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희 기자의 런던 리포트] ‘불자’ 김현우, 부모님이 끓여준 보신탕 먹고 금빛 포효

입력 2012-08-0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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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우, 눈 부상 전. 사진출처|온라인 커뮤니티

■ 김현우 레슬링 8년만의 금 비밀

종교금기도 넘은 특별 보양식 먹고 불끈
고향 중학교에 유도부 없어 레슬링 전향

8년 만의 레슬링 올림픽 금메달. 그 뒤에는 독실한 불자지만, 금기를 깨면서까지 아들의 보양식을 준비했던 부모의 절절한 사연이 있었다.

아들의 눈은 시퍼렇게 부어 있었다. 강원도 원주 자택에서 아들의 경기를 지켜보던 부모의 눈도 부었다. 아들은 ‘16강전부터 상대 선수와 연달아 부딪혀서’, 부모는 ‘그런 아들이 안쓰러워 눈물을 흘려서’였다. 김현우(24·삼성생명)가 8일(한국시간) 엑셀 런던 노스 아레나에서 열린 2012런던올림픽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66kg급 결승에서 타마스 로린츠(헝가리)를 세트 스코어 2-0으로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 순간 아버지 김영구(60) 씨와 어머니 박영호(55) 씨는 “우리 아들 장하고, 고맙다”를 외쳤다.


● 왜 독실한 불자인 부모는 보신탕을 끓여야 했나?

금메달 도전 일주일 전에도, 또 하루 전에도 어머니는 절에 가서 정성스레 불공을 올렸다. 사실 김현우가 운동을 시작한 이후 어머니는 아들 만나듯 절에 갔다. 넉넉한 삶은 아니었지만, ‘자비’라는 부처의 가르침을 한번도 어긴 적이 없는 선량한 가족이었다. 그러나 이들 부부가 처음으로 불교의 금기를 깬 적이 있었다. ‘어떻게 하면 아들을 더 건강하고 튼튼하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어머니는 아들에게 보신탕이 잘 맞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잠시 고민했지만 자식사랑만큼 소중한 것은 없었다. 그 길로 시장에 가서 정성껏 탕을 준비했다. 부모 마음을 헤아린다면, 금기를 어긴 일도 충분히 용서받을 것이라 믿었다. 아들이 보신탕을 먹고, 경기에서 1등을 하는 날이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아들에게 바치다 보니, 시나브로 손맛이 쌓였다. 김현우네 보신탕은 얼마 지나지 않아 동네에서 입소문을 탔다. 이들 부부는 주변의 권유에 잠시 보신탕집을 열기도 했지만, 이내 그만두고 이제는 아들을 위한 탕만 끓인다. 아버지는 8일 “현우가 ‘엄마 밥이 먹고 싶다’고 하더라. 보신탕 말고도, 묵은 김치를 넣은 등갈비와 닭볶음탕도 정말 좋아한다. 빨리 아들에게 맛있는 것들을 해주고 싶다”며 웃었다. 김현우는 “부모님께 사랑하고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 형한테 씨름 지면 분해서 잠 못 이루던 아들

김현우에게는 세 살 많은 형(김민우 씨)이 있다. 둘은 어릴 때부터 방바닥에 이불을 깔아놓고 씨름을 했다. 샅바까지 준비한 그럴듯한 경기였다. 아무리 타고난 몸이라지만, 꼬마가 세 살 위의 형을 이길 수는 없었다. 그 때마다 김현우는 억울해서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버지는 “아침에 숟가락을 못 뜰 정도로 씨름을 하는 한이 있어도, 꼭 형을 이겨야 잠을 잤다”고 회상했다. 운동신경과 승부근성을 지닌 아들은 초등학교 때 유도를 시작해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원주에는 유도부가 있는 중학교가 없었다. 때마침 당시 평원중학교 레슬링부 최호순(현재 개인사업) 코치가 김현우의 재능을 알아봤다. 결국 중학교부터 레슬링을 시작해 세계 정상에 섰다. 현재 연세대 원주캠퍼스에서 근무하는 아버지 김영구 씨는 올해로 환갑을 맞아 이달 정년퇴임을 한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가장 빛나는 환갑·퇴직 선물을 한 셈이다.

런던|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setupman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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