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한화의 전신 빙그레 시절의 얘기다. 8월 말까지 2위 그룹에 4.5게임차로 앞서 페넌트레이스 1위가 확실해 보이던 빙그레는 9월 초 김영덕 감독의 ‘종신계약설’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걷잡을 수 없는 내분에 휩싸였다. 그 후 6승12패로 부진을 보인 빙그레는 결국 LG, 해태에 추월을 허용하고 3위로 정규시즌을 마쳤다. 그 해로 계약기간이 만료되는 김영덕 감독의 거취에 많은 관심이 쏠려있던 차에 강병철 수석코치와의 인간관계가 깨지자 선수들 사이에서도 큰 동요가 일었던 것이다.
빙그레는 삼성과의 준플레이오프 2경기에 걸쳐 이만수에게 선제홈런, 끝내기홈런을 거푸 얻어 맞고 각각 0-2, 4-5로 패해 탈락했다. 당시 이를 두고 이변으로 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빙그레의 팀 분위기는 침체돼 있었다.
빙그레 모 선수는 이렇게 얘기했다. “내가 고3 수험생인데, 엄마 아빠가 이혼하려고 한다. 내가 지금 공부에 집중할 수 있겠느냐.”
선동열 현 KIA 감독이 삼성 지휘봉을 잡고 있을 때, 다른 구단에서 선 감독을 영입하려는 움직임을 간파한 삼성이 일찌감치 재계약을 발표한 것이나, 넥센이 지난해 시즌 초 김시진 감독과 일찌감치 재계약을 확정하고 공표해 힘을 실어준 것과는 내용이나 상황에서 차이가 있었다.
시즌 초반부터 꼴찌를 헤매고, 뚜렷한 돌파구도 보이지 않는 처지에서 한화 정승진 사장이 최근 코칭스태프 전원과 함께 한 회식 자리에서 “시즌 도중 감독 경질은 없다”고 말한 내용이 5일 공개됐다. 22년 전 과거에는 승승장구하던 팀이 급전직하했다. 22년이 흐른 지금은 더 이상 내려갈 바닥도 없는 게 한화의 현주소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 같은 팀의 침체가 단지 올해로만 국한될 것 같지도 않다는 데 있다. 그렇다면, 과연, 감독의 거취를 조기에 정리한 한화 프런트가 앞으로 꺼낼 수 있는 카드는 무엇일까.
김도헌 기자 dohone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kimdohon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