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피플] 오재원 “모두가 ‘넌 안된다’ 할때 묵묵히 때를 기다렸다”

입력 2011-11-12 07: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두산 오재원은 밑바닥부터 출발해 프로야구 최고의 도루왕으로 떠올랐다. 야구밖에 모르는 우직한 성실함이 있었기에 가능한 변화였다. 스포츠동아DB

■ 만년 백업서 생애 첫 타이틀 획득 두산 오재원

몸 약했던 어린시절…힘들어도 포기 안해
1군 머물렀지만 내 포지션 가진 적 없어
벤치서 바라보기만 하는 고통 상상 이상
생애 첫 도루왕…하지만 난 지금부터 시작

그의 포지션은 ‘만년 백업내야수’였다. 그라운드보다 벤치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았고, 1군에 이름을 올리고 있어도 매일같이 좌절하다 다시 희망을 품는 일을 반복했다. 하지만 묵묵히 땀방울을 흘리며 때를 기다렸고, ‘기회가 오면 잡겠다’는 실낱같은 기대로 긴 시간을 버텼다.

두산 오재원(26)의 야구인생은 처음부터 그랬다. ‘안될 것’이라는 부정적인 시각과 싸우는 일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편견을 깨고 그는 당당히 프로구단에 입단했다. 백업으로 시작해 주전 자리를 꿰차며 생애 첫 타이틀홀더(2011시즌 도루 1위·46개)가 됐다. 야구선수로서 제2막을 연 그를 만났다.


● 어릴 때부터 야구만 알던 야구마니아

“그냥 이유도 없이 야구가 좋았어요.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야구만 하면 TV앞에서 3시간 동안 화장실 한 번 안 가고 경기를 봤으니까요.”

오재원은 어린 시절 몸이 약했다. 아무리 먹어도 살이 안 쪘고, 키도 작았다. 잔병치레가 많아 늘 주위의 걱정을 샀다. 그런 아들이 야구를 한다고 했을 때 가족의 반대는 상상 이상이었다. 하지만 고집이 쇠심줄 같았던 그는 아버지를 조르고 졸라 결국 유니폼을 입었고 그 어렵다는 프로야구 선수가 됐다.

물론 과정이 쉽지 않았다. 모두가 “넌 안 된다”며 의지를 꺾었고, 남들보다 2배는 더 노력해야 다른 이들만큼 할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도 마찬가지였다. 상대적으로 약한 체력과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성격 탓에 늘 난관에 부딪히곤 했다. 그래도 그는 “훈련이 힘들어 ‘하기 싫다’는 생각은 해봤어도 야구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에게 야구는 운명이었다.


● 백업 내야수로 보내야 하는 고통

오재원은 2007년 프로 입단 후 즉시전력감으로 인정받아 주로 1군에 머물렀다. 하지만 ‘백업’이었다. 주로 대수비나 대주자로 경기에 나갔고 그라운드 한 번 밟지 못한 채 돌아서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당연히 포지션도 없었다. 대학 시절 유격수였지만 프로에서는 내야를 모두 소화해야 했다.

“저는 프로에 들어와서 단 한 번도 제 포지션을 가진 적이 없어요. 지금은 주로 2루를 보고 있지만 1루도 보고 3루도 가잖아요. 그냥 백업내야수였던 거죠. 그거 아세요? 1군에 있으면서 벤치에서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고통. 경기에 나가도 주어진 게 1이닝밖에 없으니까 에러하지 말아야하고 무조건 안타를 쳐야 했어요. ‘열심히’ 해도 안 되고 ‘잘’ 해야 하는 거예요. (야구를)하면 할수록 한계에 부딪혔는데 젊으니까 괜찮다는 생각으로 버텼습니다.”


● 생애 첫 타이틀홀더? 가장 힘든 한 해

다행히 마음고생은 헛되지 않았다. 오재원은 주전 2루수였던 고영민이 주춤하는 동안 본격적으로 기용됐고 잠재력이 폭발했다. 올해는 주전자리를 꿰차더니 생애 첫 타이틀도 따냈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를 칭찬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부터 시작”이라며 긴장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주위에서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고 칭찬해주시는데요. 사실 개인적으로 가장 힘든 한 해였어요. 제가 입단 후에 매년 가을야구를 했거든요. 그런데 올해는 팀 순위가 7위까지 떨어지지, 분위기 안 좋지, 너무 힘들더라고요. 사실 제가 못 해도 팀 성적만 좋으면 ‘나만 잘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뛰게 되거든요. 상을 받은 후에도 그동안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느끼긴 했지만 오히려 그간 고생이 떠올라 마냥 기뻐할 수 없었어요.”

이뿐만 아니다. 그는 2008년 한국시리즈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인 뒤 기대를 받으며 시작한 2009년 손가락이 골절되는 부상을 당해 시즌을 통째로 날린 기억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다.

“긴장이 풀어지면서 스스로 나태해졌기” 때문이라고 진단했고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내년에도 팀을 위해, 그리고 자신을 위해 “그 마음을 잊지 않겠다”고 했다. 앞으로도 오재원의 질주가 멈출 수 없는 이유다.

홍재현 기자 hong9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hong927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