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용의자X’에서 민첩한 형사 민범역을 맡은 배우 조진웅.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배우 조진웅(36)이 민망한 지 그의 고운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는다. 키 180cm가 훌쩍 넘는 조진웅은 덩치에 맞지 않는(?) 섬세함을 인터뷰 내내 보였다.
영화 ‘용의자X'는 화선(이요원)이 우발적으로 전 남편을 살해하자 천재 수학자 석고(류승범)가 그녀를 지켜주려고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든다는 내용이다.
동물적인 감각으로 화선을 용의자로 의심해 사건을 조사하는 형사 조민범 역을 맡은 조진웅 광화문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사진을 찍으면서도 ‘아 이렇게요? 알겠습니다’라며 포즈를 취했고 연속적인 카메라 셔터소리에 “이 기사 사회면에 나가는 거 아니죠? 나 뭐 잘못한 사람 같아. 허허허” 하며 유머스런 말을 건네기도 했다.
<다음은 조진웅과의 이하 일문 일답>
▶ “석고의 사랑 때문에 몸을 던졌다”
- 시사회때 영화 보고 어떤 느낌을 받았나.
“아쉽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고…작품이 끝날 때마다 만족하기는 어렵다. 이번엔 내 연기도 못 봐주겠더라. 하지만 마라톤 완주한 것처럼 보람된다.”
- 석고의 사랑이 이해하긴 어렵진 않았나.
“시나리오를 볼 때부터 이런 사랑을 할 수 있을까란 생각을 했다. 작품을 진행하다 보니 자연스레 석고의 사랑이 이해가 됐다. 관객들이 그의 사랑의 가치를 느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 좀 더 자세히 말한다면.
“이 작품의 힘은 ‘진정성’인 것 같다. 석고의 사랑은 진정성은 있다. 하지만 그게 가능한 것인지 머리로는 설명이 안 되고 가슴으로 느껴봐야 하는 것 같다. 나 역시 그걸 느끼기 위해 영화 속으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내 시선이 관객들의 시선과 같은 느낌을 주려고 했다. 그러면서 석고의 사랑을 제3자의 눈으로 봐라볼 수 있게 한거다.”
- 배우 출신 방은진 감독과 다른 감독과의 차이점이 있다면.
“최상의 컷을 만들기 위한 노력은 어느 감독이나 마찬가지이다. 배우 출신이라 차이점이 있는 게 아니라 스타일의 차이인 것 같다. 하지만 연기자 선배님이시니 내 연기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분이었다. 배우로서 연기를 잘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셨다.”
▶ “내 인생의 라일락은 ‘작품’…호되게 당한 적 있었다”
-영화 원작이 워낙 유명하다. 다른 작품으로 각색했지만 부담감이 있을 것 같다.
“부담감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일본 영화는 뭔가 단백하고 소설책이 그야말로 스크립트처럼 옮겨졌는데 우리는 정서적인 깊이를 더한 것 같다. 그래서 이 영화의 가제가 왜 ‘완전한 사랑’이었는 지 알 수 있었다. 관객들의 호불호가 갈리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 어린 민범의 대사 중 “사랑은 라일락이다”라는 표현이 있었다. 조진웅의 라일락은 무엇인가.
“참…오그라드는 대사인 것 같다. (웃음) 나 역시 라일락이 있었다. 이성관계에도 그랬지만 연기할 때 ‘라일락’의 쓴 맛을 느끼게 된 것 같다. 연극 작품 때문에 호되게 당한 적이 있다. 연기 때문에 고민할 때는 즐거움으로 느껴질 때가 있고 사고의 붕괴가 올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작품에게, 내가 맡은 역할에게 왜 이런 철저한 배신을 당하는 걸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건 앞으로도 내가 풀어내야 하는 숙제고 외로운 싸움이다. 무대에서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과 더불어 정말 괴로운 순간이었다.”
- ‘조민범’이라는 형사를 어떻게 풀어내려고 했나.
“경력이 쌓여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물론 동물적인 감각이 있는 형사라는 캐릭터였지만…내가 보고 물어보는 것들이 다른 사람들에겐 수사가 아닌 자연스런 행동과 대화인 것처럼 느끼게 하고 싶었다. 대신 그 말에 힘을 주려고 노력했다.”
- 본인이 꼽은 명대사가 있다면.
“취조실 안에서 석고가 머리를 가리키며 ‘머리 아니야. 이건 내 가슴이야’라고 한 것과 제 대사 중에는 ‘그 사람이 네 가족이야? 친구야? 네 애인이야? 하려면 들키지나 말지’라는 대사가 좋았어요. 정말 석고를 생각하는 민범이의 처절한 느낌이 담겨져 있다고 생각해요.”
배우 조진웅.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 “롯데 자이언츠 보고 있나? 시구 좀 시켜줘요”
- 후배 형사 김윤성과의 호흡도 재밌었다.
“류승범과 이요원은 내가 바라봐주면 됐지만, (김)윤성이와는 정말 호흡이었다. 두 사람은 정말 눈빛만 다 아는 사이처럼 보여주고 싶었다. 다행히 윤성이가 군말없이 잘 해줬다. 조금 미안한 게 있다면 내가 술자리를 엄청 데리고 갔다. 처음엔 좋아하더니 나중엔 좀 힘들어하더라.(웃음)
- 두 분은 모두 부산 출신이시다.
“그렇다. 내가 윤성이를 부러워하는 것 중 하나가 부산 사직구장에서 시구를 했다는 거다. 우와. 엄청 부러웠다. 나는 ‘퍼펙트게임’에서 롯데 자이언츠 유니폼도 입었었는데 시구를 못했다. 내가 롯데 자이언츠의 엄청난 팬인데, 구단에선 이 사실을 잘 모르나보다. (웃음)”
- 야구를 굉장히 좋아하나보다.
“당연하다. (웃음) 롯데 경기가 있는 날이면 윤성이와 문자를 주고 받는다. 어마어마하게 좋아한다. 스마트 폰으로 생중계 경기를 보고 기사도 읽는다. 1984년에는 롯데 자이언츠 리틀야구단이었고 아버지는 경남고 출신이다. 나는 야구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인연이다. 이번 영화 촬영 때는 다행히 전지 훈련가는 기간이어서 영화에 몰입할 수 있었다. (웃음)”
- 야구경기를 자주 보러 다니는 편인가?
“가려고 노력한다. 올해는 잠실구장을 좀 다녔다. ‘퍼펙트게임’할 때는 정말 자주 갔다. 배우들끼리 LG, 롯데 등 놀리기도 하고…이제는 잠실구장, 문학도 가고 싶다. 아…그런데 사직에서는 날 안 불러주려나? (웃음).”
▶ “맛집 하나는 기가 막히게 찾아내는 감각 인정”
- 민범이는 동물적인 감각이 있는데 조진웅은 어떤 감각을 갖고 있나.
“하나 있다. 맛집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찾아낸다. 지역 정보도 없이 찾아낸다. 예전에 영화 ‘맨발의 꿈’ 때문에 동티모르를 간 적이 있다. 시간이 있어서 가방 하나만 들고 발리를 간 적이 있다. 그런데 배가 고파서 식당을 찾고 있던 중 희미하게 ‘레스토랑’이라고 쓰인 간판을 봤다. 그래서 그 골목으로 들어갔더니 한 남자가 길을 안내했는데 정말 골목에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그 식당을 들어갔는데 ‘비밀의 화원’처럼 정말 화려한 식당이 나온 거다. 알고 보니 거기가 발리에서 아는 사람만 올 수 있다는 식당이었다. 이 정도면 촉이 있는 거 아닌가? (웃음)
- 시간이 갈수록 더 젊어지는 것 같다. 팬들도 ‘패셔니스타’가 되는 것 같다고 말하던데.
“으하하하. 그렇게 봐주시니 참 감사할 따름이다. 나라는 배우가 팬이 있다는 게 참 힘이 된다. 진심이다. 하지만 내 스스로는 그렇게 변화되는 건 없다. 사실 나를 도와주는 스태프들이 날 멋지게 만들어 준거다. 내 몸은 사실 도구일 뿐이다. 작품 때문에 살을 찌워야 한다면 찌우는 것이고 살을 빼야 한다면 빼는 거다. 배우로서 몸이란 연기를 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 연극 배우 출신이다. 스케줄이 바쁘지만 연극을 할 계획은 없나.
“연극 배우 출신들은 누구나 무대를 그리워한다. 난 잠시 쉬고 있지만 사실 동시에 여러 작품을 하는 걸 안 좋아한다. 나 때문에 작품이나 함께하는 분들에게 폐가 되고 싶진 않다. 하지만 작품이 하나씩 정리가 되고 시간이 난다면 연극을 하고 싶다. 특히 부산에 동지들이 많기 때문에 이왕이면 부산에서 연극을 해보고 싶다.”
-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들어가는 작품들을 학수고대하고 있지만 우선 ‘용의자X’ 홍보에 전념하고 싶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관객들과의 시간이 즐거웠다. 그래서 개봉 후에 그런 시간을 또 가졌으면 좋겠다. 영화를 보시는 관객들이 집에 돌아갈 때 ‘사랑’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재해석하시는 시간을 갖게 됐으면 좋겠다.”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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