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닷컴 종료, ‘안철수’, ‘퇴마록’ 배출한 하이텔의 추억도 안녕?

입력 2012-06-19 09:04:19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인터넷 포탈 사이트인 파란닷컴(www.paran.com, 이하 파란)이 문을 닫는다. 파란을 운영하던 KTH(대표 서정수)는 지난 15일, 언론 발표회를 열어 오는 7월 31일 24시를 기해 포탈 사이드 파란의 서비스를 종료한다고 밝혔다.

사실 파란은 사이트 자체로만 보면 그다지 영향력이 크지 않다. 2012년 현재, 파란의 페이지뷰 점유율은 1% 남짓으로, 30%와 20%를 넘는 네이버나 다음과 같은 경쟁 포탈사이트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하지만 제법 오랫동안 PC를 다뤄온 사람들에게 파란은 상당히 특별한 존재다. 이는 포탈사이트 파란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PC통신 서비스, ‘하이텔(HITEL)’의 추억 때문이다.

정말 잘나가던 하이텔의 추억

PC통신이란 현재와 같은 WWW 기반의 인터넷 서비스가 없었을 때 사용하던 문자 기반의 PC용 정보 교환 서비스로, 메일, 게시판, 동호회, 뉴스 등이 주 기능이었다. 현재 사용하는 인터넷 포탈의 원시적인 형태라 할 수 있다. 하이텔 외에 ‘천리안’, ‘나우누리’, ‘유니텔’ 등의 유사 서비스가 경쟁을 했으며, 월 1만원 정도의 유료 서비스였음에도 1990년대 말까지 전성기를 누렸다.

특히 하이텔은 1986년 한국경제신문사에서 처음 시작한 케텔(KETEL)을 1991년에 한국통신(현재의 KT)에서 인수, 1992년 하이텔이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유료 서비스를 본격화, 한때는 200만 명에 달하는 유료 사용자를 보유하는 등, 큰 인기를 끌었다.

남녀노소 구분 없이 대중화가 이루어진 현재의 인터넷과 달리, 당시 PC통신은 전문 지식이 많은 고급 이용자 및 대학생 이상의 고연령층이 주로 이용했으며, 게시판 역시 완전한 실명제로 운영되고 있었기 때문에 게시판이나 커뮤니티의 수준 및 신뢰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특히 하이텔의 경우, 상당 수준의 ‘내공’을 갖춘 회원을 다수 보유한 동호회, 그리고 이들이 활동하는 게시판이 다수 존재하고 있었는데, 실제로 안연구소의 설립자인 안철수 교수나 DC인사이드 설립자인 김유식 사장 등과 같이 훗날 크게 유명해진 인사들이 당시에는 일반회원으로 가입해 글과 자료를 올리는 등 각종 활동을 하며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또한, 아마추어 작가들의 등용문으로 불리던 ‘하이텔 문학관’은 ‘퇴마록(이우혁)’, ‘드래곤라자(이영도)’와 같은 걸출한 작품을 다수 배출하며 많은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인터넷 시대의 개막과 파란의 오픈, 그리고 몰락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초고속 통신망 및 화려한 이미지를 표시할 수 있는 웹브라우저를 기반으로 한 WWW 인터넷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보급을 시작하면서 느린 전화 모뎀과 초라한 텍스트 기반의 통신 에뮬레이터를 사용하는 PC통신은 서서히 이용자가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으며, 방대한 범위의 뉴스 및 커뮤니티 서비스를 제공하는 ‘야후’, ‘네이버’, ‘다음’과 같은 포탈 인터넷 사이트가 인기를 끌면서 풍부한 정보 및 커뮤니티를 내세우던 PC통신의 장점 역시 퇴색하기 시작했다. 이 때를 즈음해 PC통신 서비스 업체들은 서비스를 접거나 인터넷 포탈로 변신을 시도했다. 하이텔을 운영하던 KTH의 경우 2004년, ‘파란’이라는 새로운 포탈 사이트를 열고 하이텔을 이 곳에 통합시켰다.

이는 어찌 보면 시대의 흐름에 맞춘 결정이었다 할 수 있지만, ‘하이텔’이 ‘파란’으로 바뀐 순간부터 이는 ‘전통 있는 유력 PC통신’이 ‘무명의 신생 포탈’로 바뀐 것을 의미했다. 당시 이미 네이버, 다음과 같은 선두 포탈 업체들이 자리를 잡은 상태였기 때문에 파란은 입지를 넓히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설상가상으로 하이텔이라는 이름과 텍스트 기반 PC통신 특유의 진지한 분위기에 애착을 가지던 기존 사용자들마저 파란을 외면하고 떠나갔다. 북적거리던 게시판이나 동호회, 문학관 등의 서비스는 급격히 활기를 잃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 서비스들 중 대다수가 개점휴업 상태가 되거나 문을 닫기가 일쑤였다.

비주류 포탈의 영업종료? 소중한 추억과의 이별?

결국 파란의 존재감은 점차 희미해졌으며, 지난 15일, KTH는 파란의 서비스 종료를 발표했다. 이후에 파란 이용자와 서비스 일부는 경쟁사였던 다음으로 옮겨진다고 하지만 파란 자체의 영향력이 매우 미미했기 때문에 업계 전체에 미치는 파급력 역시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누구에게 있어 파란의 서비스 종료는 단순히 비주류 포탈 사이트의 영업 종료일 수 있지만, 또 누구에게 있어서 이는 오랫동안 쌓아온 소중한 추억과의 안타까운 이별이기도 하다.

한때 잘 나가던 서비스도 시대의 흐름에 제대로 발 맞추지 못하면 얼마든지 무너질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하여 무조건 변화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 자사가 가진 기존의 강점마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무조건 경쟁사를 따라 하는 형태로 무리한 변화를 시도하는 것은 아예 변화하지 않은 것만 못한 결과를 부를 수 있다. 이번 파란의 서비스 종료 사태는 바로 이러한 전형을 보여준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

※ 포털 내 배포되는 기사는 사진과 기사 내용이 맞지 않을 수 있으며,
온전한 기사는 IT동아 사이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사용자 중심의 IT저널 - IT동아 바로가기(http://it.donga.com)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