역사에 많은 천적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천적관계는 선동열(전 해태)과 김동기(전 태평양). 1987년 5월 5일 선동열과의 첫 만남에서 4타수 3안타라는 ‘기적적인’ 기록을 세웠던 김동기는 그해 9월 25일에는 선동열의 319.1연속이닝 무피홈런 기록을 깨버리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1993년에는 0-4로 뒤진 상황 9회말 2아웃에서 선동열에게 만루홈런을 뽑아냈는데, 선동열의 그 해 방어율이 0.78이었으며 김동기의 홈런이 단 3개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독한 천적 관계라고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다.

그 선동열에게 약한 타자가 한 둘이었겠나 마는 그 중 장종훈(전 한화)의 성적은 유난히 처참하다. 3년 연속 홈런 1위를 차지한 자타공인 홈런왕이건만 선동열로부터는 단 하나의 홈런도 치지 못했고, 프로생활을 통틀어 1타점만을 올렸으니…. 빙그레의 해태 콤플렉스는 어쩌면 이 두 사람으로부터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장종훈의 뒤를 이은 홈런타자 이승엽(오릭스·전 삼성)에게도 천적이 있었다. 이승엽과 더불어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의 축으로 활약하며 일명 ‘병역 브로커’라 불렸던 구대성(전 한화).

이승엽이 데뷔한 1996년부터 구대성이 일본에 진출한 2000년까지 이승엽의 구대성 상대성적은 51타수 6안타 1홈런에 통산타율 0.118. 심지어 6안타 중 5안타를 1997년에 몰아 때렸으며 나머지 시즌은 단 1안타로 눌렸다.

오죽하면 2000년 7월 11일에 이승엽이 처음으로 구대성에게 홈런을 쳤는데, 다음날 스포츠 신문들의 1면 헤드라인이 ‘이승엽, 구대성에게 첫 홈런!’이었을 정도다.

현역 선수 중 내로라 할 천적관계는 단연 정대현(SK)과 이대호(롯데)다. 대한민국 최고 타자인 이대호도 정대현 앞에서는 작아지는데, 49타수 5안타에 타율 0.102의 성적으로 단단히 체면을 구겼다. SK와 롯데의 플레이오프에서는 과연 이대호가 지독한 ‘여왕벌 트라우마’를 벗어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아마도 당사자들에게는 아름답지 않은 기억이겠고 어쩌면 아픔으로 남아있을 수도 있겠으나 단지 우연이나 운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천적관계. 그 의외성과 이변이 야구를 더욱 흥미진진하게 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과연 이 가을에는 어떤 천적관계가 새로이 형성될지, 기다리는 야구팬의 마음은 더없이 즐겁다.

구율화 여성 열혈 야구팬·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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