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범죄와의 전쟁’에 이어 드라마 ‘유령’으로 2타석 연속 홈런을 친 곽도원. 20여년 무명 세월을 딛고 연기파 배우로 주목받고 있다. 사진제공|SBS
20년 무명, 돈 없이도 나름 행복했지만
6년전 부모님 돌아가시고 여친도 떠나
절망의 한때 아파트 옥상서 몹쓸생각도
안방 첫 나들이 ‘연기 좋다’는 칭찬 최고
“하하하하!”
‘기차 화통을 삶아먹었다’는 표현이 딱 맞을 듯하다. 카페가 떠나갈 듯 웃는 목소리에서 유쾌한 매력이 묻어났다.
연기자 곽도원(38). 시청자에게는 다소 낯선 이름이지만, ‘미친소’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성난 미친소’처럼 저돌적으로 들이밀고, 물불 가리지 않는 드라마 속 캐릭터에 딱 맞는 별칭이다. 또 잘 생기지 않은(?) 실제 외모와도 닮았다.
SBS 수목드라마 ‘유령’에 사이버수사대 권혁주 팀장으로 출연 중인 그는 함께 주연을 맡은 소지섭에 밀리지 않는 인기를 자랑한다. 소지섭의 별명인 ‘소간지’보다 ‘미친소앓이’라는 표현이 더 화제다.
“드라마 파급력이 이 정도일 줄 몰랐다. 460만 관객을 모은 영화 ‘범죄와의 전쟁’으로 웬만한 사람들은 다 봤다 싶었는데, 이번엔 온 국민이 다 본 느낌이랄까. 많이 알아봐주시니 신기하고 아직 얼떨떨하다. 그 전에는 한 번도 없었던 ‘사인해 달라’는 소리까지 듣고 있으니. 하하하!”
데뷔 이후 연극 무대와 영화에만 출연해 오다 안방극장 나들이는 이번이 처음. 그의 설명대로 ‘점 연기’ 같은 엑스트라와 단역을 주로 맡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의 악질 검사 역으로 유명세를 탔다.
“20년가량 무명의 시절을 보냈다. 수입이 없어 금전적으로 어려웠지만 나름대로 재미있고 행복했다. 호기심으로 장르를 바꿔 영화에도 출연했고 지금까지 온 거다. 노출이 많이 되는 매체에 오니 재미가 더 쏠쏠하다.”
이제야 연기 인생에 빛이 들었지만, 6∼7년 전 그는 ‘해서는 안 될 생각도 했다’고 고백했다.
“돌이켜보면 인생의 절망기였던 것 같다. 시련은 동시다발적으로 오더라. 다니던 극단도 그만두게 됐고, 부모님도 돌아가시고. 별로 없는 집안 재산을 두고 다툼도 생기고, 그러면서 누나들과도 안 만나게 되고. 기댈 사람은 여자친구 밖에 없었는데, 여자친구와도 헤어졌다. 정신을 못 차리겠더라. 두려움이라는 게 그런 거더라. 어떤 일이 닥쳐 생기는 게 아니다. 깜깜하고 미지의 무언가 실체도 알 수 없을 때 정말 무섭더라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그때 탁 모든 걸 내려놓게 되더라.”
그 ‘해서는 안 될 생각’을 품고 한 선배의 아파트 옥상에까지 올라간 적도 있다. 바로 그 선배의 집에서 속상한 마음에 술을 많이 마셨고 다음날 아침에 일어났더니, 책장에 놓여진 책 한 권이 눈에 띄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몰라도 책을 꺼내 머리말만 읽었다. 그리고 거기 씌어 있는 글이 그를 지금 이 자리에 있게 했다.
“운명과도 같았다. ‘나는 못할 일이 없다. 당신이 죽고 싶다면 이 글을 다 읽고 난 후에 죽어라’라는 등의 글이었다. 깜짝 놀랐다. 책이 시키는 대로 했더니 정신을 차리고 있더라고. 그 후로 다시 새롭게 태어난 것 같고, 보너스 같은 삶을 사는 것 같다.”
순탄치 않았던 그에게 일종의 보상(인기와 관심)같은 것이 주어졌다. 하지만 그는 스포트라이트는 그 순간일 뿐 절대 안주할 수 없다고 했다.
“주목받는 것, 당연히 좋다. 하지만 아는 척해 주는 분들이 ‘연기 좋았다’고 칭찬해 주면 그게 최고다. 세상의 모든 배우들은 자신이 연기를 잘 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거다. 관객이 보고 잘 했다고 하면 ‘그렇구나’ 하는 거다. 그러면서 배우는 거고. 인기에 안주하다 보면 건방져진다. 변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뿐이다.”
이정연 기자 annj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mangoost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