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왼쪽)은 김보경을 자신의 후계자로 꼽는데 주저함이 없다. 각자의 장점도 있지만 닮은 점도 많다. 남아공월드컵 때 룸메이트였던 박지성과 김보경. 스포츠동아DB
박지성 vs ‘박지성 후계자’ 김보경
▶ 173cm·73kg 닮은꼴 체격
어린시절 개구리즙-자라즙 먹고 쑥쑥
대표팀 왼쪽 날개, 왜소 콤플렉스 극복
▶ “∼때문에”·“일단∼” 동어반복 말투
튀지 않는 발언·모범답안 인터뷰 스타일
차분한 성격…성실하면서 강단도 있어
▶ 대한민국 과거 vs 미래
경험 쌓인 김보경, 빅리그 진출 확실시
남아공 땐 방장-방졸…판박이 성공 기대
최근 한국축구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는 단연 김보경(23·세레소 오사카)이다. 그는 일찌감치 ‘포스트 박지성’으로 주목 받았다. 박지성(31·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은 2011카타르 아시안 컵 후 대표팀 은퇴를 선언하며 자신의 후계자로 김보경을 직접 거론했다. 김보경은 9일(한국시간) 카타르와 2014브라질월드컵 최종예선 1차전을 통해 ‘포스트 박지성’으로 손색이 없음을 당당하게 증명했다. 스포츠동아는 과거 한국축구 10년을 책임졌던 박지성과 향후 한국축구 10년의 중심에 설 김보경의 모든 것을 입체 분석해 봤다. 대표팀 사령탑과 수석코치를 각각 역임하며 두 선수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 본 조광래 전 대표팀 감독, 정해성 전남 드래곤즈 감독의 도움을 받았다.
○개구리 즙 vs 장어 즙
박지성과 김보경은 체격조건부터 비슷하다. 축구협회 프로필을 보면 173cm/73kg으로 똑 같다. 둘 모두 축구선수치고 이상적인 체격은 아니다. 어린 시절 보양식으로 체격, 체력을 키운 것도 닮은꼴이다. 박지성이 개구리 즙을 먹고 컸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화. 김보경도 아버지가 해 준 장어와 자라즙을 먹어 중학교 때 160cm에 불과하던 키가 고등학교 때 170cm 이상으로 훌쩍 컸다. 둘은 부단한 노력으로 왜소한 체격 콤플렉스를 극복했다. 박지성은 2005년 유럽진출 후 웨이트트레이닝으로 탄탄한 체격을 갖게 됐다. 김보경도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루도 거르지 않는 운동중독으로 유명하다. 조광래 감독은 “대표팀 시절 (김)보경이가 한 손으로 드는 역기 무게를 보고 진짜 이 무게로 운동하는 것이 맞느냐며 깜짝 놀란 적이 있다”고 회상했다.
○∼ 때문에 vs 일단∼
김보경이 10일 파주NFC에서 인터뷰를 한 뒤 기자들 사이에서 “말하는 것도 제2의 박지성이네”라는 농담이 오갔다. 박지성과 김보경의 인터뷰 스타일은 튀지 않는 발언, 동어반복, 모범답안으로 요약된다. 박지성은 “∼때문에”라는 말을 늘 반복해 개그프로그램의 소재가 되기도 했는데, 김보경도 말을 하기 전 늘 “일단”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눈길을 끌었다. 실제 성격도 비슷하다. 정해성 감독은 “성격? 둘 다 똑 같다. 말이 많지 않고 차분하다. 그러면서도 성실하게 자기 할 것은 다 알아서 하는 스타일이다”고 밝혔다. 정 감독은 이어 “보경이는 착해 보이지만 때때로 마음속에 독한 강단이 엿 보였다. 내성적인 지성이도 주장이 된 후 책임감으로 리더십을 발휘했는데 보경이도 비슷할 것 같다”고 했다.
○테크니션 vs 찬스메이커
모두 주 포지션은 왼쪽 측면 공격수다. 그러나 둘 모두 빠른 스피드와 크로스를 주무기로 하는 전형적인 윙 스타일은 아니다. 두 선수 모두 기동력과 활동량이 좋다. 조 감독은 “측면과 중앙을 넘나들면서 두 지역을 두루 커버해주기 때문에 팀에 크게 도움이 되는 선수들이다”고 평했다. 영리함도 공통점이다. 조 감독은 “뭔가를 지적하거나 가르쳐주면 빨리 받아들이고 소화를 잘 시킨다. 지성이는 그런 능력이 있어 세계 최고의 팀에서 성공했는데, 보경이도 못지않다”고 말했다.
차이점도 있다. 김보경은 전형적인 왼발잡이다. 박지성은 양 발을 모두 잘 쓰지만 왼발잡이는 아니다. 정 감독은 “보경이는 테크니션, 지성이는 찬스메이커에 가깝다”고 정의했다. 정 감독 분석에 따르면 김보경은 전체 경기를 읽는 시야와 개인전술이 뛰어난 반면 박지성은 공을 잡았을 때 상대수비를 위협하고 결정적인 찬스를 만들어주는 능력이 좋다. 조 감독도 “보경이가 지성이보다 잔기술이 뛰어나다. 그래서 중앙 공격 미드필더나 섀도 스트라이커도 잘 소화한다”고 설명했다.
○과거 10년 vs 향후 10년
지금까지 김보경이 박지성에 비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것은 바로 ‘커리어’였다. 박지성의 커리어는 곧 한국축구 10년의 역사다. 박지성은 약관의 나이에 2002한일월드컵에 출전해 4강을 이끌었고, 이후 유럽에 진출해 네덜란드 PSV에인트호벤을 거쳐 최고 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7년째 뛰고 있다. 2006독일월드컵 원정 첫 승, 2010남아공월드컵 원정 첫 16강이 모두 박지성 발에서 아로새겨졌다. 반면 김보경은 2010남아공월드컵과 2011아시안 컵 최종명단에 포함됐지만 박지성에 밀려 거의 존재감이 없었다. 김보경은 일본 J리그와 올림픽 팀 주축으로 활약하며 차곡차곡 경험을 쌓아 왔다. 조 감독은 “대표팀 시절 보경이에게 늘 경험부족을 지적했는데 카타르전을 보니 게임 운용에 훨씬 여유가 생겼다”고 칭찬했다. 정 감독도 ”최근 2∼3년 간 올림픽 팀과 국가대표를 오가며 자신감이 많이 붙었다“고 평했다. 2010남아공월드컵 때 박지성과 김보경은 룸메이트였다. ‘캡틴’ 박지성은 하늘같은 방장, 김보경은 까마득한 방졸이었다. 김보경은 박지성과 한 방을 쓰며 ‘왜 그가 한국 최고선수인지’를 직접 보고 깨달았다.
김보경은 올 여름 유럽 빅 리그 진출이 거의 확실시 된다. 그렇게 되면 박지성에 이어 두 번째로 일본 J리그를 거쳐 빅 리그 무대를 밟는 사례가 된다. 조 감독과 정 감독 모두 “유럽에 가서도 지성 이상으로 분명 성공할 것이다”고 입을 모았다. 김보경을 보며 박지성의 공백을 느끼지 않아도 될 날이 머지않은 듯 하다.
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Bergkamp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