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end Interview]“카리스마 홍 감독님? 실제론 허당일 때가 많은데…”

입력 2012-08-2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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웸블리 스타디움에 진행된 동메달시상식 직후 선수들이 건네준 메달을 목에 걸고 한껏 기분을 낸 코칭스태프들. 왼쪽부터 이케다 세이고 피지컬 코치, 김태영 수석코치, 홍명보 감독, 김봉수 골키퍼 코치, 박건하 코치. 사진제공|김봉수 골키퍼 코치

한국축구 첫 올림픽 메달의 숨은 영웅
홍명보호 코치 삼총사들 ‘유쾌한 수다’


런던올림픽 최종예선을 치를 때 홍명보호 코칭스태프들은 늘 “런던 가는 거야!”를 외쳤다. 올림픽 티켓을 딴 뒤에는 “런던 점령하자!”로 바뀌었다. 그럼 지금은? “이제 쉬는 거야! 어때?”

22일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카페골목의 커피숍에 마주 앉은 김태영 수석코치와 박건하 코치가 웃음을 지었다. 그들의 구호대로 올림픽 팀은 런던을 점령하고 돌아왔다. 한국축구 역사상 올림픽 첫 메달이라는 빛나는 업적을 세웠다. 스포츠동아는 홍명보 감독의 든든한 참모였고 동메달의 숨은 주역인 김태영 수석코치, 김봉수 골키퍼 코치, 박건하 코치를 함께 인터뷰했다. 1969년 2월생인 홍 감독부터 김봉수 코치, 김 수석코치, 박 코치가 차례로 1살 차이다. 이들은 동메달을 따기까지 숨은 비화부터 화제가 됐었던 라커룸 난동 사건의 진상 등 뒷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 놨다. 김봉수 코치가 1급 지도자자격증 이수를 위해 현재 파주 NFC에 교육을 받고 있어 그와 인터뷰는 전화로 대신했다.


코치들이 본 홍명보 감독 혹은 명보 형

코치보다 선수가 위!…야단쳤다간 혼쭐나
영국전 지동원 선발은 감독님 단호한 의지
선제골 넣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쫙 돋기도

동메달 그 날 라커룸 난동 사건의 전말

김태영 코치 재촉하자 뭔가 수상한 눈빛
에라 모르겠다∼구자철에 먼저 물 뿌려
숨었던 박 코치, 박주영에 딱걸려 날벼락



○홍명보 리더십의 실체를 깨닫다

홍명보 리더십의 핵심은 선수들 위에 군림하지 않는 수평적인 사고다. 김태영 수석코치는 홍 감독과 인연을 맺은 직후 이 리더십의 실체를 직접 경험했다. “제가 홍 감독에게 크게 혼난 적 있는 거 모르시죠? 2009년 3월 이집트 3개국 대회 때였어요. 전날 경기를 못 뛴 벤치멤버들을 데리고 훈련하는데 다들 의욕이 없더라고. 애들을 호되게 야단을 좀 쳤죠.” 선수들이 잘못하면 혼내는 게 당연한 줄 알았다. 그런데 그날 저녁 호텔에서 홍 감독이 김 수석코치를 불렀다. “아까 왜 소리쳤냐고 물어 보시기에 자초지종을 말했다가 혼쭐났습니다. ‘선수들 위에 군림할 생각 마라, 벤치멤버들일수록 더 감싸줘라, 선수가 위고 코치가 아래다’라고 하셨어요. 그 때 머리를 뭐로 얻어맞은 듯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반대 못한 지동원의 선발

“네 생각은 어때?” 홍 감독은 코칭스태프 미팅 때면 코치들에게 늘 먼저 의견을 묻는다. 코치들도 익숙해져 감독과 다른 의견도 거리낌 없이 내 놓는다.

영국과 4강전을 앞두고 지동원의 선발 여부에 대해 의견이 엇갈렸다. 박건하 코치는 지동원(선덜랜드)을 조커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 미팅에서 홍 감독은 “박 코치, 지동원 선발 어때?”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평소 같으면 그냥 김보경으로 가자고 반대했을 겁니다. 그런데 그 때 감독님 말에는 뭐랄까 거스르기 힘든 단호한 의지와 확신이 있었어요. 나도 모르게 그냥 동의를 해 버렸죠. 동원이가 선제골을 넣는 순간 소름이 돋더라고요.”


○페널티킥 방어의 노하우

동메달 일등공신으로 두 명의 골키퍼를 빼놓을 수 없다. 정성룡(수원)은 영국과 4강전에서 두 개의 페널티킥 중 하나를 방어했고 이범영(부산)은 승부차기에서 상대 5번째 키커 스터리지의 슛을 막아냈다.

두 선수는 경기 후 “김봉수 코치님이 알려주신 노하우가 있지만 공개할 수 없다”고 해 궁금증을 자아냈다. 김 코치는 자타공인 승부차기 달인이다. 전남 골키퍼 코치 시절에도 3차례의 FA컵 승부차기를 모두 이겼다.

김 코치는 “내 새끼들이 앞으로 많은 경기를 더 치러야 하는데 노하우는 밝힐 수 없다”고 끝까지 말을 아꼈다. 슬쩍 힌트는 하나 줬다. “관찰과 노력”이라고 했다. “토너먼트 이틀 전부터 승부차기를 준비합니다. 8강 상대가 영국으로 결정되자마자 대비에 들어갔죠. 상대 키커의 스타일, 버릇, 심리적인 부분까지 꼼꼼하게 챙깁니다.”

또 하나 비결은 대화다. 김 코치는 영국과 경기를 앞두고 훈련 말미 10분씩 정성룡, 이범영과 이야기를 나눴다.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하는데 그치지 않고 선수들의 의견도 충분히 들었다. “하나보단 세 명 머리를 합치는 게 아무래도 낫죠. 우리는 파트너잖아요? 대화하다 보면 제자들에게도 배울 부분이 나와요.”


○라커룸 난동의 시작은 김태영 수석코치

한국이 동메달을 딴 직후 라커룸 소동이 큰 화제가 됐었다. 선수들은 라커룸에 있는 모든 물건을 집어던지고 코칭스태프들에게 물과 얼음을 뿌리며 기쁨을 만끽했다. 광란의 자축파티였다.

알고 보니 김 수석코치의 도발이 있었다. “라커룸에 들어가서 빨리 옷 갈아입고 버스 타자고 재촉했는데 선수들 눈빛이 뭔가 이상하더라고. 손에 다들 물통을 하나씩 쥐고 있는 거야.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내가 먼저 자철이에게 물을 뿌려버렸지.”

박 코치가 옆에서 “아니 그럼 형님이 먼저 시작한 거 아니에요”라고 핀잔을 주자 김 수석코치는 “내가 안 했어도 애들이 덤볐을 거라니까”고 항변했다. 이어지는 김 수석코치의 의문. “박 코치, 근데 내가 그렇게 실컷 당하고 있을 때 넌 어디 있었냐?” 박 코치는 그 때 라커룸 안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는 중이었다. 밖에서 나는 소란스런 소리에 ‘올 것이 왔다’며 화장실 더 깊은 곳으로 슥 몸을 숨겼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리다가 ‘이 정도면 끝났겠지’하고 나오는데 박주영(아스널), 지동원과 딱 눈이 마주쳤다. 박주영이 소리쳤다. “야! 여기 하나 더 있다.”


○올림픽의 한을 풀다

홍 감독이 선수시절 올림픽과 유독 인연이 없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누구보다 화려한 선수시절을 보낸 코치들도 홍 감독 못지않게 올림픽에 맺힌 한이 많았다.

박 코치는 “바르셀로나 올림픽(1992) 크라머 감독 시절 초반에 딱 한 번 부름을 받은 게 전부였다”고 회상했다. 김 수석코치는 1996애틀랜타올림픽 와일드카드 후보였다. 그는 “혹독한 3개월 체력훈련은 다 소화하고 컨디션 난조와 발목 부상으로 정작 본선은 못 나갔다”고 씁쓸해 했다. 김봉수 코치는 바르셀로나 대회에 출전했다. 유일하게 올림픽 무대를 밟았다. 그러나 아쉬움이 남긴 마찬가지다. 예선 내내 주전으로 뛰고도 마지막에 받은 경고 2장 때문에 본선 1차전에 나서지 못했다. 대신 출전한 신범철이 맹활약하면서 김봉수 코치에게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았다.

이들이 못 다 이룬 꿈을 제자들이 해냈다.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동메달 시상식이 끝난 뒤 몇몇 선수들은 홍 감독과 코칭스태프들에게 다가와 메달을 걸어줬다. 김 수석코치는 “메달이 생각보다 무겁더라. 짜릿했다”고 했다. 김봉수 코치는 “후배, 제자들에게 도움이 됐다는 게 더 기분 좋았다”며 뿌듯해 했다.


○코치들이 본 홍명보는

‘카리스마’ ‘무표정’ ‘영원한 캡틴’. 홍 감독을 대표하는 이미지들이다. 홍 감독과 늘 함께 해 온 3명의 코치에게 사석에서 본 그의 모습을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보기보다 허술할 때가 많다” “일급비밀이다” “오프더레코드를 전제로 하면 털어 놓겠다”는 말이 쏟아졌다.

공통점은 ‘인간적이다’는 것이었다.

“남들은 감독님은 안 웃고 무표정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재밌어요. 가끔 던지는 조크에 빵빵 터진다니까요.”(김봉수 코치) “바로 옆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정말 깊죠.”(김태영 수석코치)

분당|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Bergkamp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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