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번 키커 호날두 슛도 못해보고 쓴맛
스페인 수비수 세르히오 라모스(레알 마드리드)는 승부차기에 대한 아픈 기억이 있다. 그는 레알 마드리드와 바이에른 뮌헨(독일)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4강전(4월 26일) 승부차기에서 네 번째 키커로 나섰다. 1-2로 지고 있던 상황에 부담을 느낀 그의 슈팅은 어이없이 골대 위로 넘어가고 말았다. 결국 레알 마드리드는 승부차기에서 1-3으로 패해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팬들은 “라모스가 쏘아 올린 공이 아직도 우주를 향해 날아가고 있다”고 비난했다.
28일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의 돈바스 아레나에서 열린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유로 2012 4강전. 연장전까지 0-0으로 승부를 가리지 못한 양 팀은 승부차기에 돌입했다. 2-2로 팽팽히 맞선 상황에서 라모스가 키커로 나섰다. ‘4강전’ ‘네 번째 키커’…. 챔피언스리그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라모스는 오른발로 공을 찍어 차는 칩 슛으로 상대 골키퍼의 타이밍을 뺏으며 골을 성공시켰다. 이 슈팅은 유로 1976 당시 체코슬로바키아의 안토닌 파넨카가 서독과의 결승전 승부차기에서 성공시킨 이후 ‘파넨카 킥’으로 불린다. 이탈리아의 안드레아 피를로(유벤투스)도 이번 대회 잉글랜드와의 8강 승부차기에서 이 킥을 사용했다.
상대팀의 기를 꺾은 그의 골은 효과를 발휘했다. 이어진 승부차기에서 중압감을 느낀 포르투갈의 브루누 알베스(제니트)의 슈팅이 골대 상단을 맞고 튀어나온 것이다. 반면에 스페인은 세스크 파브레가스(바르셀로나)의 슈팅이 골대를 맞은 뒤 골문 안으로 빨려 들어가 승부차기에서 4-2로 포르투갈을 꺾고 결승에 진출했다. 패장인 포르투갈의 파울루 벤투 감독은 “라모스의 파넨카 킥이 승부에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라모스는 ‘맨 오브 더 매치’에 선정되며 승부차기의 악몽을 털어냈다.
한편 이번 대회 득점왕을 노리던 포르투갈의 에이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골)는 슈팅이 번번이 골문을 벗어나 팀의 패배를 막지 못했다. 포르투갈은 호날두가 부진했을 때 골을 넣어줄 최전방 공격수가 없다는 고질적인 약점에 또 한 번 발목을 잡혔다. 호날두는 승부차기에서 마지막 5번 키커로 예정됐던 것으로 보이나 그가 공을 차기 전에 승부가 끝났다.
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