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구 여제’ 김가영 “어릴 땐 유도선수 꿈꿨죠”

입력 2011-12-20 09:4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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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영은 지난 5일 여자프로당구연맹이 발표한 세계랭킹에서 2년 만에 1위에 올랐다.

“세계랭킹 1위요? 물론 기분 좋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제가 1위에 오른게 처음도 아닌데요, 뭘.”

여자프로당구연맹(Women's Professional Billiard Association) 세계랭킹 1위 복귀를 축하한다는 기자의 첫 인사에 대한 김가영(28·한국체대)의 답변이었다. 노력하는 사람을 이기는게 즐기는 자라 했던가. 이 20대 후반 ‘당구 여제’에게도 이 말은 들어맞는 듯 했다.

“경기할 때는 전혀 긴장하지 않아요. 여긴 내 세상이다! 이건 내 게임이다! 습관이 돼 있죠. 오래 쳐도 안 떨려요. 두려움도 없고.”

김가영은 5일 여자프로당구연맹이 발표한 세계랭킹에서 지난 2009년에 이어 2년 만에 1위에 올랐다. 지난해 랭킹은 4위. 학교 생활, 대회 출전, 방송 촬영 등으로 바쁜 한 해를 보낸 김가영을 14일 서울 강남의 한 당구장에서 만났다.

올해 한국체대 레저스포츠학과에 입학한 ‘늦깎이 대학생’ 김가영에게 학교 생활에 대해 묻자 나름 잘 적응하고 있으며 성적도 기대보다 잘 나올 것 같다며 웃는다.

“젊은 친구들로부터 기를 팍팍 받고 있죠. 다들 절 좋아해요. 밥을 잘 사줘서 그런가?(웃음)”

김가영이 대학생이 된 것은 앞으로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원래 김가영은 지도자의 길을 갈 생각은 없었다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고 한다.

“전 우리나라에서 당구선수로서는 유일한 체육연금 수혜자에요. 이론이라면 모를까 실력이나 커리어 면에서는 인정받고 있다는 거죠. 은퇴한다고 이걸 내팽개칠 수는 없다는 사명감이 생겼어요. 그런데 주먹구구식으로 가르칠 수는 없잖아요. 체계적인 지식이 필요했어요.”

김가영은 원래 유도선수였던 아버지를 따라 유도복을 입기를 원했다. 당당한 체격에, 초등학교 졸업 당시 키가 163cm에 이를 정도로 신체 조건도 좋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김가영이 유도선수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여자가 유도를 잘해봐야 호신술로도 쓰기 어렵다는 게 아버지 말씀이셨어요. 부상 위험도 많구요. 여자인 제가 고생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으셨던 것 같아요.”

김가영의 아버지는 대신 남녀의 실력차가 크지 않은 운동을 찾았고 그래서 얻은 결론이 바로 당구였다. 당구는 많은 파워가 필요하지 않고 두뇌 게임이기 때문에 여자가 특별히 불리한 종목은 아니라는게 김가영의 설명. 김가영의 키는 171cm. 여기에 팔도 긴 편이라 당구에 적합한 체형이다.

“운동은 보통 반사신경이 중요하잖아요. 탁구 같은 건 몸이 먼저 반응해야 해요. 그런데 당구는 제가 원하는 대로 경기를 컨트롤 할 수 있어요. 바둑이나 골프와 비슷하죠. 전 해본 적은 없지만 당구 선수들이 대개 골프도 잘 해요.”

세계랭킹 1위 ‘당구여제’ 김가영.


김가영은 고교 시절 이후 프로선수로서 대부분의 시간을 대만과 미국에서 보냈다. 변변한 연습 상대조차 없었던 한국은 그녀의 꿈을 펼치기엔 좁은 무대였던 것.

“이대로는 세계 정상에 오를 수 없을 것 같더군요. 대회도 별로 없고, 상금도 적고, 프로선수에게 자극이 되고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해줄 만한 게 너무 없었죠. 동호인은 많고 저변은 넓지만 프로스포츠로서의 당구는 비인기 종목이잖아요. 해외진출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죠.”

김가영은 지난해 광저우 아시안게임 8볼에서 아쉽게 준우승에 그쳤다. 2006년 도하 대회에 이어 두 대회 연속 은메달. 당시 대표팀은 당구에서 내심 금메달 2개 이상의 성과를 기대했지만 은메달 1개와 동메달 1개를 따내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 시합이 많지 않다 보니 좀 부담이 됐던게 사실이에요. 그리고 전 세계챔피언이니 주변의 기대가 컸죠. 더 잘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는데 아쉬웠어요.”

김가영이 국가대표로 활동한 지는 벌써 10년을 넘어서고 있다. 한국 여자당구 국가대표 한 자리는 늘 김가영의 차지였다. 이제 20대 후반에 들어선 김가영은 은퇴 시기에 대해 ‘길어야 30대 중반까지’라고 답했다. 하지만 그녀는 실력이 아닌 다른 이유로 태극마크를 반납할 생각은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김가영이 출전하면 성적이 나온다는 기대감이라는 게 있어요. 지금은 내 실력에 자신있고 국가대표 자리에 당당해요. 그런데 언젠가는 그 자리가 미안해지는 순간이 오겠죠. 하지만 아직은 아니에요. 어린 선수 키워야 된다면서 세대교체하고, 그런 식으로 내 자리를 뺏길 생각은 없어요. 국가대표가 되고 싶다면 저를 이기면 되죠.”

동아닷컴 김영록 기자 bread425@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동아닷컴 오세훈 기자 ohhoon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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