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치, 그들을 말한다] 이강철 투수코치 “통산 2204이닝, 10년연속 10승…난 최고의 강철어깨”

입력 2012-01-1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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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이강철 코치가 지난해 7월 해태의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서 마운드로 뛰어나가고 있다. 이 유니폼을 입고 투수 이강철은 10년 연속 10승이라는 빛나는 역사를 던졌다. 진짜 레전드다. 스포츠동아 DB

14 KIA 투수코치 이강철

“선수시절 선동열·송진우의 벽…늘 2인자
그렇지만 10년 연속 10승은 나밖에 없어”

2204이닝·152승·65번 완투 ‘빛나는 기록’
96년 KS MVP는 야구인생 최고의 순간

단 3명 뿐인 150승 이상 투수 중 한 명, 그 누구도 범접하지 못하고 있는 10년 연속 10승 이상. 역대 6위인 65번의 완투와 18번의 완봉승, 역대 3위인 2204.2이닝 투구. 레전드에 걸맞은 찬란한 기록이다. 그러나 프로 16년 동안 단 한 번도 다승과 방어율 1위에 오르지 못했다. 대신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 꾸준함으로 빛나는 역사를 던졌다.


● 최고가 되지 못한 150승 투수

KIA 이강철(46) 투수코치에게 ‘역대 다승 3위, 그리고 10년 연속 10승 투수였지만 그 위대한 기록이 가치만큼 조명을 받지 못한 것 같다’고 물었다. 이 코치는 “그러게요. 이게 결코 쉽지 않은 기록인데”라며 웃었다. 그리고 “한 번도 정상에 오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한창 잘 던질 때 우리 팀에 선동열 감독이 계셨다. 18승을 했을 때는 대학선배 (송)진우 형이 19승을 하는 바람에 다승왕을 못했다”며 다시 옅게 웃었다 사실이다. 이 코치는 데뷔 첫해인 1989년 해태에서 15승 8패 5세이브 방어율 3.23의 기록을 세웠다. 완투 8번에 완봉이 3차례나 됐다. 지금 같으면 신인왕은 물론이고 MVP까지 노려볼 만한 성적이다. 1년 선배임에도 프로에 함께 데뷔한 조계현 현 두산 코치가 시즌 초반에는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시즌 마지막 성적표에는 7승 9패만 찍혀있었다. 그러나 신인왕은 무명의 반란, 19승을 기록한 태평양 박정현에게 돌아갔다. 이 코치는 이후 4년 연속 15승 이상을 기록했다. 1991년 193개의 삼진을 잡았지만 201개를 기록한 선동열 감독에게 뒤졌다. 이듬해 18승을 올렸지만 송진우의 19승에 뒤졌다. 타이틀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어도 이후 매년 10승 이상에 2점대 후반 혹은 3점대 방어율, 10년 동안 매해 150이닝 이상을 책임지는 꾸준함까지. 감독과 해태팬 모두 이강철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 이름 그대로 강철같은 믿음이었다. 그러나 정상권을 지키면서 가장 높은 곳, 1등이 되지 못한 갈증은 여전히 컸다. 이 코치가 은퇴할 때까지 주요 부문 타이틀 정상을 차지한 건 1992년 탈삼진 1위가 전부였다.


● 아직 누구도 오르지 못한 10년 연속 10승

이 코치는 이렇게 추억했다. “한 번도 1등을 못하니까 ‘대신 꾸준한 성적으로 의미있는 기록을 세워보자’는 생각을 갖게 됐다. 10년 연속 10승은 사실 에이스급 투수가 꾸준히 자기 공만 던지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기록이다. 하지만 이게 아직 저 말고 없다. 아마도 부상이라는 가장 큰 적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저도 여기 저기 아플 때가 많았고 위기도 있었다. 그리고 기록을 의식하다 보니까 매해 9승에서 아홉수가 걸리더라. 잘 던지면 뒤에서 못 지키기도 하고, 그래도 10년째에는 수월하게(15승) 넘어섰다.”

10년 연속 10승 기록을 향해 가던 1996년 가을은 이 코치가 스스로 “유일하게 1등이 됐던 기억”이라고 했다. 이해 한국시리즈에서 해태는 신흥강호 현대와 치열한 접전을 벌였다. 박재홍이 펄펄 날았고 정명원이 노히트 노런을 기록한 시리즈. 그러나 이강철은 3차전 완봉승에 5차전 세이브, 그리고 6차전 선발승까지 2승 1세이브로 당당히 MVP가 됐다. “프로에 입단 초기에는 원정 가는 버스에서 잠을 잘 못이뤘다. 그 때마다 항상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제가 던져서 이기는 상상을 했다. 긍정의 힘이라고 할까? 마운드에 올라서 내 공이 최고라는 자신감으로 공을 던졌고 우승을 했다. 선수생활을 돌이켜 볼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다.”


● 152승 그리고 53세이브 33홀드

10년 연속 10승을 기록하며 이 코치는 3시즌이나 200이닝 이상을 던졌다. 180이닝 이상도 두 번, 매해 150이닝 이상을 10년 동안 던졌고 결국 1999년 무릎십자인대를 다치며 몸에 이상이 오기 시작했다. 2000년 FA로 삼성에 입단했지만 부상은 계속 그를 떠나지 않았다. 친정 KIA로 다시 돌아온 2001년까지 이강철은 부상의 그림자를 넘지 못하고 부진을 이어갔다. 부상의 위험이 높은 잠수함 투수, 그리고 이미 30대 중반이 된 나이. 사실 만약 거기가 마지막이었다고 해도 이강철은 이미 레전드였다. 그러나 135승과 5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대투수는 불펜에서 화려한 변신을 한다. 2002년에는 5승과 17세이브로 뒷문을 단단히 지켰고 이듬해는 1점대 방어율로 6승과 9세이브 그리고 17홀드를 기록했다. 152승과 함께 53세이브와 33홀드, 그리고 17년의 시간. 이강철은 2005년을 끝으로 마운드를 떠났지만 여전히 선발투수 주요 부문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기록을 남겼다.


● 코치는 선수를 위해 선수를 이겨야 한다

이 코치는 현역 시절 운동선수라는 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선이 고운 외모로 여성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러나 마운드에만 올라가면 투지가 넘치는 승부사로 변신했다. 주위에서 “야구 할 때는 다른 사람 같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이 코치는 “지금 기억해도 정면 승부가 많았다. 그래서 파울도 많았고. 마운드에서 만큼은 건방져도 된다고 생각했다. 항상 마운드에서는 최고라는 생각으로 공을 던졌고, 경기가 끝나면 꾸준한 기록을 위해 열심히 뛰었다. 코치가 되고 나니 자제력이 약한 선수들이 보인다. 놀고 싶은대로 다 놀면 어떻게 성공하나. 그래서 좋은 코치가 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이 코치는 이어 “좋은 지도자보다 최고의 코치가 되고 싶다. 선수로는 못했지만 코치는 1등 하고 싶다(웃음). 코치는 선수를 위해 선수를 이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통도 매우 중요하지만 싫은 소리를 할 때는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코치가 선수를 이겨야 하고 이기기 위해서는 선수에게 코치가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정상의 선발투수에서 필승 불펜투수로 그리고 최고의 지도자를 향해, 이강철 코치의 야구인생 3막은 이제 막 펼쳐지고 있다.


● 이강철 코치는?


▲ 생년월일 = 1966년 5월 24일

▲ 출신교 = 서림초∼무등중∼광주일고∼동국대

▲ 키·몸무게 = 180cm·76kg

▲ 프로경력
- 1989년 1차지명으로 해태 입단
- 2000년 FA로 삼성 입단
- 2001년 KIA로 트레이드
- 2008년 KIA 코치

▲ 프로 통산 성적 = 602경기 2204.2이닝 152승 112패 53세이브 33홀드 방어율 3.29, 65완투 48완투승 16완봉승 (다승 통산 3위, 통산 이닝 3위, 탈삼진 통산 2위)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rushl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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