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게이결혼식’
무엇보다 배우들의 개인기에 의존하지 않고, 탄탄한 대본의 힘만으로 관객의 허리를 끊어지도록 웃긴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최근 몇 년 사이에 한국 대중문화의 중요 코드로 등장한 동성애 코드도 관객에게 거부감없이 슥슥 스며드는 느낌이다.
이 연극은 2010년 11월 프랑스에서 초연된 작품이다. 세상에 나온 지 채 3년이 안 된 따끈따끈한 신작이라는 얘기다.
프랑스 코미디 연극의 정수를 보여주는 ‘게이결혼식'은 프랑스의 인기작가 제라드 비통과 미셸 뮌즈가 공동작업해 완성했다.
여기에 국민배우로 불리는 제라드 루¤이 출연해 크게 흥행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번이 초연이다.
앙리는 바람둥이 청년으로, 지구상의 모든 바람둥이가 그렇듯 많은 여자와 사귀고 있지만 결혼은 절대 하지 않겠다는 주의이다.
무대에 조명이 들어오면 앙리와 아버지가 소파에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목에 커다란(거대한이 맞는 표현일지도) 십자가를 걸고 있는 중년남자는 앙리의 아버지 에드몽이다.
독실한 천주교도인 아버지는 앙리에게 고모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하고는 훌쩍 성지순례를 떠나버린다.
혼자 남은 앙리는 고모의 유언장을 읽다가 대경실색을 하고 만다.
유언장에는 앙리에게 고모가 15만 유로어치의 주식을 남긴다는 내용이 실려 있었던 것이다.
때마침 앙리를 찾아온 친구 노베르(이혼 전문변호사로 현재 자신도 이혼수속 중이다)는 “고모가 남긴 주식이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주식이며 현재 시가는 15만 유로가 아니라 100만 유로"라는 엄청난 사실을 전해준다.
문제는 고모의 상속에 조건이 붙어 있다는 것. 평소 앙리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제발 결혼 좀 하라'고 종용했던 고모가 ‘앙리가 결혼을 해서 결혼생활을 1년간 유지할 경우 주식을 상속한다'라는 조건이었다.
절대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앙리는 결국 노베르와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한 끝에 어벙하고 착한 3류배우인 친구 도도와 가짜로 ‘게이 결혼식'을 올려 감독관의 눈을 피하기로 한다.
앙리와 도도가 엉성한 결혼생활을 하는 도중 아버지가 여행에서 돌아오고, 설상가상 앙리의 새 애인인 엘자가 집을 방문하면서 이야기는 점점 복잡하게 꼬여가게 된다.
게이결혼식을 보고 있으면 어쩔 수 없이 연극 라이어가 오버랩된다.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고, 거짓말을 새로운 거짓말로 덮으려다가 점점 일이 커지는 스토리 라인이 그렇다.
라이어가 ‘국민연극'의 반열에 올랐다는 것은 이런 스타일의 코믹연극이 우리나라 관객의 입맛에 착착 들러붙는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게이결혼식', ‘라이어와'같은 작품은 배우들의 호흡이 중요하다. 대사와 액션이 시계 톱니바퀴처럼 딱 맞아 물려가야 극이 탄력을 잃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이혼전문변호사 노베르 역을 맡은 민성욱의 연기가 꽤 흥미로웠다. 이기적이면서 변호사답게 냉철한 구석이 있지만, 이혼소송 중인 아내 얘기만 나오면 광분해 소리를 버럭버럭 질러대는 노베르 역을 완벽하게 표현했다.
연극과 뮤지컬 무대를 오가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박민정은 이해심이 많고 앙리를 사랑하지만 현실적인 사고를 하는(아마도 등장인물 중 가장 정상적인 사고의 캐릭터일 듯) 엘자에 적격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반면 앙리의 아버지 에드몽 역의 서현철은 살짝 아쉬움이 남았다. 등장인물 중 유일하게 진짜 게이로 판명이 나는 인물이지만, 게이의 느낌은 옅었다.
앙리, 도도, 노베르가 쌓아 올린 웃음의 장작에 기름을 부어주어야 할 때도 종종 타이밍이 늦거나 약했다는 생각이다.
도도 역의 노진원은 약간 나이가 들어 보인다는 점을 제외하면 게이가 아니면서도 점점 ‘아내’ 역할에 익숙해져 가는 3류배우의 역할에 충실했다.
혹시나 싶어 확인해 보니 과연 ‘라이어' 시리즈에 출연한 배우였다.
개그맨 김늘메와 더블 캐스팅인데, 이런 역할이라면 여성연기에 능한 김늘메도 상당한 기량을 보여주지 않을까 싶다.
7월 1일까지 서울 동숭동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공연한다.
인기 공연인 만큼 예매를 해 두는 것이 좋을 듯. 기자가 관람한 날도 빈 자리는 보이지 않았다.
스포츠동아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ranb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