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은 끝내 눈물을 참지 못했다. ‘바스켓 퀸’ 정선민이 30일 서울 등촌동 WKBL 사옥에서 열린 은퇴 기자회견에서 마지막 소회를 밝히다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고 있다. 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트위터 @seven7sola
내 선수생활 120점 정도 줄 수 있어
이젠 포기했던 여자의 삶 찾고싶다”
선수생활의 숱한 명장면들이 커다란 화면에 스쳐 지나갔다. 늘 굳세게만 보였던 ‘바스켓 퀸’의 눈가에서 이슬이 흘러 내렸다. 당당한 표정과 말투로 은퇴를 선언했지만, 인생의 전부였던 ‘농구’에게 영상편지를 써달라는 요청을 받자 끝내 목이 메었다.
정선민(38)이 코트를 떠났다. 30일 서울 등촌동 한국여자농구연맹(WKBL)에서 은퇴 기자회견을 열고 29년 선수인생에 마침표를 찍었다. 단정한 흰색 재킷 차림의 그녀가 나타나자 플래시 세례가 터졌다. 발 디딜 틈 없이 들어찬 취재진의 모습에 정선민의 가슴도 벅차오른 듯했다. 그녀는 “선수생활을 하면서 정말 행복했다. 그 누구보다 코트에서 열정을 다해 뛰었다는 사실에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며 감격해했다.
1993년 실업농구 SK에 입단한 정선민은 1998년 프로농구 출범 후 총 9차례(신세계 4회·신한은행 5회) 팀 우승을 이끌었다.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와 득점왕에 각각 7번씩 등극했고, 16년간 태극마크를 달았다. 트리플더블 13회와 한국 최초의 미국여자프로농구(WNBA) 진출(2003년)도 빼놓을 수 없는 업적. 정선민이 “농구공을 처음 잡았을 때는 정말 아무 것도 몰라서 시작이 미미했다. 하지만 고교 1학년 때 처음 이름을 알린 후로 굉장한 기록과 영광들이 많았다. 내 선수생활의 끝은 정말 창대했다는 얘기를 꼭 하고 싶다”며 자랑스러워한 이유다.
독보적인 성적만큼 자부심이 남다르다. 그녀는 ‘포스트 정선민’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솔직히 나 닮은 선수는 앞으로 없었으면 좋겠다”고 털어놨다. “다른 선수들과 비교할 수 없는 정선민만의 색깔을 갖고자 노력했다. ‘바스켓 퀸’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신 것도 여러 방면으로 팀에 도움이 되려고 노력해서라고 생각한다. 나만의 캐릭터가 모든 분들에게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모든 걸 다 이룬 듯한 그녀에게도 아쉬운 순간은 있었다. 마지막 소속팀이었던 KB가 우승 문턱에서 좌절한 일이다. 정선민은 “팀에 마지막으로 우승을 선사하고 은퇴하는 게 꿈이었는데 성사되지 못해 안타깝고 미련이 남는다”고 밝혔다.
찬사와 영광만큼 비난과 오해도 많았던 현역생활. 코트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정선민은 이제 농구공을 내려놓고 ‘여자’로 돌아갈 생각이다. 그녀는 “그동안 여자로서의 삶을 많이 포기하고 살아왔다. 이제 내 생활을 찾으려 한다”며 “내 선수생활은 120점 정도 줘도 되지 않을까. 훗날 아이들에게 엄마가 이런 사람이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며 뿌듯해했다.
배영은 기자 yeb@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goodgo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