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People]기성용·김보경·이동국 父 “큰 부상 없이 선수 생활 마무리”

입력 2013-05-1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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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용, 전국소년체전서 우승하고 가족과…

■ ‘사커대디’들이 사는 법

‘사커대디’는 ‘골프대디’ ‘피겨맘’과 함께 한국 부모의 헌신적이고 적극적인 자녀 뒷바라지를 일컫는 신조어다. 성공한 축구선수 아들을 둔 사커대디의 삶도 녹록치만은 않다. 부상 위험이 늘 도사리는 축구 특성상 언제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경기를 봐야 한다. 언론과 팬의 과도한 관심, 아들 하나 잘 둬서 출세했다는 삐딱한 시선에 마음고생을 할 때도 많다. 그러나 축구장에서 수만 관중이 하나 돼 아들의 이름을 외치는 모습을 볼 때 모든 게 치유된다. 한국축구 대표적인 사커대디 박지성의 아버지 박성종(55) 씨는 그의 자서전 머리말에 이렇게 썼다. ‘축구 잘 하는 아들을 둔 부모는 행복하다. 행복하게 운동하는 아들을 둔 아버지는 말할 수 없이 행복하다. 그러나 축구 잘해서 너무 유명한 아들을 둔 부모는 여러 가지로 고달프다. 그래도 나는 박지성의 아버지라는 사실이 너무나 자랑스럽다.’

스타플레이어의 아버지라면 모두 공감하지 않을까. 스포츠동아는 가정의 달을 맞아 사커대디가 사는 법을 들어봤다. 이동국(34·전북 현대)의 아버지 이길남(63) 씨, 기성용(24·스완지시티)의 아버지 기영옥(56) 씨, 김보경(24·카디프시티)의 아버지 김상호(56) 씨를 인터뷰했다.


기성용 아버지 기영옥씨

영어 1순위, 축구는 2순위로 보낸 호주 유학
외국인 감독 욕도 알아듣고…런던서도 대견


김보경 아버지 김상호씨

중1때 발목 부상…운동 시키지 말까 고민도
남아공월드컵 대표 붙었을 땐 기뻐서 ‘멘붕’


이동국 아버지 이길남씨

뱀이 물고 안 놔줘…태몽 덕분에 태어난 아이
십자인대 수술해야 한다는 전화 받고 눈물도


○축구선수는 운명?

발리슛을 넣고 환호하는 이동국의 포효, ‘포스트 박지성’이라 불리는 12번째 한국인 프리미어리거 김보경을 하마터면 못 볼 뻔했다?

이길남 씨의 회상이다.

“이런 이야기해도 되나…. 애 엄마가 동국이를 가졌을 때 동국이 누나도 있고 형도 있었어요. 가정형편상 낳기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임신을 한 거에요. 마침 집에서 병원도 가깝고…. 지워야 하나 고민 했어요. 그런데 애 엄마가 꿈을 꿨는데 뱀이 뒷다리를 덥석 물고 안 놔주더랍니다.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안 놔줘서 이거 태몽에서 안 놔줄 적에는 뭔가 이유가 있겠다 싶었죠. 그래서 낳은 게 동국이에요.”

김보경은 학창시절부터 늘 주전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주전으로 뛰어 김상호 씨는 5,6학년 학부모들 앞에서 대 놓고 기뻐하지 못 하고 표정관리를 해야 했다. 그런 김 씨도 아들에게 운동을 그만 시킬까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었다.

“애 엄마가 보경이 운동시키면서 나한테 약속해달라고 한 게 하나 있어요. 축구가 좋아서 하는 거니 큰 선수로 성장 못 해도 집착하고 욕심 부리지 말라고요. 그런데 기대 이상으로 잘 하는 거예요. 선생님들이 보경이는 하나를 알려주면 열을 안다고 했으니까요. 그런데 중1 올라가자마자 무릎, 발목이 안 좋아서 운동을 못 했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주전으로 뛰는 바람에 성장하는 시기에 너무 혹사한 건 아닌가 싶어 걱정이 됐죠.”

한 번은 선수들이 대회참가를 위해 지방으로 내려간 사이 집에 있던 김보경이 김 씨에게 “아빠, 나 안 뛰어도 좋으니 내려가면 안 돼? 나 내려가서 간호해주면 안 돼?”라고 하더란다. 그 말을 듣는 김 씨 마음이 미어졌다.

“그 때 아들에게는 내색 안 했지만 운동을 시켜도 되는 건가 며칠 밤샜어요. 애 엄마랑 처음 한 약속이 생각나서 내 욕심에 아들을 망치는 건 아닐까 여러 번 고민했죠.”

다행히 중2가 되던 해 6월부터 통증이 사라졌고 김보경은 곧 주전을 되찾았다.

김보경, 맹호기 축구대회 우승 직후



○꿈의 무대에 선 아들

월드컵을 ‘꿈의 무대’라고 한다. 다른 사람도 아닌 아들이 꿈의 무대에 서는 모습을 지켜볼 때는 정말 벅찬 감동이 밀려올 것이다. 3명의 사커대디 모두 아들을 축구시킨 후 가장 기뻤던 순간으로 월드컵대표팀 발탁을 꼽았다.

기영옥 씨는 “남아공월드컵에 가서 16강에 오른 것 보니 행복하고 아들 잘 키웠다는 생각이 들었죠”라고 했다. 덧붙여 기성용은 작년에는 한국축구 사상 처음으로 런던올림픽에서 동메달까지 땄다. 역시 현장에 있었던 기 씨는 “성용이가 일본과 3,4위전 끝나고 관중석에 있는 절 보고 포옹하는데 너무 찡해서 눈물이 다 나더라고요”라며 쑥스러워 했다.

이 씨는 아들이 98프랑스월드컵 대표팀에 뽑히던 과정을 15년이 지난 지금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 당시 차범근 감독께서 고등학생이라도 뽑을 수 있다는 말씀을 인터뷰 때 하셨는데 ‘그게 누굴까’ ‘혹시 동국이는 아닐까’ 하면서도 설마 했죠. 얼마 뒤 새벽녘에 모 기자로부터 ‘동국이가 뽑힐 것 같다’는 연락을 받고는 온 몸에 전율이 흘렀죠.”

김보경은 남아공월드컵 때 전격적으로 허정무 대표팀 감독의 부름을 받았다. 김 씨는 “유망주 육성 차원에서 혹시나 하는 마음을 가지면서도 큰 기대는 안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최종명단 발표 때 보경이 이름이 떡하니 들어 있는 걸 보니 정신이 하나도 없더라고요”라며 흐뭇해했다.

포항제철동초등학교 시절 아들 이동국과… 사진제공|이길남



○충실한 조언자

선수들이 여러 번 선택의 기로에 설 때 의견을 구하고 가장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아버지일 것이다. 광주시축구협회장이기도 한 기 씨는 축구명문 금호고를 이끌며 고종수, 윤정환 등 숱한 스타들을 키워낸 지도자 출신. 그는 기성용이 중학생 때 호주로 유학을 보내며 아들의 성장에 길을 터줬다. 축구유학 자체가 드물던 시절이었는데 그것도 당시 대세였던 브라질이 아닌 호주였다.

“이왕 보내려면 영어권이면서 선진국으로 보내고 싶었죠. 축구선수로 실패하더라도 영어를 제대로 배워만 오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영어가 1순위, 축구는 2순위였죠. 근데 막상 애를 출국장에 들여보내는 데 너무 안쓰럽더라고요.”

덕분에 기성용은 유창한 영어를 구사한다. 영어실력은 그가 해외 무대에 쉽게 적응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기 씨는 재미있는 추억도 한 토막 들려줬다.

“성용이가 16세 대표팀을 할 때 네덜란드 감독이었는데, 오후 운동에 한 선수가 늦었답니다. 그 감독이 운동하는 내내 심한 욕을 했다는 거예요. 선수들 아무도 못 알아듣는데 성용이만 알아들었다고 해서 대견했어요. 하하.”

이동국은 고교 졸업 후 대학으로 가지 않고 곧바로 프로(당시 포철)로 직행했다. 학력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쉽게 내리기 힘든 결정이었다. 이 씨는 심사숙고 끝에 아들의 미래를 포철에 맡기기로 했고 옳은 판단이었음이 입증됐다. 김 씨 역시 김보경이 대학에서 K리그가 아닌 J리그로 갈 때, J리그에서 유럽 빅 리그, 빅 클럽의 러브 콜을 받고도 잉글랜드 2부 리그 챔피언십을 택할 때 아들을 묵묵히 믿어 줬다. 김씨 부자의 챔피언십 선택은 결과적으로 신의 한 수가 됐다.


○사커대디의 바람

이 씨는 누구보다 굴곡진 축구인생을 살아온 이동국을 보며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픈 순간도 많았다. 이 씨는 아들의 힘들었던 독일 분데스리가 임대 시절, 2002한일월드컵 때 충격의 엔트리 탈락, 프리미어리그 미들즈브러에서의 실패, 남아공월드컵 우루과이와 16강전 때 성공하지 못한 단독 찬스 등을 담담하게 풀어냈다. 그러나 이동국이 2006년 십자인대 부상으로 독일월드컵 출전이 좌절된 일을 말할 때는 눈물이 고였다.

“독일까지 가서 정밀검사 받고 십자인대가 끊어져 수술을 해야 한다는 전화를 받을 때 대성통곡을 했죠. 2002월드컵 탈락 때보다 더 많이 운 것 같아요.”

마지막 질문으로 “아들들에게 가장 바라는 것 하나만 말해 달라”고 했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 3명 아버지의 답은 똑 같았다. “제발 큰 부상 없이 선수 생활 잘 마무리할 수 있게 해주세요.”

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Bergkamp08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yoshik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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