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울산문수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1 K리그 챔피언결정전 1차전 울산현대 대 전북현대 경기에서 전북현대 에닝요가 후반전 역전골을 성공시킨 후 환호하고 있다. 울산 | 김종원기자 won@donga.com 트위터 @beanjjun
ACL 뼈아픈 준우승 후 절치부심
원정경기 두골…귀중한 승리 안겨
#장면1. 2008년 12월, 전북 최강희 감독은 대구FC에서 특급 공격수로 명성을 떨치던 한 브라질 용병을 찾아갔다. 꼭 영입해야 할 선수가 있을 때, 최 감독은 직접 만나 상대의 의향을 묻는다. “난 너와 함께 K리그를 제패해야겠다.” 그리고 그와 함께 2009시즌 전북은 정상을 밟았다.
#장면 2. 지난 달 알 사드(카타르)와의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연장 접전이 끝난 뒤 이어진 승부차기에서 그는 무릎을 꿇고 두 눈을 꼭 감은 채 간절한 기도를 했다. 전북의 패배로 끝나자 “우승하고 싶었다. 눈물이 날 정도로 너무 슬펐다”며 재빨리 믹스트 존을 빠져나갔다.
에닝요(30·전북·사진) 얘기다. 그가 다시 한번 웃었다.
K리그 챔피언결정 1차전(11월30일). 이날 에닝요는 두 골을 몰아치며 전북의 2-1 승리를 이끌었다. 이는 단순한 1승이 아니었다. 홈에서 챔프 2차전을 앞두고 원정 다 득점 원칙에 따라 한 골이 두 골에 버금가는 엄청난 의미를 지닌다.
에닝요는 전북에 특별한 존재다. 쟁쟁한 활약상에 반한 K리그 여러 팀들의 러브 콜이 쇄도하고, 이런저런 이적설이 나돌자 전북은 7월 에닝요와 3년 계약 연장을 해 심리적 안정을 줬다. 에닝요는 2014년까지 팀에 남아야 한다.
전북 프런트와 선수들은 에닝요를 향해 “절반의 한국인”이라고 부른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동료들과의 융화, 생활에도 최상위급에 속한다고 입을 모은다.
올 시즌 활약도 대단했다. 정규리그 30경기를 치르는 동안 에닝요는 8골 5도움을 올리면서 전북이 1위로 챔프전에 직행하는 데 일조했다.
4강까지 엄청난 활약을 펼쳤음에도 ACL 결승에서 뼈아픈 패배를 맛봤던 에닝요는 이번 울산전을 앞두고 최 감독을 찾아가 남다른 각오를 전했다. “이번에도 지면 절대로 휴가를 가지 않겠다. 그냥 한국에 남아 계속 훈련을 하겠다.”
최 감독은 “오늘 전반전이 끝나고 나면 아예 딴 생각을 못하도록 브라질행 비행기 티켓을 빼앗아놔야겠다”고 농을 던졌지만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가 가득했다. “용병들의 마음가짐이 토종 선수들에게도 남다른 영향을 끼친다”는 게 전북 벤치의 판단.
이날 에닝요는 해결사의 진면목을 보여줬다. 후반 7분 이동국이 얻어낸 페널티킥을 침착하게 꽂아 넣더니 1-1로 팽팽한 후반 34분에는 문전 한복판에서 상대 수비수가 제대로 걷어내지 못한 헤딩 볼 처리를 틈타 또 다시 골 망을 갈랐다. 사실 최 감독은 챔프전을 준비하며 선수들에게 PK 연습을 시켰는데, 에닝요는 백중백발 성공시켰다는 후문이다.
큰 경기에 유독 강한 면모를 보여 온 에닝요의 활약 속에 전북은 편안한 마음으로 2차전 홈경기를 대비할 수 있게 됐다.
울산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yoshike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